자스민혁명

중동 민주화 운동의 시점, 쟈스민 혁명의 끝은 어디인가
가면닌자 2011-02-24 21:46 조회 543
쟈스민은 튀니지의 국화(國花)로 2010년 12월 18일부터 일어난 튀니지 시민혁명을 시작으로 한 민주화 운동이 바로 쟈스민 혁명인데 이 혁명이 중동 민주화 운동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쟈스민 혁명을 시작으로 한 중동 민주화 운동의 원인은 지독한 물가상승, 오랜 독재기간 때문이었기에 2월 11일에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한 뒤에도 중동 내의 그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은 상태였고 지금 리비아에서 내전급 진압이 있을 정도로 더 심했다. 튀니지, 이집트에서는 이미 민주화 운동이 끝났지만 리비아에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한국 교민들이 이집트로 피신하는 사례가 생기기도 했고 많은 리비아 민중들이 군부에 희생당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헬기까지 동원되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될 정도로 심화되어버렸다. 2개월 넘게 지속된 중동 민주화 운동이 지금도 지속되자 몇몇 아랍국가들까지 퍼지기도 했으며 1월 25일부터 2월 11일까지 지속된 이집트 반정부 시위 때 많은 한국 교민들이 국외탈출하기도 했고 피난민까지 속출했다. 리비아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통신,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심화되었고 지금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퇴임 거부 입장을 밝히는 바람에 더 격렬해졌다. 이 중동 민주화 운동 부분은 바레인,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모리타니, 수단, 예멘까지 번진 상황이라 더욱 심화되고 이 규모는 말 그대로 한국의 5.18 민주화 운동, 프랑스 대혁명보다 더 크다고 여겨진다. 이로 인해 군부에 의한 무고한 희생이 소출되고 통신, 교통이 두절될 정도였으며 심지어는 교민까지 피난가는 경우가 생겼다. 이 중동 민주화 운동의 끝은 대체 언제일까? 그리고 그 규모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이 글을 쓰는 나 사마황백(司馬皇柏 : 1982~)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 1841~1909) 같은 의문대로 어디까지가 진실일 지 정말 모르겠다. 3.1 운동보다 더한 중동 민주화 운동에 의한 피해와 난민 속출, 계속되는 독재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나 이러한 비극은 거기서 끝나야 한다.
프랑스 ‘철의여인’ 재스민 태풍에 날아가중앙일보 | 이상언 | 입력 2011.03.01 00:06 | 수정 2011.03.01 01:08 [중앙일보 이상언1] 프랑스에서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미셸 알리오마리(Michele Alliot-Marie·65·사진) 외무장관이 아랍권 민주화 태풍에 휩쓸려 낙마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사퇴 의사를 밝힌 것. 사르코지 대통령은 즉각 TV연설을 통해 새 외무장관을 임명하는 등 부분 개각을 발표했다.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부총재인 알리오마리는 프랑스에서 최초로 국방·내무·법무·외무장관을 역임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프랑스의 첫 여성 외무장관이다. 동거인인 파트리크 올리에르가 의회관계 담당 국무장관이라 프랑스 최초의 '장관 커플'이기도 했다. 보수 성향이 강한 '강골'이라는 점에서 그는 종종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비교돼 왔다. 체육부 장관 시절인 1990년대 중반 2000m 높이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려 화제가 됐다. 알리오마리는 사퇴서에서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가족의 사생활이 크게 침해받고 있어 사직을 결심했다"고 썼다. 그는 그동안 "친분 있는 사업가로부터 순수하게 편의를 제공받은 것"이라고 해명해왔다. 하지만 튀니지 시위 초기 의회에서 "튀니지 정부의 시위대 진압을 도와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해 비난을 샀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새 외무장관에 현 국방장관인 알랭 쥐페 전 총리를 임명했다. 국방장관에는 제라르 롱게 UMP 상원 원내대표를 기용했다. 지난해 아랍인 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브리스 오르트푀 내무장관도 클로드 게양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교체됐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 joonnyjoongang.co.kr > ▶이상언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joonny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