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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한인마을

그린페 2009. 8. 17. 00:22

연해주 한인 마을에 '희망의 집'을 짓다

[조선일보 2009.08.14 04:13:38]

빨간 두건을 두른 고려인 주로자(54)씨가 고추밭에 무성하게 돋은 잡초 더미를 곡괭이로 걷어냈다. 주씨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쓱쓱 닦고 고추들을 향해 주문을 외듯 러시아어로 혼잣말을 했다.
"하레쇼라스치!"(잘 자라거라!)
12일 오후 1시, 러시아 연해주 로지나 마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서쪽으로 160km 떨어진 외딴 마을이다.
'로지나'는 러시아어로 '조국'이라는 뜻. 중앙아시아와 연해주에 흩어져 살던 고려인 50여명이 2007년 9월 동북아평화연대의 지원을 받아 이곳에 정착했다. 동북아평화연대 연해주사무국 김승력 국장은 "구한말 한국을 떠나 연해주에 온 고려인들이 스탈린 시대 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며 "이들의 후손 4만여명이 1990년대 이후 부모의 고향인 연해주로 돌아왔지만 재산도, 일자리도 없어 3만명 정도가 난민처럼 지내고 있다"고 했다.
로지나 마을은 이들을 위한 자급자족 농촌공동체다. 구소련 시절 양계 농장으로 쓰이다 버려진 마을에 지난 2년간 목공소와 공동주택, 청국장 사업장 등이 속속 새로 들어섰다.
동북아평화연대 관계자들로부터 로지나 마을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경희대 는 지난 3일 학생 53명과 교직원 57명으로 구성된 해외봉사단을 파견했다. 이들은 16일까지 로지나 마을에 머물며 어린이집을 지어주고, 마을 공동 쉼터에 들여놓을 벤치를 포함해 자잘한 가구도 손수 만들어줄 계획이다.
12일 오후, 김진실(22·경희대 일어과 4년)씨는 같은 학교 학생 10여명과 함께 목장갑을 끼고 목재를 톱으로 썰어 벤치를 만들고 있었다. 김씨는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고려인 아이들이 흙더미에서 뒹굴며 시멘트 조각을 가지고 노는 걸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이며 "며칠 만에 팔뚝에 알통이 생기고 피부가 검게 탔지만, '나는 한국에서 온 여자 목공'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로지나 마을 사람들이 쓸 가구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나머지 봉사단원들은 며칠째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어린이집을 짓느라 부산했다. 12세 미만 고려인 어린이 15명이 부모가 농사일을 하는 동안 지낼 공간이다. 봉사단은 주민들 취향에 맞춰 벽화도 그리고, 홍삼 등 한국에서 준비해간 선물도 나눠주러 다녔다. 김선정(24·화학공학과 4년)씨는 "'해외봉사도 스펙'이라는 생각에 왔는데 온통 몸을 쓰는 일뿐이라 처음엔 시간낭비 같았다"며 "봉사단을 피하던 고려인 아저씨가 1주일쯤 지난 뒤 마음을 열고 웃으면서 사탕을 줬을 때 '취업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싶었다"고 했다.
학생들을 인솔한 경희대 교양학부 김희찬(48) 교수는 "내년까지 고려인 17가구가 더 들어올 예정"이라며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어린이집 서재에 들어갈 도서를 보내주고 6개월에 한번씩 학생들을 교사로 파견할 계획"이라고 했다.
황량하던 마을은 활기차게 바뀌었다. 로지나 마을 이장 최슬라바(48)씨는 "학생들이 너무 열심히 일해 주민들도 마당이라도 쓸지 않으면 미안할 정도"라고 했다.
"우리들에게 이곳 연해주는 '부모의 고향'인 동시에 아직은 '타향'입니다. 학생들이 우리를 위해 노력하는 걸 보니, 적응을 잘해야겠다는 용기가 납니다."
고추밭에서 잡초를 걷어내던 주씨는 "우즈베키스탄에 살다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작년 4월 연해주에 돌아와 로지나 마을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 우즈베키스탄 이 구소련에서 독립한 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남의 나라에서 차별받으며 죽겠구나' 싶었지요. 그러다 '아버지의 고향인 연해주로 돌아가자'고 결심했어요. 한국 학생들이 와서 웃으면서 도와주니까 '조상 땅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이신영 기자 foryou@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