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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밧드나라-오만

그린페 2009. 8. 22. 00:13

(국기) (국장)
표어: 없음
국가: 나시드 아스 살람 아스 술타니
수도 무스카트
23°61′N, 58°54′E
공용어 아랍어
정부 형태 전제 군주제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
독립
 • 독립
포르투갈 왕국으로부터 독립
1741년
면적
 • 전체
 
309,500km² (69위)
인구
 • 2005년 어림
 • 인구 밀도
 
3,001,5831명 (132위)
14명/km² (167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5년 어림값
$401.4억 (84위)
$13,400 (69위)
HDI
 • 2006년 조사

0.839 (53위)
통화 리알 (ISO 4217:OMR)
시간대
 • 여름 시간
(UTC+4)
(UTC+5) 
ISO 3166-1  512
ISO 3166-1 alpha-2  OM
ISO 3166-1 alpha-3  OMN
인터넷 도메인 .om
국제 전화 +968

오만 이슬람 왕국(아랍어: سلطنة عُمان 술타나트 우만)은 아라비아 반도 동쪽 끝에 있는 나라이다. 국토의 80%가 바위산과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도는 무스카트이다.

역사 [편집]

신밧드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오만은 한때 수메르식 이름인 마간으로 알려졌었다. 오만은 기원전 563년에 페르시아 제국사트랍(페르시아에서 지역을 통치하던 사람 또는 그 사람이 다스리던 지역을 의미하는 전통적인 단어)의 하나로 편입되었다. 기원전 3, 4세기에 페르시아인들이 세운 제국은 7세기까지 지속된다. 한편 1세기가 시작할 무렵 아랍인들이 오만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632년에 페르시아 제국은 오만에서 힘을 잃어버리고 아랍인의 나라가 세워졌다.

751년에 이바디 무슬림들이 이맘 왕국을 오만에 세웠다. 이맘 왕국이맘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이다. 이바디 무슬림들은 카리지트의 일파로 알려져 있다. 카리지트는 초기 무슬림의 한 분파로 4대 칼리프인 알리의 지지자들 중의 일부였다. 칼리프이맘과 비슷하다. 이바디 이맘국은 20세기 초까지 존재하였다.

오만은 오랫동안 무역의 중심지였다. 한때 포르투갈 왕국에 점령당한 적이 있었으나 1741년에 독립하였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시기에는 중립을 지켰다.

지리 [편집]

국토의 80%가 사막이다. 그러면서도 좋은 경치 또한 가지고 있다. 한편 모래 사막은 그 중에 일부에만 해당하며, 다른 GCC 국가와는 달리 산맥이 국토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주로 산에서 발원한 강(와디)가 해안 지방으로 흐르며, 주요 도시들은 북쪽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기후 [편집]

연중 사막 기후이나, 겨울에는 아침 기온이 10도 정도까지 떨어진다. 여름의 한 낮에는 50도까지 오르는 것을 경험하나, 습도가 낮아서 그늘에서는 느끼는 체감 온도는 한국에서 여름의 35도 정도로 느끼게 된다.

주민 [편집]

원주민에 한하여 100% 아랍인이며, 전체 인구 중에서 약 30%는 인도 및 파키스탄 등에서 일을 하러온 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 [편집]

아랍어공용어이며 필요에 따라 영어도 사용된다.

종교 [편집]

사우디아라비아몰디브처럼 이슬람교의 비율이 100%이다. 하지만 다른 아랍 국가와는 달리 종교에 대하여 유연하여 다른 종교 활동이 허락되며, 주요 도시에는 교회 등이 있어서 예배 등도 허용된다.

문화 [편집]

이슬람 문화가 주요 문화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우호적이며 정치 체제도 비슷하다.

외교 [편집]

대한관계 [편집]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며 1974년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1992년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대한민국은 1976년에 오만 현지에 공관을 두었으며 항공,문화협정을 체결하였다.

링크하기 [편집]

미국 군수자본 칼라일

April 04, 2006

미국 군수자본 칼라일, 한미은행을 덮치다.

2000년 9월 한미은행이 칼라일펀드에 넘어가게 된 과정도 의혹투성이다. 한미은행은 그해 당기순손실이 3960억원에 이를 만큼 경영상황이 좋지 않았고 그만큼 자본 확충이 절실했다. 칼라일은 그해 3월 금융감독위원회에 한미은행 주식을 사들이겠다고 신청을 냈다가 거절당했다. 역시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걸렸던 것이다. 칼라일은 사모펀드였을 뿐 금융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해 9월 칼라일은 금융기관인 JP모건을 앞세워 금융감독위원회 승인을 받아낸다. JP모건과 50 대 50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한미은행이 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하면 칼라일과 JP모건 컨소시엄이 이를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발행규모는 4559억원, 주당 발행가격은 6800원이었다. 이 컨소시엄은 한미은행 지분 36.6%를 차지해 최대주주가 됐고 덕분에 한미은행의 자본금은 1조5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JP모건이 들러리만 섰을 뿐 실제로 인수주체는 칼라일이었다는 것이다. JP모건을 내세워 편법으로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냈다는 이야기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펀드들의 지분 구성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지분이 많은 펀드는 16.3%를 보유한 KAI(한미은행 투자펀드)였는데 이 펀드는 칼라일과 JP모건이 반반씩 투자한 게 맞다. 문제는 나머지 지분인데, 채드윅과 프리웨이라는 펀드가 각각 3.6%를 보유한 것을 비론해 스칼렛이 3.4%, 이글이 2.5%, 코란드가 1.0% 등 9개 펀드에 분산돼 있었다. 이 펀드들은 모두 페이퍼컴퍼니로 칼라일이 의결권을 갖고 있었다. 칼라일은 공공연하게 홈페이지에서 이들 펀드와의 관계를 밝히기도 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4% 미만의 보유 지분은 금융감독원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이들 페이퍼컴퍼니의 지분에 대해 아무런 통제권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JP모건은 전체 지분 36.6% 가운데 8.2%만 보유하고 있었고 나머지 28.4%는 칼라일의 몫이었다는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칼라일과 JP모건이 반반씩 투자한 걸로 돼 있지만 이미 칼라일이 한미은행의 대주주가 돼 있었던 것이다.
한미은행 투자 구조를 잘 살펴보면 JP모건이 아니라 JP모건코세어2호라고 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JP모건의 세계적 명성만 믿고 투자를 허락했지만 사실은 JP모건이 만든 또 하나의 사모펀드였을 뿐이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만약 금융감독위원회가 이런 사실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당장 의결권을 제한시키고 지분 매각 명령을 내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칼라일은 1987년에 설립된 사모펀드다. 칼라일이라는 이름은 창립 멤버들이 모였던 칼라일 호텔에서 따온 이름이다. 자본금은 162억달러, 본사는 미국 워싱턴에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정책 보좌관을 지냈던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이 창립 멤버고 IBM 회장을 지냈던 루이스 거스트너 등도 이곳에서 회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미국은 물론이고 중동이나 유럽의 부호들 300여명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는데 주로 군수산업에 투자하고 평균 투자수익률이 34%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일의 임원진 구성 역시 매우 흥미롭다. 제임스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해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오사마 빈 라덴의 이복형인 샤피크 빈 라덴도 핵심 멤버다. 이밖에도 아서 레빗 전 미국 증권거래위의장, 토마스 맥라티 전 백악관 비서실장, 루이스 텔레즈 전 멕시코 에너지 장관 등이 활동하고 있다.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도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부시뿐만 아니라 조지 부시 현직 미국 대통령도 칼라일의 투자회사에서 사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이들이 오사마 빈 라덴 가문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왕족과 친밀한 사이라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군수산업에 투자하는 펀드답게 칼라일은 이라크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부시는 칼라일 고문 자격으로 이라크를 여러차례 방문했고 우리나라에도 두 차례 다녀간 바 있다.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에도 미국 정치권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거라는 의혹이 떠도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버지 부시는 1998년 칼라일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면담한 것을 비롯해 2000년 6월 제주도에서 열렸던 칼라일아시아 고문회의에서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당시 국무총리 등을 만나기도 했다. 칼라일이 한미은행 인수를 발표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박태준 전 총리는 칼라일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김병주 칼라일아시아 회장은 그의 사위다.
주목할 부분은 칼라일이 동원한 광범위한 인맥이다. 칼라일의 법률자문은 김&장법률사무소와과 법무법인 세종이 맡았는데 그해 8월 금융감독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김&장과 세종의 법적 해석이 떡 하니 인용돼 있다. 자회사를 통해 투자하는 외국 금융기관의 관행 등을 고려할 때 이 컨소시엄의 한미은행 인수는 법적으로 타당하다는 논리였다. 칼라일이 내세운 주장을 금융감독위원회가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더 흥미로운 것은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를 최종 승인했던 이근영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퇴직 후 세종으로 옮겨간 것이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김&장과 세종, 그리고 칼라일의 유착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병주 회장은 장인인 박태준 전 총리뿐만 아니라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재정경제부 이종구 금융정책국장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8월 '파이낸스아시아'가 김병주 회장과 한 인터뷰는 당시 상황을 짐작케 한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에서 JP모건 지분 50%만 받아오면 허락해주겠다는 소문이 떠돌았던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국 경제의 트로이카 3명 모두의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동일인 주식 보유한도를 면제해주거나 관계 법령을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보여줬습니다."
칼라일은 결국 JP모건이라는 들러리를 내세워 한미은행을 인수하는데 성공한다. 칼라일은 이렇게 사들인 주식을 2004년 5월 주당 1만5500원에 씨티은행에 넘겨 7017억 원의 시세차익을 거두고 빠져나갔다.
뉴브리지와 칼라일이 각각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을 비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제일은행이나 한미은행이나 경영 현황이 그리 좋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특히 제일은행의 경우 추가 출자를 하지 않으면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뉴브리지나 칼라일의 대주주 자격인데 금융감독위원회는 제일은행의 경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뉴브리지 같은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넘겨받을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한미은행은 부실금융기관도 아니었고 더구나 칼라일은 금융기관과는 거리가 먼 군수산업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였다. 누가 봐도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지만 칼라일은 JP모건을 내세워 50 대 50으로 투자하겠다고 금융감독위원회를 설득했다. 그런데 정작 JP모건의 투자비율은 전체 투자금액의 4분의 1밖에 안 됐던 것이다. 금융감독위원회와 한국 정부를 속인 것이다.
결국 제일은행에서 잘못 꿰어진 첫 단추의 여파가 한미은행과 외환은행에까지 계속 이어진 것이다. 론스타는 JP모건 같은 들러리를 내세우지도 않고 단독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외환은행은 부실금융기관이기는커녕 오히려 실적이 눈부시게 개선되고 있는 상태였다.
주목할 부분은 정부가 2000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사모펀드의 은행 인수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그해 5월 조흥은행이 미국계 투자펀드 서버러스에서 5억 달러를 유치하기로 전략적 제휴를 맺었을 때도 금융감독위원회는 은행법의 대주주 적격성 조항을 들어 반대했다. 5억달러면 14%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금융감독위원회는 법에 따라 4% 미만인 1억4000만 달러까지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
금융감독위원회는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도 같은 이유로 완강히 반대해왔다. 그런데 그해 6월 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다녀간 뒤로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그때부터 금융감독위원회의 원칙은 마구 흐트러졌다.

by 벗무 | 2006/10/10 23:56 | 펌글 | 트랙백 | 덧글(0)

박정희의 친,인척 비리(펌)

글쓴이 민족정기 @ 서프라이즈 등록일 2006년8월28일 09시58분

박정희 친인척비리가 불가사의하게도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를 서슴치 않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있어도 잡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는 걸 몰라??
우선 박정희의 딸 박재옥부터 알아보자. 사람들이 박근혜가 큰 딸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박재옥이다. 박재옥은 박정희의 첫째 부인 김호남이 낳은 딸이다. 박재옥은 한병기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한병기는 1931년 평남 안주 출신이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을 하자마자 불과 30살의 나이에 별 경력도 없이 주뉴욕총영사관 영사가 되었다. 35살의 나이에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이 되기도 했다. 선주협회 회장을 지내고 박정희 시절 설악관광케이블카 회장이 되어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유엔대사, 캐나다대사를 역임하기도 하고, 공화당 총재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박정희가 죽자마자 권력에서 멀어졌다. DJP연대로 사촌 동서인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득세하자, 방송개혁위원회 위원, 국무총리 자문위원장이 되는 등, 조금 고개를 들었다.
이래도 박정희가 친인척을 멀리한 건가?
그 다음에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아들 박재홍을 보자. 그러니까 박정희는 박재홍의 작은 아버지다.
1941년 경북 구미 출신이다. 대구상고, 고려법대를 졸업하였다.
28살의 나이에 포항제철 행정실장이 됐고 32살의 나이에 동양철관 회장이 되었다. 이거 정상적인 건가??
민정당, 민자당에서 국회의원을 4번씩이나 해 먹었다. 그 후 자민련으로 갔다가 다시 한나라당으로 갔다가 국민회의로 건너오는 등 이상한 정치행각을 보여주었다.
또 박정희의 또 다른 형 박상희의 아들 박준홍을 보자.
1947년생이다. 경북 구미 출신이다. 계성고, 경희대 정외과,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하였다. 김종필의 부인 박영옥이 박준홍의 누나다.
불과 서른 살의 나이에 1급 관리관 정무조정실장이 되었다. 요거 요즘같은 대명천지에 가능한 얘긴가? 그러더니 32살 때 그 막강한 대한축구협회장이 되었다.
박정희 사망으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매형 김종필이 만든 자민련에 들어가서 지금도 자민련 경북 구미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촌형인 박재홍과 맞붙기도 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의 친인척 가운데 쓸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안 썼을 뿐이지 쓸만한 사람은 다 갖다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의 오빠, 그러니까 박근혜의 외삼촌인 육인수 같은 경우에도 학교 교사로 있다가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한 후에 승승장구하면서 5선 의원 씩이나 지낸 거 아닌가?
그 육인수의 사위 이석훈은 청주 MBC 사장을 지내고, 충청일보 사장을 거쳐서 현재 일신산업 회장이다.
김종필 같은 경우에도 박정희가 끔찍이 생각했던 형 박상희의 딸인 박영옥의 남편 아닌가? 박정희의 처조카 김종필이 이후락 등과 함께 80년 신군부에 의해서 부정축재한 재산이 환수조치됐는데 그 총 규모가 887억원이다. 25년 전에 887억원이면... 이건 계산이 불가능한 돈이다.
이래도 박정희가 깨끗하고 청렴한가? 그걸 몰라서 가만히 놔 둔 건가? 박정희 개인은 절대권력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축재할 필요가 없었을런지는 모르겠다.
박정희 덕이 아니라면 박근혜가 어떻게 정수장학회를 지배하고 있나? 정수장학회가 말이 장학회지, 그 규모가 1조 300억원에 이른다. MBC의 30%가 정수장학회 소유다. 부산일보도... 경향신문 사옥 부지도...
박정희의 또 다른 딸 박근영(박서영으로 개명)은 또 어떻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나? 육영재단도 수천억원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무슨 수로 코스닥에서 한방에 46억원 짜리 대박을 치나?
이게 청렴한 대통령의 표상이라는 박정희의 모습이다.
게다가 시골에서 농사만 지었다던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딸 박재선을 의사와 결혼시키고, 형 박상희의 둘째 딸 박계옥의 남편 김용태를 그 막강한 대통령 경호실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그 뿐이랴!!!!
박상희의 세째 딸 박금자를 총리실에서 근무하는 반기언과 혼인시키고, 결정적으로는 박상희의 막내 딸 박설자를 벽산그룹 창업자 김인득의 아들인 김희용과 결혼시켰다. 김희용은 현재 벽산계열인 동양물산기업 대표이사 회장이다.
이 박설자로 말미암아 박정희 집안이 드디어 그랜드 서클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박정희의 조카 박설자의 남편 김희용의 형 김희철이 현재 벽산그룹 회장이다.
김희철의 부인, 그러니까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가 바로 LG그룹의 한 축인 삼양통상의 창업자 허정구의 딸 허영자다. 이 허영자의 조카사위, 그러니카 허영자의 남동생의 사위가 바로 조선일보 후계자로 알려진 방준오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한번 가보자. 참 웃기는 거 발견했다.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인 허영자의 오빠가 현재 삼양통상 회장인 허남각이다.
이 허남각의 딸 허정윤이 얼마전에 정대호라는 청년과 결혼을 했는데 이 정대호가 그 유명한 황해도 재령의 대지주의 아들인 강원산업 창업자 정인욱의 손자이자, 현재 강원산업 회장인 정문원의 아들이다.
이 정문원의 부인 최금자의 언니가 최금숙이다. 최금숙이 누구냐? 바로 얼마전에 형제의 난으로 물러난 두산그룹 회장 박용오의 부인이다.
게다가 정문원의 동생이 정도원인데 정도원에게 두 딸이 있다.
큰 딸 지선이는 기아자동자 회장인 정의선과 결혼했다. 정의선은 누구냐? 현대자동차 정몽구의 회장의 외아들이자 정주영회장의 손자다, 이 말이다.
작은 딸 지윤이는 박성빈이라는 청년과 결혼했다. 이 박성빈은 또 누구냐? 포항제철 박태준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이 말이다.
그러니까 포철 박성빈이랑 현대 정의선이랑 동서가 된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철강산업을 하려고 부지까지 선정하러 다니다가 포기한 배경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 박성빈을 좀 파헤쳐보면 아주 재밌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서프앙들에게 미안해진다. 양해 바란다.
박성빈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다가 요즘 무슨 통신 솔루션 업체인 사운드파이프 코리아 대표이사로 있다.
이 회사를 가만히 보니까 무슨 다국적 기업인 것 같은데 국내 대리점을 영업하는 듯 하다. 전자신문같은 걸 보면 꽤 잘 나가는 듯 하다. 잘 나갈 수 밖에 없다. 예를들면 사운드파이프에서 무선랜 환경을 구축했다는 아산병원은 현대 계열 아닌가??
박성빈도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박태준이 국무총리직에 있을 때 드러난 박성빈의 부동산만도 강남구 역삼동의 170평짜리 카센터와 강남구 신사동의 빌딩 등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한남동에 빌라도 있었다.
여기서 멈추면 고구마 줄기라고 할 수 없다.
박성빈의 매형 김형수를 주목해야 한다. 김형수는 박태준의 한국화가 딸 박유아와 결혼을 했는데, 박유아는 본래 변호사 고승덕과 살다가 헤어졌다.
이 김형수는 또 이력이 만만치 않다. 한국맥도널드 사장과 국내에서 일본 도요다 자동차 렉서스를 수입판매하는 렉서스 케이모터스 대표이사다.
그런데 이 김형수의 부친이 그 유명한 동일고무벨트 창업자인 김도근이다. 이 김도근의 이력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치지향적인 것이 분명하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등등 골 때리는 이력이 꽤 많다.
문제는 김도근의 큰 아들이자 김형수의 형인 김진재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박정희시절부터 여기저기 부산지역을 마구 쑤시고 돌아다녔다. 청년회의소니 부산 싸이클 연맹이니 뭐니 닥치는대로 자리라는 자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총력안보 부산시 협의회 특별위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부산시 청소년 선도위원도 맡았다.
부산 동래구 새마을지도자연합회 고문직도 맡았다.
열심히 하면 위에서 알아보는 법, 전두환이 급조한 민정당 간판을 달고 11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막론하고 내리 5선의원이 되었다.
이 김진재의 아들인 동일고무벨트 기획이사 1972년생 김세연이 그 유명한 춘천 한승수의 딸 한상은과 결혼을 했다. 그러니까 왜 한승수가 무소속으로 있다가 뒤늦게 또 다시 한나라당으로 들어갔는지 답이 나온다.
그런데 이 괴상한 상황을 우리 서프앙들이 알아야 한다. 이 한승수가 박정희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한승수의 장모가 육영수의 큰언니 육인순이다. 그러니까 박근혜에게 한승수는 사촌 형부다. 한승수의 장인은 일제 만주국에서 관리를 지낸 홍순일이다.
이 박정희의 동서 홍순일의 사위들이 세명이나 국회의원이 됐다. 예전에 서주산업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혀바닥 시뻘겋게 되는 아이스 바를 다들 먹어 봤을거다. 그 서주산업의 회장이 바로 국회의원을 지낸 홍순일의 다섯째 사위 윤석민이다.
한승수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홍소자가 혜원여고 교장을 지냈는데 알아보니까 혜원여고 이사장 윤석민의 처형이네?? 헐... 신문에는 그런 관계가 안 나와서 참 재미가 없다.
홍소자랑 열린우리당 이미경의원이랑 친하게 지내지 않기를 바란다.
또 만주지역에서 엄청나게 크게 농장사업을 벌였던 천재라는 장덕진이라는 사람이 육영수의 언니 육인순의 사위다. 이 사람은 박정희정권 하에서 장관도 지냈다. 분명히 장덕진과 한승수가 춘천고 동문으로 친분이 있어서 동서가 된 거 같다.
전국민이 뻔질나게 소풍가는 한국민속촌 회장 정영삼도 육인순의 사위로서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어쨌든 이렇게 오만가지 요직은 다 해먹었는데 무슨 박정희가 친인척을 등용하지 않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승수의 아들 한상준은 얼마전 이희현이라는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내가 깊이 파보니까 이희현의 아버지, 그러니까 한상준의 장인은 유니드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이화영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 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웬걸??
이 이화영이라는 사람이 마지막 개성상인이니 뭐니 하면서 언론에서 띄워주는 성북동에 사는 동양제철화학그룹 명예회장 이회림의 아들이었다. 다들 봐서 알겠지만 ITV 폐업할 때 그 모습이 마지막 개성상인의 모습인가?
내가 그동안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후원회장 이회림이 왜 그랜드 서클 안에 안 들어오나, 의아했다. 그러니까 이회림과 한승수가 사돈을 맺은 거다.
어쨌든 한승수같이 유엔총회 의장까지 지낸 학벌 좋고, 경력 좋은 사람이 부인까지 데리고 가서 박정희를 추모하고 애도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 깜빡 속아넘어가겠다. 여러분, 한승수는 박정희의 조카사위에요, 조카사위!!!!!!!!!!!!!!!!!!!!!!!!!!!!!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아까 언급했던 박태준의 사위 중 튀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박태준의 딸 가운데 디자이너인 박경아가 있는데 전두환의 아들 전재용과 이혼을 하고, 김병주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김병주는 1962년생인데 얼마전까지 미국 칼라일 그룹 아시아지역 회장 겸 이사였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를 졸업하였다.
김병주는 국민의 정부시절 자민련이 연정을 할 즈음 박태준이 총리가 되기 직전에 칼라일 코리아 사장이 되었다. 김병주는 쌍용정보통신을 꿀꺽하더니, 5000억원을 쏟아부어 한미은행을 먹었다. 하나은행마저 잡아먹기 위해 공을 들였다.
한미은행을 4억달러에 사서 씨티은행에 27억달러에 팔아먹었다. 물론 그 이익은 미국 칼라일의 몫이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외국계 인사로 초대된 것으로 봐서 한국인이기 보다는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요즘 칼라일 간부 5명과 `MBK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를 만들어서 돈을 긁어들이고 있다. MBK는 마이클 병주 김의 약자다. 싱가포르 정부투자기관에서 5억 달러를 끌어들였고, 캐나다 교직연금에서 2억 5천만 달러를 끌어들였다. 삼성생명, 대우정밀 등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인물은 민주개혁세력이 끊임없이 눈여겨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로 다시 돌아가자.
지금 청렴하다는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아들 박재석은 연필장사를 하다가 박정희 덕분에 국제전기기업 회장이 되었다. 자민련 부총재를 지냈던 조부영같은 사람이 거기 이사출신인 걸 보면 대단한 은혜를 입은 거다.
게다가 박무희의 또 다른 아들 박재호는 벽돌공장에 다니다가 박정희가 집권한 후 동양육운 회장이 되었다.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있나??
박정희가 친인척에게 엄했고 공사구별이 철저했다는 소리는 다 뻥이다. 말이나 못하면 얄밉지나 않겠다. 이상과 같이 해 줄만큼 다 해주고 해먹을 만큼 다 해먹었다.

by 벗무 | 2006/10/10 21:50 | 펌글 | 트랙백 | 덧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