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박근혜
10일 오전 6시30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손엔 벙어리 장갑이 끼워졌다. 면회온 부인 이희호(88)씨가 한땀 한땀 손수 짠 것이다.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맏아들 김홍일 전 의원이 다녀갔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어제는 큰아들 홍일이가 왔어요. 기쁜 소식이 많으니 빨리 일어나세요.” 하루 전인 9일 0시께 혈압이 떨어지는 등 고비를 맞았던 김 전 대통령은 이날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폐렴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지 29일째, 간병을 해오던 이씨는 3~4일 전부터 뜨개바늘과 따뜻한 느낌이 나는 상아색 털실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방문객이 오면 뜨개질을 잠시 멈추고 인사를 받았고, 방문객이 가면 다시 뜨개질을 계속했다. 장갑 한 켤레를 하룻만에 다 떴다.
김 전 대통령의 발에는 이씨가 정성 들여 만든 덧신이 신겨져 있다. 혈압이 떨어지면 손발이 쉬 차가워진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의료진이 ‘혈압이 떨어지면 손발이 차가워진다’고 하고, 실제 손발이 차가워졌다고 느끼셨는지 여사님이 갑자기 뜨개질을 시작하셨다”며 “의료진도 ‘덧신과 장갑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 비서관은 “여사님이 뜨개질로 마음을 다스리고 계신 듯하다”며 “1970년대 김 전 대통령이 옥중에 계실 때도 목도리 등을 떠서 드렸다고 하는데, 남편의 손발 체온 하나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쓰는 아내의 마음인 듯하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오는 24일부터 내달 5일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헝가리와 덴마크, EU(유럽연합)를 방문한다. |
李대통령, 박前대표에 특사 직접 제의
친이-친박 `화해', 친박입각 등 영향 주목
연합뉴스 | 입력 2009.08.10 17:57 | 수정 2009.08.10 18:03
이번 특사 파견은 한.EU(유럽연합) FTA(자유무역협정) 조기 체결을 위한 실무적 성격이 강하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나 지난 대선 이후 유지해 오던 이른바 `친이-친박'의 팽팽한 긴장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주목된다.
아울러 이달중으로 예상되는 개각과 관련, 정치권에서 `친박 입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박 전 대표의 특사 파견을 전격 발표한 것도 상당한 정치적 함의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특사를 제안한 것은 지난 2월초 청와대에서 열렸던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초청 오찬 때였다"면서 "당시 박 전 대표도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성사됐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별도의 독대시간을 갖지는 않았으나 오찬을 마무리하며 창가에서 1,2분 가량 `짧은 밀담'을 나눴으며, 이 때 유럽 특사 제의가 오갔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당시 EU 특사 파견을 먼저 제안했고 박 전 대표도 그 자리에서 사실상 수락 의사를 밝혔으며, 이후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양쪽을 오가며 조율하는 과정에서 올해로 수교 20주년이 되는 헝가리와 수교 50주년을 맞는 덴마크가 방문국에 추가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와 관련, 한 친박계 의원은 "지난 2월 청와대 행사에 앞서 1월초 비공개 회동에서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특사를 제안한 것으로 안다"면서 "박 전 대표는 국가나 국민을 위한 일에는 항상 협조한다는 차원에서 수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4월 재.보선이나 당 쇄신, 조기전대 등의 논의 과정에서 친이계와 친박계가 심각한 당내 균열양상을 보여왔던 것과는 별개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상당기간 `교감'을 가져왔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어서 향후 여권내 정치구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아울러 이번 박 전 대표의 특사 수행단에 친이계 핵심인 안경률 의원과 친박계 핵심인 유정복 의원이 함께 포함된 것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박 전 대표 특사 파견이 가깝게는 개각과 오는 10월 재.보선, 내년 6월 지방선거는 물론 길게는 차기 대선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다소 성급한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번 개각에서 정치권 인사의 입각을 유력하게 점치고 있으며 친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최경환 의원, 서병수 의원 등도 장관직 물망에 올라 있다.
청와대도 박 전 대표의 특사 파견이 당내 화합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분위기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지나친 의미부여를 경계하는 기류도 읽힌다.
여권 관계자는 "정치적인 의미를 무시할 수 없으나 이번 특사 파견은 실무 외교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면서 "친이-친박 갈등이 이를 계기로 치유되리라는 기대는 성급하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해 1월 박 전 대표를 중국 특사로 파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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