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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구정-2월14일

그린페 2009. 11. 10. 01:20
해운대 강예원, 하지원, 이민기와 한솥밥
[매일경제] 2009년 11월 05일(목) 오전 09:29   가| 이메일| 프린트
연기자 강예원이 ㈜웰메이드스타엠으로 소속사를 이전했다.
영화 ‘중독’,’1번가의 기적’에 이어 ‘해운대’에서 희미 역으로 영화계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른 강예원이 해운대의 히로인 하지원이민기가 소속되어있는 ㈜웰메이드스타엠과 전속 계약을 맺고 하지원, 이민기, 김남주, 김승우, 최정원, 백성현 등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웰메이드스타엠의 식구가 된 강예원은 2010년 구정 개봉 예정인 김윤진, 나문희, 강예원 주연의 영화 ‘하모니’ 촬영을 끝내고 조만간 차기작품을 선택하고 소속사 이전과 함께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웰메이드스타엠 관계자는 “강예원은 연기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연기자이며, 강예원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려 앞으로 더 큰 배우로 성장시킬 계획이다.”고 밝혔다.
 
::: Ewha Womans University Museum ::: [현재창]
아트샵> 생활용품> 식기 & 용기 | 시계 | 컵 | 기타. 청화백자 컵SET. 크기 : 지름7cm, 높이 9cm. 청화백자 컵 & 컵받침. 크기 : 컵 높이 5.8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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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링스 : 미술이론 >> 색채 [현재창]
tempera - 아동미술 발달단계, 지도, 심리색채 심리 자료 수록. ... visang9의 - 색채심리색채 및 디자인 쿨사이트 링크. ... 이화여대 색채디자인연구소 - 이화여대 색채디자인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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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여자대학교 [현재창]
    이화여자대학교 색채디자인연구소에서는 빛과 색지각의 특성, 색채심리, 색채문화론, 색채수요예측법 등 색채디자인전문가 인증과정의 일환으로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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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색채 -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현재창]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공간디자인전공 겸임교수. 색채 교육내용. 교육내용. 학점. 강의실 ... 색의 종류, 형태의 색채효과 배색실습. 색채의 정서 심리와 조화. 문화, 지역별 색채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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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여자대학교 [현재창]
    ... 되어 있으며과학,건축,디자인,컴퓨터,역사,사회심리,문화인류,색채관련 정기간행물, 논문집 등 광범위한 색채관련 자료를 개방,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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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용의 레어whtdrgon's Lair : 이대 색채디자인연구소. [현재창] 다른건 볼거없고, 색채정보자료실에 색채정보실은 그냥 읽을만해. 이화여대는 성차별주의 내지는 학력우월주의가 느껴져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 ... 심리에나 나올만한- 전문용어를 독일어써가며 퍼부을지도) 하지만 지식하고 그런게 무슨 상관있겠어. ... whtdrgon.egloos.com/223405 (32k) 이 사이트에서 더보기 | 저장된 페이지

    제국주의의 日本史- 3. 때이른 산업 호황과 주변국들과의 관계악화| Victoria

    산사결 조회 261 | 09.07.31 02:48 http://cafe.daum.net/Europa/4ROg/4598

     

    첨부파일 애국행진곡.mp3

     

    주의: 이 글은 작가의 상상으로 쓴 연대기이므로.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제국주의의 日本史- 3. 때이른 산업 호황과 주변국들과의 관계악화

    1860년 중반~1870년대에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으로 인한 각종 개혁과 그에 따른 엄청난 효과로 일본은 다른 구미 열강들보다 엄청난 성장률을 보이며 경제를 급속히 발전시켰다. 일본의 공장들은 풍부한 노동력과 그리고 뛰어난 기술력으로 인하여. 거의 2년 만에 열강을 거머쥐었다. 일본의 공장에서는 쉴세없이 기계가 돌아갔다. 그리고 공장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는 가히 어마어마해서 환경오염(環境汚染)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효과도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일본은 다른 국가들과도 먼저 앞선 국민의식과. 그리고 뛰어난 기술력. 그리고 일본의 인구로 인한 풍부한 노동력이 일본을 성장시킨 것이다. 이리하여 공장에는 수출할 물품이 딸려서 쉴세없이 노동자(勞動者)들의 손이 바쁘게 돌아갔다. 이런 노력들이 임하여 일본은 단 몇년만에 엄청난 수출을 하는 수출국가가 되었다.

     

     1867년. 유신(維新) 6년 후. 일본의 수출량은 날로 상승세를 보내어 드디어 국가 일일재정수지가 200파운드를 넘어섰다. 일본 상공부(商工部)장관은 이를 기념하는 연회에서 " 앞으로는 200파운드로써는 만족해선 안 됩니다. 우리 일본은 10년안에 영길리(英吉利)의 산업력을 뛰어넘고 앞으로는 우리가 세계(世界)의 공장이 될 것입니다. " 라고 말하였다. 이 뜻은 10년안에 일본이 산업/경제면에서 세계 1위의 강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정도로 일본은 경제가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꿈에 조금은 다가선 것일까. 1870년. 정부의 산업지원과 때이른 호황으로 일본의 경제는 세계 2위를 차지하였다. 이 날 모든 도시의 거리(距離)의 식당과 주점에서는 모든 음식과 술을 무료로 제공하였으며. 일본의 국민들은 이 날 만큼은 모두 술을 마시고 떠들었다. 그리고 구미의 열강들에게는. 일본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지 마음속으로 각인시켜주는 것이 되었다.

     

     

     

    1872년. 8년 전 1차 철도의 전국토 건설 후 다시 2차 철도의 개발을 기술부에서 연구하여 일본의 전 국토에 건설하게 되었다. 이 철도는 1차 철도보다 더 강화된 철도로. 1차 철도에는 소량(少量)의 짐 밖에 싣지 못하던 철도가 2차 철도에 와서는 많은 승객과 그리고 공장에 필요한 원료나 생산된 물품까지도 1차 철도보다 어느 정도 더 싣을 수 있게 되었다. 교통부는 " 아직 동북부의 홋카이도현이나 토호쿠현. 그리고 중부 지역까지 건설되고 있지만 철도 재료수급이 완료되는 대로 곧 서부나 남부까지 건설이 확대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번 철도가 건설되면 지난번과 같이 국민들은 교통의 편리함을 더욱 맛보게 될 것이고. 공장에서는 생산량이 증가되어 수출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기술부는 이에 2차 철도보다 더 강화된 철도를 개발하겠다. 라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1873년. 드디어 일본의 수도권(首都圈)인 칸토현에 첫 공장인 기선(汽船)공장을 건설 시작하였다. 칸토현은 일본의 중심(中心)이 되는 에도(후에 도쿄(東京)으로 바뀜)가 있는 지역으로. 일본 현 중 유일하게 공장이 없는 현이다. 이렇기 때문에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칸토현에는 공장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輿論)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특히 메이지 천황은 특별조서(特別

     

     

    메이지 천황의 칸토조선소건설기념연설中

    " 우리 일본은 현재 영길리의 다음으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해 오셨으며. 이 일본은 여러분들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것은 천명(天命)도 바꿀 수 없습니다. 나는 신입니다. 나는 아마테라스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땅의 아라히토가미(現人神)입니다. 나는 신 외에 건드릴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땅에서는 일본의 국민으로써. 그리고 국민 아래 있는 자로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인하여 세계의 조선 산업은 영길리가 아니라 일본이 종주국이 될 것입니다. "

     

    메이지 천황은 연설후 이외에도 노동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그리고 조선소 건설내부를 시찰하시며. 그리고 노동자들과의 술자리도 하시면서 " 인간 메이지 "다운 행동을 하시고 궁으로 돌아가셨다.

    이것은 일본의 조선산업에 대한 투자가 아주 강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은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1867년. 일본의 상공부장관의 " 10년안에 우리는 세계의 1위. 즉 세계의 공장이 될 것이다" 라는 발언을 한 지 7년 후. 1870년. 일본이 영길리 다음으로 경제대국 2위가 된 그 날로부터 4년 후. 1873년. 칸토현에 조선소가 건설된지 1년 후 1874년. 일본은 드디어 꿈을 이루었다.

    일본은. 1867년 10년안에 세계 경제대국 1위가 되겠다는 발언이 나온지 10년도 안된 1874년. 7년 후.

    일본은 드디어 일본의 국민들과 천황이 바라는 " 세계의 공장. 경제대국 1위" 의 꿈을. 메이지 유신 후 14년. 경제대국 2위가 된 지 4년만에 일본은 생산량의 증가와 무역수출량 증가로 인하여서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경제대국 1위가 되었다. 이를 들은 국민들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온종일 만세를 불렀고. 국외에서는 구미 열강들과 세계가 쓰러질 만할 일본의 경제 1위의 소식을 듣고 즉시 놀라 있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한번도 1위를 세계에 놓혀본 적 없는 영국은. 온 나라가 도가니의 혼란속으로 빠졌다. 이 소식을 듣고 집무를 보던 빅토리아 여왕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7일동안 정무를 보지 못했다. 이렇게 개혁 14년만에 경제대국 1위를 이룬 일본. 일본은 그 자리를 꿋꿋히 지켜나가며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메이지 천황의 대국민담화연설中

    " 우리 일본은.. 드디어 세계 경제대국 1위의 자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우리가 개혁을 시작한 지 14년 만에. 우리는 놀랄만한 국민의식과 정신력으로 단숨에 영길리를 돌파하고 우리가 세계 경제대국 1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절대 영길리가 경제대국 일본을 넘볼 수 없도록. 다른 나라가 우리 일본을 넘볼 수 없도록. 우리는 스스로 힘을 길러서 저 추악한 영길리와 불란서. 등 구미에게서 일본을 방어할 것입니다. 일본은 영원하리라! 일본 만세!

    그러나. 일본은 세계 경제대국 1위를 차지하고 때이른 호황을 하면서도. 국외적으로는 주변국들과의 관계악화가 지속되고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원년부터 주변국과의 다툼을 당하였다.

     

     

     

    아직 개혁 준비단계였던 1860년 6월. 사쓰마현의 관리들은 메이지 천황을 설득하여 류큐를 일본 지역으로 편입시키자고 설득하였다. 그리고는 류큐를 일본의 지역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그러나. 이에 중국 대표단은 " 류큐는 400년 전부터 명나라에 조공을 바친 속국이므로 우리의 지역에 편입되어야 한다."라고 발표하여 일본의 주장을 묵살하여 결국 오키나와(沖繩)와 아마미(奄美)지역을 편입시키지 못하였다. 이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그리고 유신 5년 후. 일본 정부는 조선과의 무역을 위하여 조선으로 사신을 보내었으나.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척왜정책과 쇄국정책 때문에 일본의 사신은 흥선 대원군에게 친서가 가기도 전에 동래부 부사에게 퇴짜를 맞고 일본으로 귀환했다. 그 이유는 동래부 부사가 친서를 읽어보고 " 일본이라는 나라는 예의도 없는 왜(倭)놈들만 사는 곳이냐. 감히 우리 전하께 인사도 올리지 않고 일왕이 자신을 천황이라고 전하보다 높혀서 말하다니. 이는 조선과 왜국의 군신관계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같은 글은 읽어볼 필요도 없다. 통상이고 뭐고 썩 꺼져라!" 하고 결국 퇴짜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일본 정부는 항의하고자 하였으나. 아직 국가의 힘과 중국의 개입 때문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1871년에는 류큐의 어부가 중국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하면서 양국의 관계는 극악으로 치닫았다. 일본 외무부는 중국에게 배상을 요구하였지만. 중국 외무부는 묵살하였다.

     

     

     

    1873년에는 몇 백년간 있어왔던 사무라이 제도가 폐지되었다. 정부는 사무라이는 구시대적 발상이며 국가의 이익을 탐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부득이 처리한다. 라고 발표하였다. 많은 사무라이들은 발끈하였고. 특히 메이지 유신을 시행하고 개혁하였던 인물들은 사무라이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정부에 더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정부는 일할 자리가 없는 사무라이들에게 교사나 직공으로 직업을 주고. 또 국가 보조금도 발급하여 지원하였다.

     

     

     

    1873년. 조선에 소수 남아있던 일본 상인들이 조선 백성들에게 피해를 당하였다. 이를 기회로 일본 내각에서는 정한론(征韓論)자들이 득세했다. 특히 그들의 뒤에 있는 일본 군부성(軍部省)들이 더 야단이었다.

     

    천황 폐하! 조선을 쳐야 합니다. 우리 나라보다 하등민인 조선인들이 우리를 얕잡아보고 시비를 걸고 있사옵니다. 우리 군부성에게 권한만 내려주신다면 우리가 즉시 군대를 모집하여 조선을 1년만에 합병하겠나이다.

     

    그러자 평화주의자들인 상공부. 외교부 등이 반발했다.

     

    아니. 당신들이 제 정신이오? 우리는 아직 경제가 구미열강들 중에서는 제일 우수하다고는 하나. 아직 전쟁을 치를 준비는 안 되어 있단 말이오! 일단 조선을 치면 우리에게는 좋지요. 철광과 석탄광산. 그리고 목재들 산지가 묻혀있는 곳이 조선이니까. 그런데 보시오. 조선을 합병하면 그 조선 백성들이 어찌 나올지 보시오. 지난 300년 전. 임진왜란(壬辰倭亂)때 15만의 병사들을 이끌고 갔으나 그 조선 의병들 때문에 우리가 병사 다 잃고 귀환하였고. 정유재란(丁酉再亂)때도 15만의 병사를 이끌고 침략했으나 조선의 군대와 의병. 그리고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함대 때문에 우리가 다 죽고 겨우 살아남아 장수들만 오지 않았소? 또 중국과 구미열강들의 개입은 어떻고요? 우리나라가 아직 개혁한지도 13년밖에 되지 않았고 구미열강과의 사이도 별로 좋은 편은 아니오. 그런데 우리가 조선을 합병하면 열강들이 우리를 어찌 보겠소? 그리고 열강들이 이를 트집잡아서 원료 수입이나 수출을 금지해버리면 우린 끝장이오! 끝장! 당신들이 지금 제 정신이냔 말이오!"

     

     

     

     

    그러자 일본 정한론자들의 당수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이 대성고함을 지르며 말했다.

    " 당신들이 워낙 등이 따시니까 헛소리를 작작 하시오. 당신들은 이 싸움이 승산이 있는 것을 보고도 당신들 목숨 때문에 목숨 하나 보전하려고 전쟁 피하려는 것 아니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말이오? 지금은 제국주의 시대요 제국주의! 서양의 모든 구미 열강들은 현재 아프리카를 독점하면서 식민지를 강탈하며 원료를 채우고 있소. 그런데 우리나라가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세계 제 3위 열강인 우리 일본제국이 뭐가 두렵다고 조선을 합병하는 것이 되지 않는단 소리요? 그리고.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은 도요토미가 너무 자만하여서 패한 것이지. 실제로는 일본이 거의 평양까지도 밀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300년 와서 지금 임진왜란때와 비교하오? 이거 참. 지금은 우리 일본 기술부의 연구로 우리도 군대를 모집하면 열강 못지 않은 군대가 될 수 있소. 그런데 하물며. 그 당시 일본 조총시대와 우리 대일본군을 비교하는 거요? 응? 상공부. 자네들도 조선을 합병하면 그 효과가 얼마나 큰지 우리 군부가 가르쳐드리리다. 그리고 중국 쯤은 우리도 힘만 기르면 지금 당장이라도 격파할수 있소. 중국은 아편전쟁때도 영국에게 패하였고. 종이호랑이나 마찬가지요. 그런데 당신들은 너무 등이 따시니까 이런 헛소리만 하고 있는거요. 알겠소?" 라고 반박하자.

    평화주의론자들은. "이.. 아 그것이.." 라고 말을 더듬거렸다. 이렇게 하여서 평화주의론자들은 정한론주의자들에게 고개를 수그렸다. 사이고는 

    " 전하. 신이 조선에 가서 조선의 왕인 고종을 만나고 오겠나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메이지 천황은

    " 좋소. 당신의 기개가 마음에 들었소. 나도 놀랐소. 이번 사신으로는 사이고 그대가 다녀오시오"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신 대표로써 조선으로 떠나는데..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1827~1877

                                

                                 일본의 대표적 정한론자. 메이지 유신때 정변에 참가하였다. 

                                 대표적으로 국방을 튼튼히 하여야 한다는 의견에 찬조하였고

                                 이로 인해 높은 기개로 메이지 천황의 총애를 얻는다.

                                 그리고 조선 사신으로 다녀온 후에는 사립학교를 경영하며

                                 뜻이 같은 후진들을 양성하였으며. 그러나 1877년 

                                 중앙정부와의 대립이 심해져 사이고는 세이난 전쟁을 일으키나 

                                 신식군으로 무장된 정부군을 이길 수 없었고 전투중 사망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일본 사신이었던 사이고를 거짓 조선인들에 의해 죽은것으로 발표하고.

    이로 인해 일본과 조선과의 대립이 극에 깊어졌다.

     

     

     

    그러나 힘이 약했던 조선은 일본의 강압요구를 결국 받아들이고 일본과 조선과의 거래를 열었으며 조선은 부산을 개방하였다. 

    조선 왕 고종의 일본사죄연설中

     

     

    " 저는 일본의 천황폐하이신 메이지 천황폐하께 사죄드립니다. 예전 우리가 일본 백성들을 핍박하였던 것은 다 저 때문이니 일본의 폐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라고 공표하기까지 하였다. 이로 인해 조선은 일본과의 상대가 되지 않는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이로 인해 일본은 군부의 의견을 시행하고 군사력을 개혁하고 증강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산사결입니다. 지금 밤이 늦었는데 집에 혼자뿐이라 그런지 잠이 오지 않군요.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읽으시고 테클이라도. 댓글을 올려주십시오. 댓글은 저의 힘이 됩니다.  

     

    오피니언 2009.11.8
    [서경이 만난 사람] 오강현 대한석유협회장
    "국내 정유사도 종합에너지 기업 변신해야"
    자원개발 역량 높이고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 사업 모델 다각화해야
    업계 순익률 1.8%대로 타업종 비해 훨씬 낮아 '폭리'라는 말은 지나쳐

    대담 강창현 산업부장 chkang@sed.co.kr
    정리=맹준호기자 next@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글로벌 정유산업은 분명히 전환의 시점을 맞았습니다. 국내 정유사도 자원개발 역량을 높이는 한편 신재생에너지 기술까지 갖춰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발전해나가야 합니다."

    오강현 대한석유협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정유업은 대내외적 어려움에 봉착했고 현상태로는 미래 에너지 전쟁에 대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트렌드가 바뀌는 시대에 국내 정유사가 국제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고 강조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지난해 가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석유사업 부문에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어온 상황이다. 그러나 갈수록 치솟는 기름 값 때문에 국내 소비자로부터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오 회장은 "국내 정유업계는 내수에서는 공급과잉이고 수출도 인도ㆍ중국ㆍ중동의 신증설 물량에 위협받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일부 소비자들은 정유사들에 대해 실상과는 거리가 먼 오해를 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정유사들의 석유사업 순이익률은 1.8% 정도다. 전자ㆍ철강ㆍ통신ㆍ자동차ㆍ중공업 등 대기업 업종의 순이익률이 6~9% 내외이고 해외 메이저 석유회사의 수익률이 6~9.5%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오 회장은 "정유사들이 종합에너지 회사로 변신하려면 신재생에너지 등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상반기 리터당 영업이익이 13원 정도인 현재 수준으로는 투자여력 확보가 어렵다"면서 "우선 정유업계가 소비자들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기름 값이 오르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석유제품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국내 기름 값 결정구조는 단순합니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과 환율ㆍ시장상황을 감안해 개별사들이 정하는데 가격차별화 요인이 크지 않아요. 상반기 기준 정유사 단계의 마진이 휘발유 기준 리터당 13원 정도입니다. 정유사들이 내릴 수 있는 폭이 크지 않다는 뜻입니다.

    -국제 원유 가격은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졌는데 국내 기름 값은 그대로라는 불만도 있습니다.
    ▲많은 소비자들은 원유 값 변동이 국내 기름 값과 직결된다고 믿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원유는 투기적 요소, 달러가치, 산유국의 정치적 요인 등으로 움직이지만 휘발유ㆍ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은 실물경제 수요에 따라 움직입니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 석유제품 가격에 연동됩니다. 그리고 지난 8월 기준 국내 소비자가격에서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37.8%, 원유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33.7%에 불과합니다. 즉 원유 가격이 절반이 됐다고 해도 국내 소비자가격 인하요인은 17% 정도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정유사들이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오를 때는 내수 공급가를 재빨리 올리고 떨어질 때는 천천히 내린다는 오해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1~2주의 시차를 두고 정확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 정유사들의 내수공급 가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어떻습니까.
    ▲국내 유가산정지표는 모두 공개돼 누구라도 확인ㆍ검증할 수 있습니다. 내수시장은 4개사가 공급과잉 상태에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초과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입니다. 올해 7월 기준으로 국내 정유사들의 세제 외 내수 공급가는 휘발유 리터당 724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리터당 807원보다 낮습니다.

    - 기름 값에 붙는 세금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요.
    ▲소비자가격 중 세금 비중은 올 초 64.9%, 지금은 52.8%입니다. 그러나 세금은 협회장 입장에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의 세수목표, 에너지 절약, 소비자 부담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가 정하는 것이니까요.

    -지난해 가을부터 정유사들이 많이 어렵습니다. 3ㆍ4분기 실적도 석유사업 부문은 대부분 적자더군요.
    ▲경쟁환경이 변하고 있어요. 지난해 정유사들이 수출에서 반 이상의 수익을 올렸는데 중국ㆍ인도ㆍ중동 등의 정유업계가 수출형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국제시장에서 큰 도전에 직면한 겁니다. 내수시장도 공급과잉이니 어려울 수밖에요.

    -정유사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만 일부 소비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게 사실입니다.
    ▲삼성전자ㆍ포스코 등 기업들이 수조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하면 국민들이 박수를 쳐줍니다. 그런데 정유사들은 지난해 4사를 더해 9,970억원의 순이익을 냈는데 이걸 가지고 폭리를 취했다고 합니다. 정유업계가 우선 반성해야겠지만 이런 시각은 고쳐져야 합니다. 폭리라는 말은 지나칩니다. 정유사의 미래는 각자가 걱정할 몫이지만 이들이 미래 에너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닥칩니다. 지금보다 더 값비싼 에너지를 쓰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국내 정유업계가 앞으로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요.
    ▲정유 일변도의 사업 모델을 다각화해 종합에너지 회사로, 또는 종합에너지 서비스 프로바이더로 변화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과연 여력이 있느냐가 고민입니다. 정유산업은 분명히 전환시점을 맞았습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등이 신재생에너지, 녹색기술, 에너지 효율화, 해외자원 확보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오랜 시간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일입니다.

    -협회장 취임 이전에 민간 자원개발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내셨습니다. 자원개발의 중요성을 느끼셨나요.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미국ㆍ일본 등 강대국과 중국ㆍ인도 등 신흥국의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정부가 적극적인 자원외교를 벌이는 것은 다행입니다. 산유국이 필요로 하는 도로ㆍ항만ㆍ철도 등 필수 기반시설을 건설해주고 대신 자원개발권을 확보하는 한국형 자원개발 모델을 잘 추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실 생각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정유산업은 핵심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지난 40여년간 원활한 공급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만 이에 걸맞은 평가는 받지 못했습니다. 1970~1980년대 관치산업의 이미지와 함께 유가자유화 이후 고유가에 대한 불만이 원인인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때문에 기름 값의 진실과 정유사 경영의 실상이 왜곡, 전달된 것 같습니다. 왜곡된 이미지를 개선하고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정유산업의 실상과 현황을 소상히 알려 신뢰 받는 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사회적 책임도 강화하겠습니다.

    ◇약력
    ▲1949년 강원도 양양 ▲1971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1982년 상공부 구주통상과장 ▲1985년 주독일대사관 상무관 ▲1994년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 ▲1996년 대통령 경제비서관 ▲1998년 산업자원부 차관보 ▲1999년 제14대 특허청장 ▲2000년 한국철도차량 사장 ▲2002년 강원랜드 사장 ▲2003년 한국가스공사 사장 ▲2007년 예당에너지 회장 ▲2009년 2월 제18대 대한석유협회장

    원칙 중시하는 ‘뚝심의 사나이’

    ■오강현 협회장은
    가스公 사장서 해임뒤 4년 소송 끝에 명예회복도

    오강현 대한석유협회장은 재계와 관계에서 '뚝심의 사나이'로 통한다. 관료생활을 할 때나 공기업과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일할 때나 변함없이 그의 신조는 '원칙'이었다.
    오 회장의 뚝심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 사례는 한국가스공사 사장에서 해임된 뒤 벌인 4년간의 소송. 오 회장은 지난 2005년 가스공사 비상임이사회에서 해임이 결의된 것이 부당하다면서 4년간의 소송을 벌여 결국 2009년 2월 대법원에서 승소,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관료 출신 공기업 CEO로서는 이 같은 소송을 진행하기 어려운 '현실'을 거부하고 길고 고독한 법적 다툼 끝에 명예를 되찾았다.
    오 회장은 가스공사 노조도 원칙으로 대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해임사유에 '가스산업 구조개편을 위한 노사합의안 도출 실패' '노조집회 묵인' 등이 추가됐지만 법원은 "해임사유가 모두 부적절하거나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오 회장은 관료와 CEO를 거치며 청탁과 외압을 거절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강원랜드를 단순한 카지노에서 가족이 휴식할 수 있고 기업 세미나 등이 열릴 수 있는 종합리조트로 변모하게끔 한 것도 그의 공로다.
    오 회장은 "석유협회장으로 오기 전에는 나도 주유소에 가면 '원유 값은 크게 떨어졌다는데 왜 기름 값은 이것밖에 안 내리나'하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소비자의 오해가 정보부족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잘 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앞으로 정유업계가 소비자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 홍보활동을 벌일 생각이다. 최근 한 시민단체가 결성한 '석유시장감시단'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오 회장은 "석유시장감시단 활동을 통해 잘못 알려진 정유업계의 실상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남 벼 경영안정대책비 500억으로 늘어날 듯…도의회 "30억원 증액"추진

    뉴시스 | 배상현 | 입력 2009.11.03 11:33

    【무안=뉴시스】배상현 기자 = 전남도내 벼 재배농가에 지원되는 경영안정대책비가 당초보다 30억원이 늘어난 500억원이 될 전망이다.
    3일 전남도의회에 따르면 전남도가 전날 발표한 쌀 수급안정종합대책에서 벼 재배농가 경영안정대책비를 지난해 440억원 보다 30억원이 많은 470억원을 지원키로 했으나 도의회는 30억원이 더 많은 500억원으로 증액발의키로 했다.
    도의회는 지난 제244회 임시회 의원총회 결과 전남도에 벼 경영안정 대책비 500억원 지원을 요구했지만 전남도가 이를 전액 반영하지 않자 16일 개회하는 제245회 제2차 정례회에서 500억원으로 증액발의키로했다는 것.
    도의회 박인환 의장(구례 2.민주)은 "지난해 한 포당(40㎏) 5만3000~5만4000원하던 벼 가격이 금년에는 4만3000~4만4000원까지 떨어졌다"면서 "도의회에서는 쌀 재배농가 소득보장을 위해 벼 경영안정대책비 500억원이 확보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praxis@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