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항-한국관광대상
2011년 세계관광기구 총회 한국 유치
KTV | 입력 2009.10.08 13:08
2011년은 한국방문의 해로 이번 국제관광기구 총회 유치가 한국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세계관광기구의 2011년 총회 개최지가 우리나라로 결정됐습니다.
유엔 산하 세계관광기구는 7일 오후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18차
총회 본회의에서 2011년에 열리는 다음 총회 개최국으로 우리나라를 확정했습니다.
세계관광기구는 1975년 설립돼 2003년부터 유엔의 관광분야 특별기구로 편입된
국제기구로 관광분야 세계 최대 규모의 장관급 국제회의입니다.
정부는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크지만 2010-2012년 한국방문의 해에 맞춰 총회를
유치했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한국 관광의 매력을 전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1년에 일본과 공동으로 이 회의를 공동 주최한 바 있지만
단독개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1년 총회를 10월 중에 열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일정과 장소는
충분한 검토를 거쳐 추후 결정할 계획입니다.
KTV 강석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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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엔조이 웹사이트가 ‘웹어워드 코리아 2010’에서 여행/취미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다양한 프로모션과 이벤트, 해외 전세계 10만 개의 호텔을 실시간으로 예약 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 업계 최초 스마트폰 어플개발 성공 등 기술우수성 부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도 디자인, 콘텐츠, 서비스, 마케팅 부문 등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웹 어워드는 국내 웹 전문가 1600명으로 구성된 평가위원단들이 한 해 동안 새로이 구축 또는 리뉴얼된 PC, 모바일 기반의 웹사이트들을 대상으로 평가를 진행한다.
앞으로 4년반…국제 관광·해양도시 발돋움 | |
어떻게 준비하나 아쿠아리움·수상호텔·박람회장 등 2011년 완공 고속열차 개통·국제선 취항 등 기반시설 대폭확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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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직면한 바다를 인류의 희망으로 바꾸자!”
여수세계박람회는 2012년 5월12~8월12일 석 달 동안 전남 여수시 신항 일대에서 펼쳐진다. 세계 100여 나라 외국인 43만명을 포함해 795만여명이 미래형 해양도시로 발돋움한 여수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생명력 넘치는 남해안을 돌아보며 인류의 마지막 보고인 바다에서 희망을 탐색한다. 준비 기간은 앞으로 4년반이다. 정부는 2011년 말까지 1조7천억원을 들여 여수의 명물인 오동도 건너편의 여수신항 일대 159만3천㎡의 터에 박람회장을 지을 계획이다. 이곳에는 △해양박물관·해양과학관 등 교육시설 △수상퍼팅장·요트계류장 등 레저시설 △아쿠아리움·엑스포타워 등 관광시설 △수상호텔·해변콘도 등 숙박시설 등이 들어선다. 박람회장 인근에는 최고급 해상호텔 ‘오션리조트’와 광양~여수를 잇는 8.5㎞ ‘충무공다리’도 명물로 등장한다. 또 고속열차가 다니는 엑스포역과 1만1500대분의 초대형 주차장을 만들고, 크루즈·수상택시·모노레일 따위를 도입하는 시설 확충이 뒤따른다. 여수 일대에 기반시설도 단계적으로 늘어난다. 서울~여수 구간에 세 시간대의 고속열차를 개통하고, 전주~광양~목포를 비롯해 광역도로망 551.2㎞을 건설한다. 여수공항에 국제선을 띄우고 여수항에 크루즈가 기항하는 등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성장 동력이 생길 전망이다. 세계 5대 해양강국 진입을 목표로 추진하는 이런 장밋빛 청사진을 두고 유치에 성공한 만큼 이제는 차분해지자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유치의 환호성 속에 묻혀 있는 ‘실속’을 잘 살펴 개발 방향과 사후 활용을 따져보자는 신중론이다. 여수시민협은 이날 성명을 내어 “유치의 꿈을 이룬 만큼 여수를 지속 가능한 해양도시로 만들기 위해 무분별한 개발사업은 없는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동명 전남대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교수도 “박람회는 여수가 다시 한번 해양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도약대”라며 “설계단계부터 지속 가능한 개발과 시설을 미래 지향적으로 활용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
다산 선생도 반했을 강진 백련사 동백림 붉은 동백과 푸른 차밭이 잘 어우러진 남도 고을 강진의 만덕산(409m) 자락엔 고려 말 천태종 부흥의 본산이었던 백련사(白蓮寺)가 있다. 절집 주변엔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1,500여 그루나 자생한다. 이 동백림(천연기념물 제151호)을 밝히는 동백꽃은 강진만 바다, 그리고 단아한 절집과 조화를 이룬다. 백련사 동백은 보통 3월 중순쯤이면 만개한다. 따라서 4월 초순에 들르면 숲속 땅바닥을 붉게 물들인 동백꽃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 백련사와 가까운 다산초당 주변에도 동백꽃이 많다. 조선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은 강진에서 보낸 18년 귀양살이 가운데 10년쯤을 이 다산초당에서 지냈다. 천일각 뒤로 난 오솔길은 다산 선생이 고개 너머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만나기 위해 오가던 길.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잘 어우러져 있어 이런 봄날에 사색하며 산책하기엔 더 없이 좋다. 여행정보 숙식 강진 읍내의 여관이나 식당, 다산초당 입구 근처의 민박집을 이용한다. 교통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나들목→ 2번 국도→ 강진읍→ 18번 국도(해남 방면)→ 1.7km→ 추도삼거리(좌회전)→ 6km→ 백련사 입구→ 1km→ 다산초당 입구. 바다 위에 떠있는 '동백꽃의 왕국', 여수 오동도 여수의 봄은 오동도를 뒤덮은 붉은 동백꽃 춤사위로 시작한다. 오동도 동백꽃은 보통 3월 중순쯤에 절정을 이루고 4월 말까지도 간다. 따라서 섬의 땅바닥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는 요즘이 산책하기엔 적기다. 오동도 동백 꽃길을 산책한 뒤에는 돌산대교를 건너 돌산도 남쪽 끝에 자리한 향일암(向日庵)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해를 향한 암자’라는 이름답게 일출 광경이 좋다. 기암절벽 사이에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어 동백꽃 구경은 덤이다. 여행정보 숙식 오동도 입구에 숙박시설과 식당이 아주 많다. 또 향일암 입구에도 일출모텔(061-644-4729) 등 숙박시설과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많다. 교통 호남고속도로→ 순천 나들목→ 17번 국도→ 여수 시청→ 오동도. 3만 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 이룬 거제도 동백림 예전 거제도는 섬 전체가 동백 천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거제도엔 학동마을과 거제 동쪽의 새끼섬인 지심도를 비롯한 몇몇 군락지 외에는 동백이 별로 남아있질 않다. 이유는 싱싱한 꽃봉오리 채로 뚝 하고 떨어지는 동백꽃이 마치 죄인의 목이 잘리는 형상이라 조선시대 유배 온 사람들이 꺼려해 주변의 동백나무를 마구 베어냈기 때문이라나. 해금강에서 20리쯤 떨어진 학동 몽돌해안 절벽 위에 군락을 이룬 동백림은 거제도의 자랑.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야생 동백림 중 하나로 인정되어 천연기념물(제233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 38㏊의 면적에 3만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군집하고 있다. 해금강 갈곶마을 부근 언덕의 동백숲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맛도 유별나다. 호젓하게 동백꽃을 즐기고 싶다면 장승포항에서 뱃길로 15분쯤 거리에 있는 지심도로 간다. 오솔길을 따라 2~3시간 정도 걸으면서 동백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여행정보 숙식 거제도 학동마을과 해금강 지역에 숙박시설이 많다. 지심도엔 김용찬씨(055-681-7183)집 등에서 민박을 친다. 교통 대전·통영간고속도로→ 통영 나들목→ 14번 국도(거제 방면)→ 거제대교→ 장승포→ 학동마을. 시인은 못보고 돌아갔던 늦동백, 고창 선운사 늦동백, 곧 춘백이라 불리는 고창 선운사의 동백은 한겨울이 아니라 성미 급한 봄꽃들이 시들어가는 4월 초에 들어서야 피어나기 시작해 무려 5월 중순까지 선운사 골짜기를 붉게 물들인다. 선운사 대웅전 뒤 산기슭에서 자라고 있는 500~600년 생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들은 제각각 붉은 꽃송이들을 무더기로 피워내며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하지만 보호 철망 때문에 동백의 붉은 꽃그늘을 걷지 못하는 게 조금 섭섭하다. 여행정보 숙식 선운사 입구에 호텔, 펜션 등 숙박시설과 풍천장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아주 많다. 1인분에 1만5,000원. 교통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 나들목→ 22번 국도(선운사 방면)→ 13km→ 삼인리 삼거리(좌회전)→ 2km→ 선운사 주차장. 주꾸미 한 입에 늦동백꽃 활짝, 서천 마량포 서천의 마량포는 봄날의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다. 우선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주꾸미 집산지로서 3월 24일부터 열린 ‘동백꽃주꾸미축제’는 4월 6일까지 이어진다. 주꾸미를 맛본 뒤 곁들이는 동백정 산책은 마량포 필수 답사 코스. 동백정 둘레에 있는 동백나무는 80여 그루로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500년 수령이라 제법 아름다운 꽃터널을 이룬다. 동백정에서 감상하는 저녁노을은 인근에서 최고. 여행정보 숙식 홍원항과 마량포 일대에 주꾸미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많다. 승용차로 5분 거리의 춘장대해수욕장엔 펜션 등 숙박시설이 많다. 교통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 나들목→ 21번 국도(비인 방면)→ 4km→ 비인 검문소 사거리(우회전)→ 12km→ 홍원항→ 마량포. |
관광업 중앙회, '2011 한국관광총회' 개최지 전라북도 선정
- 최병일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입력 : 2010.04.14 16:47 조회 : 1508 추천: 12 소셜댓글: 0 -->기사URL복사
중앙회는 전라북도가 개최지로 선정된 이유에 대해 새만금 방조제와 변산반도 국립공원 등 산ㆍ들ㆍ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새만금관광단지, 무주ㆍ진안ㆍ장수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 녹색 생태 관광자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인 판소리, 한국음식문화축제 등 도내에 산재한 우수한 문화유적 및 관광자원 등의 매력을 중점 피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ATA(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 한국지부는 지난 9일 이사회를 열고 심사과정을 거쳐 전라북도를 2011년 한국관광총회 개최지로 최종 선정했다. 한국관광총회는 여행업계, 호텔, 항공사, 언론사, 학계 등 2천여 명이 참가하는 관광업계 최고의 행사로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경남 창원에서 열렸으며, 올해는 오는 10월 충남 아산에서 열릴 예정이다.
새만금관광개발사업 첫 민간사업자 선정이스타항공그룹 계열 ㈜새만금관광개발, 새만금 신시도에 휴게소·전망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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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는 2011 대구방문의 해와 8월에 개최되는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개최를 통하여 관광산업을 대구의 희망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초빙 대구 관광이 나아갈 방향과 대구를 세계에 알리고 “더 큰 일류도시 대구”를 만드는 데 참여와 관심을 다지고자 이번 특강을 가지게 되었다.
이날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관광산업의 중요성과 외래 관광객 유치, 한국관광의 매력에 대해 피력하며, 대구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공무원들과 관광종사자들이 한국의 “氣, 興, 情”을 가지고 준비해야 함을 강조할 예정이다.
보도자료 출처 : 대구광역시청
보도자료 통신사 뉴스와이어(www.newswire.co.kr) 배포
단양군, 관광클럽 한국관광대상 수상
뉴시스 | 이병찬 | 입력 2011.01.01 11:04
1일 단양군에 따르면 군은 클럽이 오는 14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개최하는 클럽 정기총회에서 한국관광대상 상패와 함께 황금 열 돈을 부상으로 받게된다.
국내관광 모객순위 상위 70위 이내 여행사 대표 등이 2006년 결성한 클럽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관광 성공사례 발굴과 관광 진흥을 목적으로 이 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1~2회 시상식에서는 전남 목포시와 경북 울릉군, 경북 포항시와 전남 여수시가 한국관광대상을 받았다.
군은 관광시설, 관광마케팅, 관광인센티브, 기관장 관심도, 특수시책 등 대부분의 평가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김동성 군수의 관광객 유치 열의와 무인관광안내시스템 키오스크 도입, 소백산자락길 조성 등의 특수시책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군은 밝혔다.
김 군수는 "군이 추진하고 있는 관광정책을 관광전문 민간단체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면서 "관광열차 운행과 관광 홍보 마케팅을 보다 활발하게 추진해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bclee@newsis.com
‘속리산 도깨비’ 캐릭터 교과서 실린다 | |
내년 고교 2학년 미술 교과서에 소개 | |
1일 속리산향토문화사랑회에 따르면 도깨비캐릭터 제작과정이 천재교육(출판사)의 2011년판 고등학교 2학년 미술교과서에 소개된다. 이 출판사는 ‘캐릭터와 판타지’ 라는 코너를 통해 지난해 여름 속리산에서 열린 도깨비 페스티벌 사진과 함께 캐릭터 제작과정을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속리산향토문화사랑회와 한성대 이상원 교수팀과 만든 도깨비캐릭터는 머리에 솟은 뿔대신 산봉우리를 그려 넣고, 용의 코와 구름모양 눈썹 등으로 속리산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전통과 해학을 강조했다는 것. 이 단체는 속리산이 유·불·선이 공존하는 민속신앙의 중심지임을 알리기 위해 지난해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을 재구성해 도깨비캐릭터를 만들어 해마다 캐릭터을 앞세워 도깨비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박진수 사무국장은 “천재교육이 만드는 미술교과서가 30만부 이상 출판될 예정이어서 속리산도깨비를 알리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속리산도캐비캐릭터 페스티벌은 오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속리산 잔디광장에서 개최된다. 육종천 기자 skybell@daejonilb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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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의 최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위즈의 모습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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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지 않는다. 괭이갈매기가 하늘을 날다 자리를 잡고 둥지를 트는 섬, 온갖 생명을 품에 안고 골골이 길을 열어주는 바다. 뱃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등대이며, 눈을 부릅뜬 황금조기들의 모태가 묻힌 곳. 전라남도 영광군 송이면에 속한 일곱 개의 섬 칠뫼와 칠산바다가 그곳이다. 조선시대 칠산바다는 고기잡이 보다는 세원(세원)으로 어민보다 권문세가들에게 더 알려졌다. <신동국여지승람> 영광군편에는 "파시전이 군 북쪽 20리에 있는데, 조기가 생산된다. 매년 봄에 경외(경외)의 상선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 판매하는데, 서울 저자와 같이 떠드는 소리가 가득하다. 그 고깃배들은 모두 세를 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파시전은 칠산바다를 이른다. 초대 지도군수로 임명된 오횡묵의 <지도군총쇄록> 5월 13일자는 칠산바다를 더욱 자세하게 적고 있다. 전라도 지도진이 군치소로 승격되던 1896년은 완도도 군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지도군은 나주, 영광, 부안, 만경, 무안 등 5개 군 117개 섬으로 이루어진 16개면이었다. 같은 시기 돌산군과 완도군이 설군 되어, 비로소 서남해 다도해지역에 행정력을 배치한 것이다. 1월 22일 임명되어 5월 15일 현지에 부임했으니 당시의 뱃길을 짐작하고 남는다. 오횡묵이 부임한 여정은 강화-갑곶-손돌항-인천-팔미도-덕적도-마량진-옥구-고군산-칠산해-지도로 이어진다. 법성의 서쪽 바다에는 배 댈 곳이 없고, 이곳 칠산이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위도에서부터 나주까지 경계가 되고 이곳을 통칭 칠산바다라고 한다. 서쪽 바다는 망망대해로서 해마다 고기가 많이 잡혀 팔도에서 수천 척의 배들이 이곳에 모여 고기를 사고파는데 오고 가는 거래액은 가히 수십만 량에 이른다고 한다.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은 조기인데 팔도에서 같이 먹을 수 있다. 지금도 역시 갈치를 잡으려고 바다에 그물을 설치하였고 배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오횡묵은 칠산바다를 건너면서 본 법성포의 모습을 '사방으로 산들이 둘러싸인 곳에 별세계처럼 민가 천여 호가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모여 있었다. 항구의 전면에는 배 젓는 노가 모아 세워져 있는데 마치 갈대와 같았다'라고 적고 있다. 당시의 조기잡이 파시가 얼마나 성시를 이루었는가 짐작케 한다. 풍요롭던 '사흘칠산'
백여 리는 영광 북쪽의 위도, 식도, 치도, 상·하왕등도까지 이르는 길이다. 이 지역은 1960년대 초반까지 영광군에 속했다. 송이도 칠산도 인근의 바다에서 위도 인근 어장까지 조기파시가 형성되었던 곳을 칠산어장이라 했다. 여기서 잡은 조기들이 '영광굴비'로 전국에 팔려갔다. 위도의 치도리나 파장금에서 만난 촌로들은 영광굴비는 영광보다는 '위도에서 잡힌 조기로 만든 것인데'라며 아쉬워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칠산바다에 돈 실으러 간다 했던가. '사흘칠산'이라 했던가. 조기가 칠산바다에 머무는 시기 중 물때를 잘 맞춰야 두 사리에 일주일 정도 그물질을 할 수 있었다. 어쩌다 바람이라도 불고 날이라도 궂으면 이마저 힘들었다. 그래서 사흘 벌어 일 년을 먹고산다 했다. 그만큼 풍요롭던 바다였다. 하지만 칠산바다는 풍요롭지만 위험한 바다다. 북서풍이라도 불라치면 여기는 깊지 않는 바다가 뒤집어진다. 풍선배를 타고 조기잡이를 하던 숱한 사람들을 데려갔고, 경강으로 조세를 운반하던 뱃사람들도 변을 당하곤 했던 바다다. 바다생명의 모태인 모래와 펄로 이루어진 갯벌이다. 칠산바다가 그렇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나주의 서쪽은 칠산바다이다. 옛날에는 깊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모래와 앙금이 쌓여 점점 얕아져서, 썰물이 빠지면서 겨우 무릎이 빠질 정도이다. 한복판 한 군데 물길만이 강줄기와 같아서 배는 여기를 통해 다닌다"라며 적고 있다. 이중환의 기록에 따르면 처음부터 칠산바다가 조기들의 모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칠산바다는 원래 일곱 골의 육지였는데 바다로 변했다는 설화도 있다. 칠산골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매일 아침 부처님의 귀에서 피가 나는가 보러 갔다. 노인이 지성스럽게 부처님한테 다녀오니까 동네 사람이 왜 그렇게 날마다 다니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부처님 귀에서 피가 흐르게 되면 여기가 바다가 된다고 해서 보러 다닌다고 하면서 지사의 말을 전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영감이 미쳤다고 조롱했다. 그 중에 개를 잡는 백정 하나가 밤에 부처님 귀에다 피를 바르고 왔다. 이튿날 아침 노인이 가서 보니 부처님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네사람들에게 여기가 곧 바다가 될 테니 어서 피하라고 외치면서 높은 산 있는 데로 올라갔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따라나서지 않았다. 그날 아침에 원님이 문안드리러 들어온 육방관속을 보니 모두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관상을 잘 보던 원님은 "어제까지 괜찮던 얼굴이 오늘 따라서 모두가 죽게 되었으니 이상한 노릇이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고 묻자, 관속들은 "서씨라는 노인이 여기가 바다가 된다고 높은 산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지관, 개잡는 백정 등이 그간의 이야기를 전했다. 원님은 그 말을 듣고 그 노인의 말이 옳다. 우리도 어서 도망가자 하고 육방관속들을 끌고 산으로 올라갔다. 노인이 산으로 올라가는데 소금장사가 소금가마를 받쳐놓고 쉬고 있었다. 소금장사는 노인을 보고 어째서 이렇게 헐레벌떡거리면서 올라오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여기가 바다가 된다고 해서 높은 데로 도망간다고 했다. 소금장사는 바다가 된다 해도 이 지게 작대기 밑에까지 밖에 안 들어오니 더 올라갈 것 없다고 했다. 그러자 천둥이 울고 땅이 가라앉더니 바닷물은 소금 장사가 말한 대로 지게 작대기 밑에까지 차고 말았다. 칠산골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서노인과 그 가족, 원님네 식구, 육방관속의 식구, 그리고 소금 장사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죄다 죽고 말았다. 이 서씨의 자손은 지금 충청도에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새우젓 팔러간 남편 왜 안 오실까
칠산바다의 작은 섬에서 만난 팔순 노인의 이야기다. 아버님이 꽤 큰 중선배를 가지고 배를 부렸다. 칠산바다에서 새우를 잡아 젓을 담아 영산포와 법성포 등지에 팔고 올 때면 옷, 쌀 등을 가지고 왔다. 간혹 물건을 가져다 섬사람들에게 팔기도 했다. 장사수완이 좋았던 아버지는 배에 가득 새우젓을 싣고 나가면 달포가 지나 한 달이 되어서 오시는 때도 있었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 알았지만 영산포에도, 법성포에도, 우리 섬 앞 큰 섬에도 여자가 있었다. 작은 각시가 여럿 있었다. 물론 어머니도 다 아는 일이다. 칠산바다에서 조기를 잡았던 송이도 사람들은 작은 풍선배로 군산, 목포, 여수에서 올라온 큰 중선배보다 많은 조기를 잡았다. 이들이 큰 배를 제쳐두고 많은 조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칠산바다의 물길을 알기 때문이다. 조기라는 놈은 물길을 따라 줄지어 들어온다. 칠산바다에서 태어나 자랐고, 바다에 기대어 살아왔기에 어느 풀등에 새우가 많고, 어느 모래밭에 꽃게가 많은지 손바닥 보듯이 들여다볼 수 있다. 흑산도를 돌아 칠산바다로 돌아오는 조기 길목을 이들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주벅 하나로도 늘 만선을 누리던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진정한 칠산바다의 주인들은 큰 배를 가지고 조기를 훑어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조기가 사라지면서 외지배들은 더 이상 칠산바다를 찾지 않았다. 칠산바다 사람들의 또 다른 희망은 꽃게였다. 칠산바다를 외지 배들에게 내준 섬사람들이 이제 제대로 주인행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바다도 오래가지 않았다. 조기가 파시를 이루던 시절에는 누렇게 알밴 암게 정도는 되어야 거들떠 봤던 녀석들이었다. 수컷은 고추나무 옆에 꽂아 거름으로 사용했다. 아직도 칠산바다 인근 작은 섬 송이도와 안마도에는 꽃게를 잡아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근 낙월도에서는 멍텅구리배를 이용해 젓새우를 잡았다. 지금은 낙월도 앞 갯벌에 괴물처럼 육중하고 못생긴 멍텅구리배를 붙잡아 두던 닻만 고개를 처박고 있을 뿐이다. 꽃게잡이는 새우잡이에 비해서 일하는 사람이 작을 뿐 아니라 그물이나 어구를 준비하는 비용도 싸다. 칠산바다로 통하는 중요한 뱃길이 법성포구였다. 지금은 물이 쓰면 배가 뻘에 얹혀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토사가 쌓여 고기잡이를 나가려면 배가 움직일 수 있는 물때에 배를 포구에서 빼 놓아야 할 형편이다. 칠산바다가 조기의 모태라면 법성포구로 이어지는 갯골은 탯줄이다. 황금조기를 기다리는 칠산도 괭이갈매기
영광에 원전이 들어서면서 수조원의 예산이 투자되어 2년 후 인구가 늘어 영광시가 된다던 청사진은 잊혀진지 오래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홍보영상을 만들어 그렇게 선전하던 '기적의 땅'. 첨단과 문화가 함께 하는 미래의 땅, 칠산바다를 내주고 얻은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칠산바다를 위협하는 것은 인간들이다. 달라는 것을 모두 내주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칠산바다. 이제 앙상한 육신마저 달라고 보챈다. 일제강점기에는 산미증식계획으로, 해방 후에는 '밀가루공사'로 바다와 갯벌이 메워졌다. 땅을 가질 수 있다는 말에 밀가루로 연명하며 이를 악물고 지게질을 했었다. 그 땅은 대부분 권력과 법률에 밝은 인간들에 의해서 농간질 당하고 말았다. 독재시절에는 중장비들이 동원된 무시무시한 국책사업으로 주민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바다를 내주었다. 새만금에서 장항에서 바다와 갯벌을 노리는 인간들의 탐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칠산바다에 참조기가 사라졌다. 왜 사라졌을까. 영광원자력 발전소에 배출하는 온배수, 간척과 매립으로 산란장의 환경변화, 무분별한 남획 때문이라고들 추측한다. 조기가 잡히지 않자 어민들은 꽃게와 새우로 질긴 삶을 이어갔다. 이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조기가 그랬던 것처럼. 칠산도를 지키는 괭이갈매기는 둥지를 박차고 높이 날아 바다를 응시한다. 흑산도를 지나 칠산바다로 줄지어 들어오는 조기떼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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