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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송영길-2012기후협약총회(녹색성장연구소)

그린페 2009. 12. 18. 09:48

원희룡, 동교-상도동계 송년모임 참석

[연합포토] 2009년 12월 17일(목) 오후 04:20   가| 이메일| 프린트
(서울=연합뉴스) 김병만 기자 = 1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보고싶은 사람들, 2009년 송년모임'에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국민의례를 준비하며 서 있다.
2009.12.17
 

송영길 의원 “정부, 남북 의료협력 큰 그림 그려야”2009-12-16 05:15 경향신문

...토론회 열어 국회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민주당 송영길 의원(사진·인천 계양을)이 16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소회의실...

송영길 "정동영·이해찬 복당시켜야"2009-12-15 17:17 뉴시스

【광주=뉴시스】맹대환 기자 =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은 15일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샐러리맨 신화' 원세개, 왜 파멸했나?
07.12.24 08:52 ㅣ최종 업데이트 07.12.24 08:52 김종성 (qqqkim2000)
  
베이징 자금성 안의 군기처 건물에 있는 원세개의 초상화.
ⓒ 김종성
원세개

중국 근현대사에서 원세개(위안스카이, 1859~1916년)만큼 독특한 캐릭터도 없을 것이다. 계속되는 행운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결국 인생을 불행하게 끝마친 사람이다.

 

과거에 실패한 그는 스물 두 살이던 1881년경에 군인 오장경의 수하로 들어가 밑에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나중에는 신해혁명의 와중에 어부지리로 총통이 되는 행운을 얻더니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황제까지 되었다가 온 세상의 비난을 한 몸에 다 끌어안은 채 불과 2개월 만에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는 요독증이란 질병에 걸려 곧바로 세상을 떠났다.  


원세개에게 ‘로또복권’처럼 인생역전의 기회를 준 사건은 조선의 임오군란이었다.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광동수사제독 오장경이 4500여 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와 군란을 진압했는데, 그 4500여 명의 군인들 틈에 원세개라는 23세의 청년 군인이 섞여 있었다.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영향력이 가장 막강했던 1882~1894년 시기에 조선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이 이후 원세개의 앞날을 휘황찬란하게 만든 결정적 요소였다. 조선문제에 관여한 이홍장·원세개·당소의 등이 당시 혹은 그 이후에 중국의 실력자가 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청나라 정치인들에게는 조선이란 곳이 일종의 출세 코스나 마찬가지였다.

 

갑신정변 때문에 조선 현지 책임자인 진수당이 문책성 경질을 당한 뒤에 원세개는 25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진수당의 후임자가 되어 본국의 대(對)조선 정책을 집행한다. 당시의 실권자인 북양대신 이홍장은 자신이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인물을 조선 책임자로 심어두고자 했던 것이다.

이때 원세개의 직함은 주찰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 승용도보용지부(駐札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 升用道補用知府)였다. 맨 끝에 있는 보용지부(補用知府)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오늘날로 치면 군수급 후보자 정도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본국에서는 군수급 후보자 정도의 대우를 받지만, 그는 조선에서는 최고위급 청나라 관리로서 행세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실패한 후에 오장경의 수하로 들어간 원세개에게는 ‘해외파견 근무’가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준 셈이다. 

 

젊은 나이에 벼락출세를 한 원세개

젊은 나이에 그것도 좌절 상태에서 갑작스레 벼락출세를 해서 그런지, 원세개는 이후 10년 동안 조선에서 참으로 방약무인한 행동들만 일삼았다. 그 자신의 입장에서는 젊음과 패기를 앞세운 야심한 행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제3자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원세개가 조선에 대해 극도의 내정간섭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고종 앞에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양 외교관들마저 그의 건방짐과 무례함을 비난할 정도였다. 그는 고종을 만날 때면 항상 삼읍례(三揖禮)를 하곤 했는데, 이런 인사법은 대등한 관계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국의 군주를 대등한 친구 정도로 대우한 것이다.

안 그대로 자의식이 강한 고종이 원세개를 볼 때마다 속이 얼마나 부글부글 끓었을 것인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원세개가 고종 폐위까지 도모한 적이 있었으니, 그가 얼마나 조선 조정을 우습게 여겼는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원세개 때문에 서양열강의 외교관들이 청나라보다는 일본에 심정적으로 기우는 현상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홍장은 원세개를 끝까지 든든히 지켜주었다. 오장경에 이어 이홍장이 원세개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원세개가 얼마나 행운아였는가는, 청일전쟁 패배에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나라로 돌아간 뒤에 여전히 출세 가도를 달렸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홍장의 뒤를 이어 북양군벌의 지도자가 되었고, 결국 이것을 바탕으로 1912년 3월에 중화민국 임시총통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과거에 실패해서 오장경의 수하로 들어갔다가 때마침 조선에 파견되어 진압군의 일원이 되었고, 진수당의 실패 덕분에 그 자리를 이어받아 조선 현지 책임자의 지위에 올랐으며, 신해혁명(1911년) 시기의 어수선한 틈을 타서 손문을 밀어내고 총통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요즘 말로 하면 그야말로 ‘샐러리맨 신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원세개는 중국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5년’도 채우지 못했다. 1912년 3월에 총통에 취임해서 1916년에 요독증으로 죽었으니, 그는 재임 4년 만에 권좌로부터 아주 영원히 물러나고 만 것이다. 요독증이란 요로 결석 등으로 인해 생기는 질병으로서 사지에 경련이 일어나기도 하고 또는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심장마비로 죽기도 하는 병이다.

원세개가 권좌에 오른 지 4년 만에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만 것은 결코 질병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질병은 그의 과욕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 그의 과욕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세상을 과거로 되돌려놓으려는 그의 무모함이었다. 1911년 신해혁명은 봉건제에 대한 중국인들의 명확한 거부였다. 그리고 그 신해혁명 덕분에 원세개도 비록 어부지리이긴 하지만 어쨌든 총통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원세개, 신해혁명 덕분에 총통자리에 오르다

 

그처럼 신해혁명 덕분에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원세개는 막상 권좌에 오르고 나서는 신해혁명의 정신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반봉건 민주혁명인 신해혁명을 뒤엎고 봉건적인 황제제도를 부활시키려 한 것이다. 그에게는 봉건전제시대가 청산되어야 할 과거가 아니라, 그립고 되돌아가고 싶은 ‘잃어버린 날들’이었던 것이다.

총통이 된 원세개가 아예 황제까지 되어 보려고 전개한 구체제 회복운동을, 중국사에서는 원세개의 제제운동(帝制運動)이라고 부른다. 국내의 거센 반발 때문에 제제운동이 여의치 않자, 원세개는 일본까지 끌어들여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려 한다. 산동지역의 권익 등을 요구하는 일본의 21개조 요구를 그가 선뜻 수용한 것은, 일본의 도움을 빌려 황제 자리에 오르기 위한 포석이었다.

소원대로 1916년 1월에 황제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계속되는 국내의 반대운동과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그는 결국 1916년 3월에 황제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원세개를 지지하던 국제사회도 중국인들의 거센 반발을 보고는 마음을 바꾸어 원세개에게 황제제도 취소를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긴 심리적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 되어 그는 요독증에 걸렸고 결국 그 때문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황제가 되어 보겠다는 과욕 때문에 자신의 생명마저 잃고 만 것이다.

단순히 황제가 되어 보겠다는 야심을 품은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닐 것이다. 누구든지 최고지도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원세개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방법으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세상은 이미 황제체제를 내버리고 민주적인 총통제를 선택했는데도, 그는 시대의 물결을 거슬러 황제제도의 부활을 꿈꾸었다. 옳건 그르건 간에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이 그를 파멸로 이끌고 간 것이다. 총통 자체도 중국 최고지도자의 자리인데, 그는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황제의 부활을 꿈꾸지 않고 총통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다면, 원세개는 역사에서 이처럼 욕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는 이전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숭배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시대의 흐름까지 거스르면서 과거를 회귀시키려 한 그의 오만이 결국 그를 파멸시키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하지만 않았다면, 총통이 된 지 4년 만에 물러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그때그때 심판을 받았더라면, 원세개가 그처럼 오만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청일전쟁 패배와 무술변법 실패 등에 대해 책임이 있는 죄인이다. 이 외에도 그는 수없이 많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해혁명 직후의 중국인들은 그런 그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다. 죄인을 벌하기는커녕 도리어 총통으로 뽑아주었으니, 안 그래도 오만한 원세개가 한층 더 오만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원세개를 오만하게 만든 사람들이 결국에는 그를 죽음으로 내몬 셈이다.

혹시라도 역사와 시대의 발전을 거스르는 방법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원세개를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누구나 다, 원세개가 당한 것과 같은 비참한 파멸을 비껴갈 수 없을 것이다. 

요즘 대통령이 민생현장을 돌본다고 시장, 군대, 들판으로 다니며 사람들과 섞여 일하는 모습을 자주보게 된다. 이들을 가지고 반대편에서는 전시행정이라고 하고 심한사람들은 쇼한다고 혹평한다.
사실 냉정히 말해서, 민생현장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시장에 들러서 만두 하나 맞나게 먹는 장면을 연출한다고 해서 민생경제가 살아나는 것과의 관계성은 규명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행정과 정책은 정확한 제도와 확실한 실천으로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부문의 관주도 정책은 제도가 선행되지 않으면, 대통령을 제외한 어느 공무원이나 조직이 움직일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허상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와 같은 행정이 전시행정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서는 관련한 제도와 정책이 뒷바침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함은 당연한 이야기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을 때, 비로서 위와 같은 일들은 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지극히 정치적인 민심이나 여론 형성의 과시용 전시용 나들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에 이런 일들이 많이 있어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군부독재 시절에 패쇄된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일방적으로 시민들과 소통하는 도구로 집권 세력들이 써 먹는 바람에, 쇼한다는 선입견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쇼같은 대통령 순방이나 예방조차도 안타깝게 목메어 기다리는 곳도 있다.
세상이 온통 경제위기에 가려서, 한가롭게 문화예술관련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운 현실이긴 하지만, 바로 문화예술계가 그러한 곳이다.
아무리 폭력적인 군사정권의 강압정치가 일반화되었던 시절에도 문화부문의 각종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하여 문화예술부문의 관심을 나타내곤 하였다. 물론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어용문화단체의 난립과 관변문화예술행정가들의 횡행이 부정적인 측면으로 나타나긴 했어도, 최소한 우리나라 최고통치자가 문화예술에 대해서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대중적 의사표시정도는 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민심순방 쇼는 군사정권과는 달리 자칭 민주정부라고 생각했던 김영삼 전대통령시절 부터 급격히 줄었다. 굳이 민심의 현상까지 헤집고 다닐 필요가 없는 자신감과 그런 전시행정의 폐해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도 나의 기억 속에 문화에 대해서 가장 만은 관심과 쇼(전시행정)을 했고, 실질적으로도 정책을 추진했던 대통령은 김대중 전대통령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예술의전당에서 각종 사업을 담당하며 근무했던 본인으로서 직접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그 것이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전시행정으로 보일지라도, 대통령방문을 오랫동안 지켜봤던 실무책임자로서의 피부로 느끼는 현장감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군사정권하에서 의례적이고 향식적으로 대우를 받았던 문화예술계의 입장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보여 줬던 문화예술계의 관심은 정말로 고마우ㅜㄹ 정도 였음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또한 실질적이고 명목적으로도 국가예산의 1%를 문화예술부문으로 배당하고자 했던 공약을 지켰다는 것을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전시행정을 우습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IMF를 겪으면서 힘들게 지내고 있는 시절에 국가예산을 증액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이라는 것은, 현장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민주화 시대로 접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행정의 폐해라는 선입견, 그리고 실제로 문화예술에 대한 무관심,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오히려 문화예술현장은 군부정권시절 보다 중앙정치로 부터 소외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이 바쁜 일정 중에도 차분하게 음악공연을 감상하며 즐기는 모습, 심오한 그림 앞에서 명상에 잠기는 모습, 힘차고 역동적인 무용을 즐기는 모습, 이런 것도 시장에서 만두를 맞있게 먹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만큼 중요한 전시행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 부턴가 경제에 밀리고 정치에 밀려서 갑박하게 현장정치에 매몰된 대통령의 모습만을 익숙하게 보게되고, 문화예술의 즐거움과 깊이에 빠진 대통령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사실 그와 같은 전시행정을 구걸할 필요까지야 없겟지만, 진정으로 서민의 생활을 위해서 서민속으로 들어가는 쇼를 하는 것처럼, 진짜 문화예술을 즐기고 싶어서 공연장을 찾는 쇼라도 필요한 시절이 요즘이라고 생각한다.
이왕 전시행정하는 것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알여주는 의미라도, 대통령이 한번쯤 침체된 공연과 전시예술 현장을 방문해 보는 것도 어떨런지 제안해 본다.

 

(벤쿠버공항)캐나다 벤쿠버 공항 & 에어캐나다 탑승하기 & 인...  2009-10-30

...있으면 되니.. 너무 좋은거 아닌.. 천가방 이나.. 이마트 가방도 좋아여. ^^ 이녀석은.. 언제 저길 올라갔는지..ㅋㅋㅋ 에어캐나다 티켓팅 해주시는 분 이었는데... 미국 여배우 닮으셨어요.. 누군지.. 갑자기 기억이 안나네요.. ^^ 아이가 어리면 유모...

blog.naver.com/banyson/20092371991 블로그명: ★ 알뜰한 젤리맘의 세상을 행...랭킹2,423위

 

李대통령 "2012년 기후변화협약 총회 한국에서"
[프레시안] 2009년 12월 18일(금) 오전 09:52   가| 이메일| 프린트
코펜하겐 기조연설…"내년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 설립하겠다"

 [프레시안 송호균 기자]
 기후변화 정상회의가 열리는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간) 오는 2012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한국개최를 제의했다.
이 대통령은 '다함께 행동을(taking action together)'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포스트 2012 기후체제의 성공적인 출범을 지원하고자 저는 오는 2012년 제1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한국개최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나부터(Me First')' 정신으로 행동하자"

이 대통령은 "이에 내년 상반기 중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를 설립할 예정"이라면서 "이 연구소는 전 세계 석학과 전문가, 시민활동 지도자들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며, 이는 선진국과 개도국을 아우르는 글로벌 파트너십에 기반하여 녹색성장 플랜을 제시하는 싱크탱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자신이 제시한 국가발전 패러다임인 '저탄소 녹색성장'을 설명한 뒤 "대한민국의 이러한 노력은 사회와 경제를 저탄소체제로 만드는 자체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면서 "이러한 '녹색성장' 모델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한국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 대통령은 최근 정부가 2020년까지 온실가스 4% 감축안을 발표한 것을 언급하면서 "한국은 약속드린 대로 국가 온실가스 중기 감축목표를 발표했다"며 "그것도 비의무감축국가로서 자발적으로 조건 없이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최고수준의 목표를 설정했다"고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나부터(me first)' 행동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위한 가장 빠르고 올바른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라며 "'너부터(you first)'라는 마음가짐으로는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해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많은 국가들이 찬성하고 있지만,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우리는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이느냐'하는 문제 못지않게 '어떻게 줄이느냐'에 대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세계가 우리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며 "이들에게 실망이 아니라 희망을 안겨줄 수 있도록 함께 행동에 나서자"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이날 기조연설에 이어 18일에는 환경건전성그룹(EIG) 국가 대표로 두 번째 연설에 나설 예정이다.
청와대 김은혜 대변인은 현지 브리핑에서 "이번 총회에서 두 번의 연설기회를 제안받은 정상은 이 대통령이 유일하다"면서 "비의무감축 국가로는 유일하게 한국이 온실가스 중기감축목표를 선제적으로 발표하며 자발적 감축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대한 국제적 호응과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송호균 기자 ( uknow@pressian.com )
 


여수랑2012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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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기후협약 총회 여수 유치를”… 영호남 12개 시민단체 한목소리
[동아일보] 2009년 12월 18일(금) 오전 06:30   가| 이메일| 프린트
[동아일보] 2012년 아시아권서 열려
‘2012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전남 여수에 유치하기 위해 영호남 시민단체가 손을 잡았다. 여수엑스포시민포럼, 순천YMCA, 광양YWCA, 고흥참여연대 등 전남 동부권 9개 단체와 경남 남해 광양만어민대책위원회, 하동재향군인회 등 경남 서부권 3개 단체는 16일 여수시청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2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여수 유치운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가 덴마크에서 열리는 코펜하겐 당사국총회에서 2012총회를 한국에서 유치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환영한다”며 “여수박람회 핵심 주제가 ‘환경(기후)’인 만큼 당사국총회는 여수에서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대규모 국제회의를 개최하는데 여수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만큼 전남 동부와 경남 서부 전체를 대회장으로 편성해 행사를 치른다면 지역 균형발전의 성과도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여수시는 2012 당사국총회 여수 유치를 위한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했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기후변화협약의 최고기구로 협약 이행에 필요한 법적, 제도적 조치 결정 및 이행상황 점검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 등 국제사회 기준을 만들어가는 국제회의. 협약 당사국 192개국과 국제기구 82개, 비정부기구(NGO) 대표 등 전 세계에서 연인원 1만 명이 참석해 2주간 토론과 협상을 벌인다. 2012년 총회는 5개 대륙 순환 원칙에 따라 아시아권에서 열린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2012년 유엔기후변화회의 유치 추진
2012년 유엔기후변화회의 유치 추진
[앵커멘트]
우리나라가 오는 2012년 유엔기후변화회의 유치를 추진합니다.
이 대통령은 오는 1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회의 기조 연설을 통해 유치 의사를 표명할 예정이며, 유치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도에 이승윤 기자입니다.
[리포트]
정부가 기후변화와 관련한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인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국내 유치에 나섰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2012년 11월 말 혹은 12월 초에 열리는 제1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유치를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는 1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정상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2012년 당사국 총회 유치 의사를 밝힐 예정입니다.
대륙별로 열리는 당사국 총회의 16차 회의는 멕시코, 2011년 17차 회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릴 예정이며 2012년은 아시아 국가 차례입니다.
이 관계자는 현재까지 아시아서 총회 유치를 신청한 나라가 없는 데다 아시아권에서 한국 개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없어 유치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또 정부 대표단이 사흘 전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아시아그룹 회의'에서 유치 의사를 표하자 대부분의 국가들은 최적의 선택이라며 지지의사를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중국과 인도는 기후변화 문제에 나서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다 일본과 인도네시아는 관련 회의를 개최했던 만큼 경쟁 상대가 없는 상태입니다.
코니 헤데고 총회 의장도 한국의 유치 의사를 전해듣고 "좋은 소식"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달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는 국가로는 처음으로 2020년 배출전망치 대비 온실가스 30% 감축 계획을 발표하는 등 우리나라의 노력이 인정 받은 결과라는 분석입니다.
우리나라가 2012년 총회를 유치할 경우 2012년 만료되는 '교토 의정서 체제'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체제를 주도하는 의미가 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습니다.
YTN 이승윤[risungyoon@ytn.co.kr]입니다.

순천 신대배후단지 여수엑스포 환승주차장 급부상
[데일리안] 2009년 12월 18일(금) 오전 08:58   가| 이메일| 프린트
[데일리안 박종덕 본부장]전남 순천에 있는 신대배후단지가 여수세계박람회 기간 중에 관광객들이 사용할 환승주차장 대상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도17호선 신대 IC에 위치한 신대배후단지는 수도권을 비롯하여 전국의 관람객들의 접근이 매우 용이할 뿐만 아니라 여수공항과 인접하고 있어 박람회장간 접근성이 좋다.
특히, 친환경적으로 조성된 주변경관은 관람객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 줄 뿐 아니라 짧은 기간내에 조성되어야 할 환승 주차장을 별도의 부지개발 없이 박람회 기간동안 주차장 부지를 무상으로 임대할수 있어 예산 절감 효과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환승 주차장 부지로 거론되고 있는 신대배후단지를 17일 강동석 조직위원장이 방문하여 위치와 진출입로가 환승주차장으로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순천시는 2012여수세계박람회 성공적 개최를 위해 순천만 지원시설 구역 지정과 함께 교통, 숙박, 관람객을 위한 볼거리 제공 등 공동협력 사업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