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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희-용산 수상호텔

그린페 2009. 11. 17. 01:05

이맹희(이병철 장남)의 고백

 

이맹희의 고백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버지 이맹희씨


경향신문의 특종에 의하여 촉발된 韓肥(한비·한국비료) 밀수사건은 움직일 수록 세력이 커지는 태풍이 되었다. 언론이 民心을 자극하고 정치권을 격발 시켰다. 여론에 떠밀린 朴대통령은 9월19일 大檢으로 하여금 밀수사건을 전 면적으로 재수사할 것을 지시했다. 李秉喆은 해명광고를 내고 1년 전에 창 간한 중앙일보를 내세워 저항을 시도했으나 다른 언론들의 일제 공세를 유 도한 셈이 되었다. 李秉喆측은 이 사건은 회사의 직원 몇 사람이 개인적으 로 저지른 범죄에 불과하고 그에 따른 처벌도 이미 받았으므로 이 문제를 다시 수사하는 것은 一事不再理(일사부재리)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삼성재벌의 한비밀수사건으로 구속된 이창희 이일섭 피고인에 대한 공판이 서울 지검에서 속개되고 있다



삼성재벌이 관련된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 재판이 열리는 공판정에 나온 관련피고



韓肥密輸 선고 1967. 3월4일 오전 정치문제로까지 번진 `삼성재단 산하 한국비료주식회사에 의한 사카린 원료(otsa) 밀수사건` 선고공판에서 공소 사실을 그대로 인정, 상무 李昌熙 피고에 징역 5년 벌금 천7백만원, 전 상무 李逸燮 피고 .




1966년 11월7일 서울교도소에 수감중인 한국비료밀수사건의 한비상무 이창희씨(이병철씨의차남)



朴대통령은 9월21일 『이번 삼성사건을 보고 재벌이 언론을 독점, 私物視하 는 폐단을 막을 필요성』에 대해서 성명을 내기도 했다. 언론-정치권-정부 -대통령의 연합 총공세에 직면한 李秉喆은 9월22일 한국비료를 국가에 바치 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 사업에서 손을 떼고 2선으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대검은 이틀 뒤 李秉喆의 차남인 한국비료 상무 李昌熙(이창희 ) 등 밀수관계자들을 구속하고 李秉喆을 불러 신문했다. 동아일보를 필두로 한 언론은 집중취재를 벌여 「사카린 밀수는 빙산의 일각이고 건설자재란 명목으로 세탁기, 양변기, 전화기, 텔레비전 등도 밀수했다」고 보도했다 . 검찰은 그러나 사카린 밀수에 한정해서 수사를 진행하여 10월 초에 마무 리지었다.

10월21일 동아일보는 한국비료가 양변기까지 밀수했다면서 그 증거로서 목 격자들의 구체적인 증언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야당도 증인들을 불러 조사 했으나 검찰은 증거가 없다면서 수사를 확대하지 않았다. 이로써 이 사건은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사카린 밀수」란 선에서 종결되었다. 그후 한국비료에서 밀수품들을 땅에 파묻어버렸다는 소문이 간간이 흘러나오기 도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1986년에 나온 李秉喆의 「湖巖自傳」. 여기서 李秉喆은 한비 밀수사건이 억울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건이 정치 문제화되고 일부 매스컴이 이에 가담하여 끈질긴 삼성공격을 되풀이했던 이 면에는 당시의 복잡한 政界(정계)사정이 있었다」고 썼다.

그는 또 「OTSA(편집자 注-밀수된 사카린 원료)문제가 일사부재리의 원칙도 무시된 채 강제수사를 받게 되었던 배경에는 몇몇 정치인의 공작이 숨어 있었다. 삼성이 마치 국가적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정도 를 넘는 일이었다. 입을 열면 모두 변명으로밖에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 다」고 썼다.

李秉喆은 또 「OTSA는 요소비료 공정에 쓰이는 것으로 사들인 것인데 어떤 현장담당사원의 부주의로 당국의 허가없이 6t(당시 5만 달러)을 처분했다 . 이 과오로 벌금을 물고 일단 해결된 사건이었는데 몇몇 정치가의 의도적 인 作害공작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再燃된 것이다」는 입장을 취했다. 다시 그로부터 7년 뒤인 1993년 李秉喆의 장남으로서 한국비료 건설에 핵심 적으로 참여했던 李孟熙(이맹희)는 「회상록-묻어둔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비료 밀수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체험적으로 길게 언급 했다. 그 내용은 아버지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일 뿐 아니라 1966년 의 검찰 수사결과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오히려 당시 언론의 보도(사카린 밀 수는 빙산의 일각이란 주장)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만약 李孟熙가 이런 고백을 1966년 당시에 했더라면 아무리 강력한 朴正熙 정권이라 하더라도 무너졌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충격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이 고 백도 건망증이 심한 언론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조용하게 넘어갔다. 李孟熙는 요컨대 韓肥 밀수사건은 朴正熙와 李秉喆의 共謀(공모) 아래서 정 부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비호하는 가운데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엄청난 규모 의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삼성이 韓肥 건설을 위해 일본 미쓰이 그룹으로부터 빌리기로 한 4천 2백만 달러의 차관은 현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미쓰이측이 주로 기계와 설비를 韓肥측에 파는 것에 대한 代金(대금)이었다. 이에 따라 미쓰이는 기계를 파는 편에서 관례대로 삼성측에 1백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미쓰이측에서 제공할 리베이트 1백만 달러를 이용하여 정치자금 문제, 한비 건설자금의 부족분 보충, 그리고 울산공단 건설용 기계류를 들 여오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했다」는 것이 李孟熙의 주장이 다. 1백만 달러의 불법적인 리베이트를 합법적으로 국내로 반입하는 것이 어려운 형편임을 알게 된 朴대통령은 『그렇게 돈을 가져오는 것이 힘들면 물건을 사와서 여기서 처분을 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1백만 달러어치 물건을 밀수해 와서 시중에 내다팔면 대강 4배 정도를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한다. 李孟熙는 물가 인상률을 감안하면 「4백 만 달러는 피부에 와 닿는 감각으로는 지금의 2천억원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고 했다. 李孟熙는 요컨대 삼성이 정권측과의 합의하에 리베이트 1백만 달러어치의 물건을 밀수하여 암시장에 내다팔고 그 중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 나머지는 韓肥건설에 內資로 쓰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家 장자 이맹희·손복남 부부 근황


“장충동 주민, 손 고문 휠체어 타는 등 거동 불편해 보였다”


재벌가 안주인들의 건강 문제가 재계의 관심을 모은다. 남편인 총수를 내조하고, 또 자녀를 차기 총수로 키워낸 숨은 공신인 안주인. 재계에선 그들이 건강하게 만수를 누리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란 어쩔 수 없나 보다. 재계의 존경을 받던 많은 안주인들이 인생의 무대 뒤로 하나 둘 사라지면서 안타까움을 높이고 있다. 때문일까. 재계엔 종종 고령의 안주인들에 대한 ‘와병설’이 돌기도 한다. 당연히 쾌차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삼성특검 때문인지, 최근 삼성가에도 걱정스런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행방이 묘연한 삼성가 장자 이맹희씨의 와병설이 몇 해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내이자 삼성가 맏며느리인 손복남(CJ그룹 고문)씨 역시 대외활동에 발걸음이 뜸해진 탓이다. 혹여 ‘건강이 나빠지지는 않았을까’ 우려의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맹희, 손복남 부부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시사신문>이 근황을 따라가 봤다.
 






'와병설'에도 불구 이맹희 행적 묘연 … 루머만 왕성할 뿐

인근 주민 목격 "손 고문 휠체어 탈 정도로 거동 불편해"

2001년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가 타계하고, 지난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인 변중석 여사가 별세했다. 지난 1월에는 LG가의 맏며느리 하정임 여사가 타계하면서 사실상 재벌 안주인에 대한 세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우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이맹희·손복남 부부다. 이들은 삼성가의 장자 집안을 이끌고 있다. 이 부부 슬하에는 CJ그룹의 총수를 맡고 있는 이재현 회장,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 이재환 CJ 상무 등이 있다. 하지만 이맹희씨가 사실상 경영권이나 재산에 있어서 달관적 입장을 취하며 맏며느리인 손복남 CJ제일제당 고문에 보다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장충동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CJ그룹의 어머니 손복남 CJ그룹 고문은 외출시에도 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고 한다. 사진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충동 자택



행방 묘연한 와병설의 주인공


수년전부터 몇몇 언론들을 통해 ‘와병설’이 제기된 바 있는 이맹희씨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맹희씨는 현재 77세로 이병철 창업주의 눈 밖에 나 삼성을 승계하지 못한 ‘비운의 황태자’로 통한다.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이 1966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한때나마 그가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1971년 선친의 눈 밖에 나면서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했다. 이후 경영에 뛰어들지 않고 유랑생활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2006년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한 이재휘씨와 모친도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해 소송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맹희씨 건강이 좋지 않다는 ‘와병설’은 더욱 힘을 얻었다. 이휘재씨가 “아버지가 어디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다 건강이 안 좋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이맹희씨의 행방에 대해선 경상도 모 지역에서 요양생활을 하고 있다는 얘기부터 ‘몽골에 거주한다’, ‘미국에 있다’ 등 추측성이 루머들이 나돌고 있다.

이에 CJ그룹 측 관계자는 “이맹희씨는 CJ그룹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어디 있는지 알지 못 한다”라고 일축했다. 결국 이맹희씨는 현재까지도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반면 이맹희 씨의 부인인 손 고문은 이재현 회장과 장충동 본가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손 고문은 경기도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손영기 씨의 딸로 1958년 이맹희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이맹희씨와 달리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안국화재(현 삼성화재)의 상무를 맡기도 했다. 현재 CJ그룹의 고문을 맡고 경영에도 일부 기여하고 있다. CJ그룹 초기부터 이재현 회장과 공동회장을 맡아온 손경식 회장은 그녀의 동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룹과 거리를 두는 이맹희씨 비해 삼성가 안주인 역할과 CJ그룹 대소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던 손 고문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을까.


건강악화 목격담 이어져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이재현 회장의 자택은 부자촌으로 유명한 거리다. 언뜻 보기에는 크게 특이하지 않은 동네지만 고풍스러운 대저택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 이 중에서도 이 회장의 주택은 크게 3층으로 이뤄진 다세대 주택이다. 이 회장의 자택 앞길 100m는 주차조차 금지 돼 있다. 담벼락에서 가동하는 CCTV도 보안에도 철저한 모습이다. 골목 맞은편에는 이 회장이 자주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스포츠센터가 있다.인근 주민 및 인근 시설 경비 등을 탐문한 결과 최근 손 고문의 건강상태는 썩 좋지 않다는 목격담이 이어졌다. 한 주민은 “예전에는 자주 출근이나 외출도 하고 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면서 “외출할 때도 휠체어를 타는 등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외출 시에는 밴을 불러서 휠체어를 탄 채로 탑승한다는 증언도 있다.

결국 손 고문을 향한 재계 일각의 시각은 예전과 같이 CJ그룹 고문실에 자주 드나들지 않으면서 발단이 된 듯하다. 장충동 본가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지만 증인만 놓고 보면 대외활동에 고령의 나이가 부정적인 모양새다. CJ그룹 측은 개인사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CJ그룹 관계자는 “손 고문의 건강상태 문제나 출근 여부는 개인사인 만큼 밝힐 수 없다”고 확인을 거부했다.


 (시사포커스 2008.4.28)

 

용산~인천~중국 국제 크루즈선 운항
[서울경제] 2009년 11월 16일(월) 오후 08:13   가| 이메일| 프린트

2012년 연안터미널 조성
2016년 수상호텔도 건립
오는 2012년부터 한강에서 중국을 오가는 5,000톤급 국제 크루즈(호화유람선)가 운항된다. 또 2016년에는 국내 최초로 한강 수상호텔도 들어선다.
서울시는 싱가포르ㆍ홍콩을 순방하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 오후 홍콩 현지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서해 비단뱃길 조성계획'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서해 비단뱃길'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경인 아라뱃길(행주대교 남단 한강~인천 영종도 앞바다)'까지 이르기 위한 별도 한강 뱃길의 기반으로 여의도ㆍ용산~경인 아라뱃길 15㎞ 구간에 조성된다.
계획안에 따르면 시는 2012년까지 여의도에, 2016년까지 용산에 각종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국제ㆍ연안터미널을 각각 조성한다. 또 용산 국제업무지구 인근에는 한강 수상호텔(1만5,000㎡)을 건립한다.
수상호텔은 기존의 선박을 개조한 형태가 아니라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지상 5층 규모에 300명 이상이 이용할 수 있는 고품격 공간으로 꾸며진다. 호텔에는 컨벤션센터와 쇼핑센터ㆍ면세점ㆍ연회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들어서고 외부에는 수상무대와 요트 마리나, 수상택시 승강장 등 다양한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다.
2012년부터는 44개 선실을 포함해 문화공연장ㆍ야외수영장ㆍ헬스클럽 등을 갖춘 5,000톤급의 국제 크루즈선이 한강을 통해 중국 등지를 오갈 것으로 전망된다. 길이 120m, 폭20m 규모인 국제 크루즈선에는 승객과 승무원 등 160명이 탈 수 있다.
크루즈선은 우선 3~6일 일정으로 중국 동부연안도시를 오가고 향후 중국 마카오, 일본 도쿄 등으로 관광항로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시는 이에 맞춰 한강 유람선도 2,000~3,000톤급 국내 크루즈로 바꿔 서해와 남해를 오가며 문화ㆍ역사탐방 등 다양한 국내 테마관광을 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오 시장은 "서울이 여객ㆍ관광ㆍ크루즈가 한번에 가능한 동북아 중심 수상관광도시로 도약할 날이 머지않았다"며 "크루즈가 본격 가동되면 한강이 대한민국 관광산업을 이끌어갈 핵심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성기기자 sk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