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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자-워스트드레서10

그린페 2009. 8. 13. 00:30

로마시대 최고의 땅 팔라티노 언덕  2009-04-23

...여기는 아우구스투스가 살았던 곳 이곳은 황비 리비아가 살았던 곳이다 리비아의 집은 안으로 들어 갈수가 있는데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볼수...페허속에 유독 잘 보존된 유적이 하나 있었는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황궁터 였다 ...

www.cyworld.com/pinkpiona/2819130 블로그명: 피오나공주랭킹149,460위
 
 
 
세계 지도자, 워스트 드레서 10
[머니투데이] 2009년 08월 12일(수) 오후 04:21   가| 이메일| 프린트
[머니투데이 권다희기자]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호에서 가장 못 입는 세계 지도자(Top 10 Worst-Dressed World Leaders)를 선정했다.이들이 선정된 이유는 지나치게 튀는 색상, 국가 원수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게 저렴한 의상 등 각양각색이다.


1위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올랐다.

카키 색 사파리, 힙합 가수들이 씀직한 커다란 선글라스, 5인치짜리 키높이구두, 올백머리, 배를 감추기에 지나치게 작은 옷 등이 선정 이유다.


2위는 러시아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이유는 '윗옷을 지나치게 자주 벗어서'. 푸틴은 셔츠를 입지 않은 모습으로 언론에 종종 노출되곤 했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망토 때문에 3위에 올랐다. 타임은 그가 망토를 두른 모습이 ‘멋부린 드라큘라’ 같다고 혹평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라이온 킹에 어울릴법한 무지개 색상의 실크 의상 등 현란한 패션 센스로 4위에 올랐다.


5위는 전통 핸드 메이드 니트인 ‘chompa’를 즐겨 입는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모랄레스는 공식석상에서도 정장대신 chompa를 입는다. 2006년 볼리비아에서는 '에보 패션'이라 불리는 울 스웨터가 출시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6위는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면 티셔츠와 테헤란 시장에서 샀음직한 30달러짜리 중국산 자켓이 그를 워스트 반열에 올렸다.


7위는 '아디다스 츄리닝'를 즐겨입는 피델 카스트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즐겨 입는 빨간색상이 '인간 크레파스'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8위에 선정 됐다.


9위에 오른 국가원수는 마오쩌둥.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이제는 홍콩이나 상하이의 부티크에서나 볼 수 있는 시대에 뒤떨어진 옷이 됐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황제로 칭했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장 베델 보카사는 10위다. 1977년 2000만 달러를 들여 전대미문의 취임식을 열었을 정도로 사치스러웠던 그의 성격을 반영하는 '호화로운' 옷 때문에 선정 됐다.
 
오늘]1979년 중앙阿 보카사 황제 축출
‘폐하’는 전용기에서 사하라 사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회담하기 위해 리비아로 가는 중이었다.

 측근의 외마디 비명 같은 보고가 상념을 깼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다코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뭐라고! 빨리 기수를 돌려.” “이미 주요 시설이 반란군에 점령됐습니다.”

 피에 굶주린 중앙아프리카 ‘제국’의 황제 보카사. 프랑스군 장교 출신인 그는 중앙아프리카가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당시 군 창설의 주역이었다. 군 최고사령관이 된 그는 65년의 마지막 날 쿠데타로 다코 대통령을 축출했다.

 대통령이 된 뒤 그는 기행(奇行)을 일삼았다. 71년 어머니날에는 모든 여죄수를 석방했다. 대신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자 죄수들은 모두 처형됐다.

 기행의 절정은 77년 수도 방기에서 열린 대관식 겸 제국 선포식이었다. 국가 1년 예산의 절반인 2억달러가 소요됐다. 나폴레옹이 대관식에서 입었던 옷을 파리에 주문해 입었고 관(冠) 제작에 들인 비용만 500만달러에 달했다.

 그의 목을 조른 것은 영원한 후원자일 줄 알았던 프랑스였다. 보카사는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비롯한 특전을 프랑스에 안겼지만 79년 9월 사건으로 프랑스는 등을 돌렸다. 중고교생들이 교복 강제 착용에 항의하는 시위를 일으키자 군대가 이들 200여명을 살육한 것이다. 연행된 뒤 처형된 학생도 있었다.

 다코가 주도한 쿠데타에는 이 나라에 주둔한 프랑스군 1300명이 합류했다.

 다시 비행기 안. “프랑스로 가자.” 무전이 오간 뒤 조종사가 말했다. “프랑스가 착륙을 거부합니다.” 비행기는 아홉 시간이나 하늘을 떠돌다 코트디부아르에 착륙했다.

 쿠데타군은 황궁의 냉장고에서 사람의 넓적다리를 발견했다. 황궁에서 기르던 악어 옆에서도 인간의 뼈가 발견됐다. ‘황제’는 과연 악어에게만 인육을 주었던 것일까, 자기도 즐겨 맛을 보았던 것일까…?

  ‘황제’는 86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엘바 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처럼 저절로 재집권하리라는 기대였다. ‘물론’ 체포됐다. 93년 대사면 조치로 석방된 그는 3년 뒤 사망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무지했던 포도주 상식
박통시절 지미 카터 대통령이 서울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의 포도주 시음관이
한국의 마주앙 포도주가 제일 맛이 있다고 극찬을 한 일이 있기에,
내자에게 빨강 하양 두 가지를 20 병씩 사다가 재 놓고 살다가 환갑에 쓰자고
하여 창고 방에 눕혀 놓는다는 것도 모르고 쌓아두고 한 동안 살았다.
몇 해후에 자카르타에 주재할 때에 대사관의 公使한 분하고 점심을 하면서
카터 포도주 시음관의 찬사로 “마주앙 마흔 병을 을 재우고 있는데” 라고
하니,
아직 우리나라 마주앙이 콜크 마개 있는 것이 생산되지 않고 있으니 확인
해보라며 만일 콜크 마개가 없이 오래 두면 나중에 포도주 식초가 될 것이라
한 수를 가르쳐 주었다.
年暇 때에 집에 와서 확인 하니 정말 알미늄 마개 뿐인 포도주여서 한 달
집에서 쉬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마흔 병의 마주앙을 내자와 같이 다 먹어
치우느라고 즐거운 고역을 치룬 일이 있었다.
79 년 가을에 현 사우디 국왕 둘째 아들과 미팅이 있어서 빠리에 회사
사장과 같이 가서 일을 마치고 빠리 교외로 한 시간 가량 나가서 아주
조그마하고 고색이 짙은 마을에서 점심을 하려고 한 레스토랑엘 갔었는데
택시 운전수는 딴 데 가서 밥 먹고 오라하고 노란둥이 둘이서 들어가서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하여 고생을 하며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영어가 안 통하고 불어는 우리가 모르고 아예 한국어로 간간이 영어 단어
한두 자를 써가며 메뉴를 가져오라 하니 정장을 한 중 늙은 웨이터가
가죽 덮개를 씌운 두꺼운 책을 한 권 가져다주고 가 버렸다.
그 책은 음식 메뉴가 아니라 포도주 주문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 레스토랑에서는
포도주를 먼저 시켜야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메뉴를 한참 드려다 보니, 1951년도
백 포도주가 제일 오래 된 것이어서 그 놈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주문을 하였다.
당시 내가 모셨던 사장은 육사 3기생이어서 그 포도주가 재워질 때에 전쟁을
치루었던 시기었기에 아주 만족해 하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그 중늙은이는 하얗고 큰 테이불 냅킨에 먼지가 뽀얗게 덮힌
포도주 병을 싸가지고 와서 자기 손가락으로 甁목에 붙은 먼지 덮힌 조그만 증명서
를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1951”이라는 글씨가 나오게 하여 보여 주며 쭝얼대었다.
대충 진짜이니 확인하라는 것으로 이해하여 엄지 손가락을 보이며 “봉” 하였다. 그리고
가져다주는 포도주 잔이 너무 커서 두 손으로 들어야 하는 크기었기에 다른 테이불을
쳐다보니 다들 한 손으로 가볍게 들 수 있는 것이어서, “아, 비싼 놈은 잔을 왕잔으로
먹는 모양“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런데 웨이터는 먼지투성이의 포도주 병을 얼음 통에 넣어놓고 가더니 한 동안을
와 보지도 않는 것이 포도주의 시음하기 좋은 온도가 되지 않으면 따라 주지를
않는 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 두 노란둥이가 포도주를 반쯤만 먹고 남은 것을 그 테이불에 써브하던
이에게 가지라고 우리말로 하니 잘 알아들으며 매우 고맙다고 90도의 절을 하는
것이었다.
2003년 05월 21일 15시 1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