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페 2009. 12. 14. 13:07

【纏足(전족)】의 유래는?
시티뉴스
 예전에 학교에서 중국 역사를 배울 때, 중국 여자들은 어려서부터 발을 작게 만들려고 어려서부터 헝겊으로 발을 꽁꽁 둘러 싸매서 발이 자라지 않아 커서도 걸음걸이가 정상적이지 못하고 뒤뚱뒤뚱 거리며 종종걸음을 걷는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여자가 시집을 가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여자가 귀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도 가르쳤다. 이러한 행위를 일컬어 ‘전족(纏足)’이라고 한다.
  ‘纏(전)’이라는 한자는 ‘얽어맨다’의 뜻이다. 꽉 조여서 꼼짝달싹 못하도록 붙들어 맨다는 뜻이다. 그러니 ‘발을 꽉 붙들어 매는 것’이 바로 ‘纏足(전족)’이다.
 중국에는 최근까지도 전족을 한 만주족 여인이 생존해 있었다. 그녀에 대한 운명의 고달픔은 중국사회에서 옛 봉건주의의 잔재로 인하여 많은 현대 중국인들의 입에 회자(膾炙)되었다.
 
▲ 전족     © 시티뉴스
 그러면 전족은 몇 살 때부터 어떻게 하는가?
  여자 어린이가 5, 6세가 되면 어른들이 강제적으로 두 발의 발바닥 중앙을 향하여 앞 발가락을 굽히게 만드는 데, 그 형태가 눌려서 활꼴 형태가 되게 만든다. 이때 매우 길고 긴 헝겊으로 감싸서 꼭 고정시켜서 조그마한 발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여자 아이가 키는 자라고 두발은 자라지 않게 되어 발이 완전히 기형이 된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러한 발을 중국 사람들은 ‘金蓮(금련)’ 혹은 ‘弓足(궁족)’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굳이 풀이하면 ‘황금 연꽃’ ‘활 모양 발’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어린이의 발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붙인 명칭이 참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전족된 여인의 발걸음은 흔들흔들 뒤뚱뒤뚱 걸을 수 밖에 없고 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전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의 5대시기(당나라가 분열하면서 송나라가 통일할 때까지의 혼란했던 중국역사의 한 시기)의 남당(南唐) 때의 궁녀인 ‘窅娘(요랑)’이라는 여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몸매가 아주 날씬하고 춤을 잘 추었다고 한다.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는 춤을 출 때 비단 헝겊으로 두 발을 꽁꽁 싸매서 조각달의 모양을 만들었다고 한다. 황제가 이렇게 사뿐사뿐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우아한 춤 솜씨가 뛰어남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녀의 꽁꽁 싸맨 초승달 같은 발의 모양을 한 전족의 춤은 더할 수 없는 매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황제는 하인들로 하여금 진귀한 보배로 장식한 여섯 자 정도 높이의 ‘金蓮台(금연대)’를 만들어 ‘요랑’으로 하여금 그 위에서 전문적으로 춤을 추도록 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한 그녀의 춤을 구경한 사람들은 ‘전족(纏足) 춤’이 매우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여겼다.
이러한 내용이 궁궐의 다른 여자들에게도 전해져서 ‘요랑’을 모방하여 ‘전족(纏足)’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든 여자들에게도 ‘전족(纏足)’을 하도록 하게 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사람들은 이렇게 여자들의 발이 아주 작은 것을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여자들은 전족을 통하여 더욱 발을 작게 만들었다.
 중국에서 1천년이상 전해 내려온 이러한 ‘전족(纏足)’은 바로 여자를 경시하고 속박하는 행위였다. 그러니 여자들이 마음대로 문 밖 출입도 할 수 없고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전족(纏足)’의 성행은 남성들의 성 충족을 위한 변태적 행위의 하나라고 한다. 전족을 통하여 하체에 힘이 쏠려서 남성의 성 충족을 해준다는 것이다.
 현대 여성들이 즐겨 싣는 하이힐도 같은 원리에 의해서 남성의 성 충족을 위해 고안된 신발이라고 하니, 양(洋)의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남성위주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의 삶이란 고난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유병상 편집위원> yoobs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