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 6가에 위치한 국립의료원 원내에는 ‘스칸디나비안 클럽’이라는 뷔페 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세간에는 이 식당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그 식당의 설립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선 병원 안에 뷔페식당이 있는 것부터 의아해 할 뿐더러 그 이름조차도 생소하게 여긴다. 하지만 놀랍게도 ‘스칸디나비안 클럽’이 그 자리에 있어온 지 벌써 만 50년이 훌쩍 넘었다. 1958년 11월 국립의료원이 같은 자리에 개원함과 동시에 그 클럽도 문을 열었던 것이다.
국립의료원의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기에는 늘 한국전쟁의 슬픈 역사가 함께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 안보리는 16개국으로 구성된 국제연합군을 한국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북유럽의 세 나라, 덴마크 • 노르웨이 • 스웨덴은 각각 병원선과 야전병원, 그리고 적십자 병원을 통해 전쟁부상자를 위한 의료단을 파견하였다. 당시 덴마크 병원선은 인천앞바다에 정박하였으며, 노르웨이 야전병원은 동두천에, 스웨덴 야전병원은 부산에 각각 주둔하였다. 그리고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되자 3국의 의료단은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휴전이 되었어도 한국은 참혹했던 전쟁의 후유증으로 말할 수 없이 피폐하였으며, 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했었기에, 전후 한국 정부는 다시 유엔을 통하여 스칸디나비아 3개국의 의료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1956년 3월, 한국정부와 스칸디나비아 3국 정부, 그리고 유엔의 한국재건단(UNKRA)이 공동으로 서울에 의료원을 설치할 것을 합의, ‘한국의 메디컬 센터 설립과 운영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고, 마침내 1958년 10월에 지금의 국립의료원이 개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967년까지 10년간, 1,2차 협정을 거쳐 연 인원 370여명(가족 포함 600여명)에 이르는 스칸디나비아 의료진이 국립의료원에 주재하였다. 그리고 당시 ‘스칸디나비안 클럽’은 그 주재 의료진을 위한 식당 및 사교의 장으로 활용되었던 시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968년 스칸디나비아 의료단이 완전히 철수하면서, 한국 정부와 스칸디나비아 의료사절단은 국립의료원의 완전 이양과 더불어 한국 - 스칸디나비아 재단을 설치, ‘한스재단’에 스칸디나비안 클럽의 운영을 맡기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클럽은 이후로도 한스재단에 의해 계속 운영되었고, 그 수익금으로 국립의료원과 스칸디나비아 3국의 병원들과의 교류를 유지하며 양국간의 깊은 역사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이어주는 기념비로 남아있게 되었다.
2008년 10월 25일 설립 50주년을 맞이한 국립의료원은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개최하였다. 병원설립 배경 및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의학박물관을 개관하였고, 50주년 기념비를 세웠으며 학술세미나도 마련하였다. 약 200여명의 외부 귀빈들을 모신 기념식에서는 현재도 교류중인 스칸디나비아 3국의 병원장들(덴마크 Rigs병원, 노르웨이 Liks병원, 스웨덴의 Uppsala병원)을 초대하여 교류 협력을 위한 새로운 협약서를 교환하기도 하였다.
한편, 국립의료원 설립 초기 10년간의 스칸디나비아 의료진과의 공동 운영 및 활동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68년도에 설립되어 2008년으로 40주년을 맞이한 한국 - 스칸디나비아 재단은, 국립의료원의 50주년 행사에 맞추어 이를 위해 스칸디나비아 3국으로부터 전 • 현직 관련 인사들을 초빙하였고, 또 부속 시설인 스칸디나비안 클럽에서 대규모 리셉션을 후원하였으며, 의학박물관 개관을 위한 자료 기증 및 3국 대사관이 주최한 각종 행사들에도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같은 시기에 노르웨이와 스웨덴 대사관에서는 여러 문화 행사들을 유치, 지원하였는데, 노르웨이에서는 국립극단이 방한하여 서울 국립극장에서 헨릭 입센의 ‘페르귄트’를 무대에 올렸고, 남산 문학의 집에서는 노르웨이 계관시인 울라브 하우게의 시집출간을 기념하는 ‘노르웨이 문학의 밤’ 행사를 개최하였다. 때마침, 노르웨이 문학의 밤 행사를 위해 내한한 울라브 하우게 100주년 기념사업회의 대표인 크리스틴 헬레발레 여사는 과거 국립의료원에서 봉사했던 부모를 둔 노르웨이 의료진 가족으로써, 당시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적이 있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국립의료원 기념행사에서는 물론, 문학의 밤 행사에서도 이와 같은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하면서, 어린 시절의 다양한 추억들과 함께 당시에 익혔던 한국 동요와 민요(나비야, 개나리, 아리랑)들을 생생하게 들려주며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이보다 한달 앞서 한국을 다녀간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재향 군인회 방한단 역시 국립의료원 시찰 및 스칸디나비안 클럽의 방문을 빼놓지 않았다. 노르웨이 재향 군인회 방한단장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한국 민요인 뱃노래를 우렁찬 소리로 씩씩하게 부르며 과거를 회상하였다. 특히 전쟁 직후의 피폐한 상황을 대변했던 청계천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너무나 달라진 지금의 모습에 감동하여 울먹이기까지 하였다. 젊었던 시절 목숨을 걸고 구원에 나섰던 나라가 이제는 그 희생이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하게 성장하고 발전했다는 사실에 우리가 아닌 그들이 오히려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스웨덴 대사관에서는, 2008년 4월에 용인 한택 식물원에서 칼 폰 린네 탄생 300주년 기념 전시회를 개최한 것을 비롯하여, 5월에는 교보문고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탄생 100주년 기념 도서전을, 10월에는 제1차 한림대-웁살라대 국제 심포지엄을 후원하였고, 그 외에도 자국의 다양한 젊은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을 열심히 홍보하였다.
마침 2009년은 한국이 덴마크 및 노르웨이, 스웨덴과 외교 수립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에 맞추어 주한 3국 대사관은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국립의료원과 한국 - 스칸디나비아 재단(이사장 박인서 박사)역시, 과거의 고귀한 우정의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이들 나라간의 교류에 동참하면서 돈독한 우의를 다지고 있다. 이리하여 한국과 스칸디나비아 나라들과의 교류는 앞으로 경제, 정치 및 의료분야는 물론, 각종 문화 분야에 이르기까지 더욱 활발하게 지속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