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마을-아틸란티스
죽음으로 가는 마을, 치비타 디 반뇨레죠2009.06.23 13:41 | Flickr 갤러리 | flickreenos
|
아틀란티스의 전설
신화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도, 그리고 고대 문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적어도 한번 정도는 아틀란티스에 대해서는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아틀란티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것이 그리스신화와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틀란티스에 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계속 되고 있지만, 여전히 전설로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전설로만 남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트로이의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언젠가는 아틀란티스가 발견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9세기말에 이르기까지 호메로스의 는 그저 한 시인이 전설을 모아 엮은 옛이야기라고 생각해 왔지만, 트로이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슐리만의 노력에 의해 트로이는 발굴이 된 것이다. 어쩌면 트로이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아틀란티스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발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어떤 곳에서 아틀란티스라는 명백한 증거가 나온다면 인정이 된다면, 즉 아틀란티스가 발굴된다면 그것은 21세기 최고의 발견이 될 것이다.
몇 년 전에 EBS에서 현대까지 남아있는 불가사의한 일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물이 방영된 적 있다. 여기에서 버뮤다 삼각지대, 자연발화 현상, 공중부양 같은 것에 대한 분석이 나왔고, 대부분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될 설득력 있는 해설이 나온 바 있다. 이중에는 아틀란티스에 관한 것도 나왔는데, 아쉽게도 이것만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답변을 내려놓고 있지는 못했다.
아틀란티스 역시 그저 전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자세한 기록들이 있다. 그것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가로 꼽히는 플라톤에 의해서 언급되었다는데, 더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틀란티스에 관한 이야기는 플라톤이 쓴 와 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전설은 기원전 590년 경 이집트를 방문한 그리스의 현인 솔론이 이집트의 사이스 신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플라톤이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몇가지 이야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찍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랄타 해협) 서쪽에 하나의 섬이 있었는데 이 섬은 리비아(북아프리카)와 아시아(소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컸다. 그 섬에서는 다른 섬으로 건너 갈 수가 있었고 그 섬들을 통해 대서양을 에워싸는 반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이 섬은 아틀란티스라고 불리웠는데 이 섬은 주변의 섬들과 리비아, 이집트, 유럽의 티레니아 근처까지 복속시킨 강대한 제국의 중심이었다. 이 국가는 헤라클레스 기둥의 안쪽 여러 국가 전부를 복종시키려 하였다.
아테네 군대는 그리스 연합군의 선두에 서서 용감하게 싸워 침략군을 격퇴시켰다... 그후 격력한 지진과 홍수가 일어나 하루 낮, 하루 밤 사이에 아테네 사람들은 땅속으로 가라 앉았고 마찬가지로 아틀란티스 섬은 바다 밑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방면의 바다쪽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대량의 뻘이 차서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며 이는 그 섬의 침하 때문이었다.
이 나라 시조 포세이돈의 장자 아틀라스가 초대의 왕이 된 데서부터 섬 전체와 주변의 바다에도 아틀란티스란 이름이 붙었다. 전성기의 수도는 바다와 이어지는 최대폭 533 미터의 3중의 환상 운하로 둘러쳐져 있었다. 아틀란티스에는 백, 흑, 적의 돌이 있었으며 이 세 가지 돌을 사용한 얼룩색을 띤 건조물이 있었다. 왕궁은 중앙 섬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었다. 여기에는 포세이돈과 애인 크레이트를 모신 신전이 황금의 벽으로 감싸여져 있었다. 이와 같은 건조물은 금, 은, 구리, 동, 상아 등 불꽃처럼 빛나는 이상한 금속 등으로 호화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다. 육지로 이어지는 운하의 환상로에는 공원, 학교, 병사, 경마장 등이 있으며 이곳엔 또한 탑과 문이 달린 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큰 부두는 각지에서 모이는 상인들로 밤낮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아틀란티스의 수호신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다. 포세이돈은 그 섬에 살고 있는 가련한 처녀 클레이토와 결혼하여 10명의 사내아이를 낳게 된다. 그 아이들에게 그 섬의 10개 지역을 나누어 주고 각각의 왕으로 삼았다. 아이들 중 장자가 전체의 왕이 되었는데 그가 아틀라스이며, 그의 이름을 따서 아틀란티스라 이름지어졌다. 아틀란티스는 지형적으로 매우 기이한 섬이었다. 섬의 중앙부분에 둥근 고리 형태의 육지와 바다가 교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아틀란티스는 매우 풍요로운 나라였고, 무역 중심지로 성장하여 커다란 세력과 부를 축적시켰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훌륭한 나라였다. 그러나 나중엔 점차 타락의 길로 들어섰다. 마침내 모든 신의 왕이었던 제우스가 아틀란티스에 징벌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아틀란티스에 대해 지리적인 묘사까지 첨부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근거로 아틀란티스를 찾기 위한 노력은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대서양의 중심에 가라앉은 대륙이 있다는 주장이 가장 많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대홍수의 전설과도 연결이 되는데, 거대한 대륙이 가라앉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해수면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틀란티스 대륙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주장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기도 한데, 그것은 판구조론에 따르면 대륙 규모의 땅덩어리가 대서양 해저분지에서는 아예 존재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즉 아틀란티스 대륙도 지각판 위에 있어야 하는데, 이 지각판이 사라진다는 것은 현대 과학의 시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틀란티스는 현존하는 대륙의 일부라는 주장도 많이 있고, 나름대로의 설득력도 지니고 있다. 지중해에 있는 섬들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높은 산이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영국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일부 지역이라는 주장도 있고, 남아메리카의 어떤 지역이라고도 한다. 이런 지역들의 공통점은 플라톤이 언급한 지리적인 여건과 어떤 공통점이나 유사성이 있거나, 또는 해당 지역의 아직 풀리지 않는 고대 유적의 비밀을 아틀란티스 문명과 연결시키려는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모든 주장을 합쳐 놓으면, 아틀란티스라고 주장되고 있는 지역은 전 세계적으로 200여군데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지중해의 한 부분, 에게해에 아틀란티스가 존재했다는 내용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 내용은 지질학 박사인 좌용주 교수님의 라는 책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먼저 아틀란티스의 위치는 지브롤터 해협에 있다고 생각되는 헤라클레스의 기둥 건너편에 있다고 하였다. 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아테네에서도 보인다고 하는데, 실제로 아테네와 지브롤터 해협까지의 거리는 2,500km로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볼 수가 없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도 보일 만큼 높이 솟은 기둥이라면, 그것은 높은 산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을 그렇게 멀리서 볼 수는 없다. 아테네 인근에 있는 높은 산이라고 해 봤자, 크레타 섬에 2,400m의 산이 있지만 이것도 300km 떨어져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또 한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화산의 분출을 생각할 수 있는데, 화산 폭발이 격렬할 경우 재와 먼지가 분출되어 만드는 기둥은 무려 30~40km 이상 솟아오르고, 그 기둥은 수백 km 떨어진 곳에서도 쉽게 관찰이 된다. 실제로 1980년 5월 18일 미국 워싱턴주 세인트 헬렌즈 화산의 폭발 때, 분출 기둥은 약 20km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에게해에 아테네와 크레타 섬 사이에 거대한 화산폭발이 있었던 화산섬이 존재하는데, 바로 산토리니이다. 화산폭발과 지진이 일어나고, 또한 화산의 중심부가 가라앉으면서 해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아틀란티스 전설과 유사한 대목이다.
또 아틀란티스는 리비아와 아시아(지금의 터키)를 합친 것보다 크다고 표현되었다. 때문에 아틀란티스는 대륙이라는 오해를 심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벼운 대륙은 절대로 무거운 멘틀 아래로 그냥 가라앉을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표현은 아틀란티스의 커다란 영향력을 나타낸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했거나, 또는 그리스어로 크다(meson)의 표현과 사이(mezon)의 표현이 혼동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있다. 만약 사이라고 한다면, 리비아와 아시아 사이는 에게해가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틀란티스의 지형은 중앙부는 평원이었고, 그곳은 둥근 고리 형태의 육지와 바다가 교대로 나타나는 지형인데, 이러한 지형의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화산의 중심부이다. 즉 아틀란티스는 화산섬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산토리니는 매우 이상한 형태로 생겼는데, 먹다가 남겨놓은 도넛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섬의 내부는 바닷물로 채워져 있고, 이것은 화산활동에 의한 결과로 생긴 칼데라이다. 섬 바깥쪽에서 보면 그 안에 있는 바다를 전혀 알 수 없다고 한다. 또 1967년 이후 산토리니 섬 아크로티리 유적이 발굴됨에 따라 그리스의 지질학자 가라프소스의 새로운 가설이 만들어졌다. '기원전 15세기 산토리니 섬의 대분화, 그에 따른 대지진과 대진파가 산토리니의 고대도시를 함멸 시켰는데 그것이 아틀란티스 전설이 된 것이 아닐까?' 아크로티리 유적에서는 지금도 기원전 16세기경에 번영한 고대 도시의 건축물 설비 도구류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특히 선명한 색채의 훌륭한 프레스코 벽화는 당시 문명의 찬란함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섬에는 고대 로마부터 계속해서 사람이 살고 있어서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보다도 더 이전에 키클라데스 문명이라는 훌륭한 시대를 창조했다. 그 문명이 한 순간에 역사의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에 지금도 이곳이 환상의 대륙 아틀란티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음은 이그네이셔스 도널리의 가 제시한 13가지 명제이다.
1. 오랜 옛날, 지중해 저편 대서양에 큰 섬이 하나 있었으며, 고대인들은 그를 아틀란티스라 하였다.
2. 플라톤이 묘사한 이 섬은 오랫동안 한편의 우화로 취급되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3. 미개 상태의 인류가 최초로 문명을 일으킨 곳은 아틀란티스다.
4. 아틀란티스가 많은 인구를 거느린 강국이 되고 그 인구가 퍼져 멕시코만, 미시시피강, 아마존강, 남미태평양, 지중해, 유럽, 아프리카의 서안, 발트해, 흑해, 카스피 해 등의 주변의 문명국가가 건설되었다.
5. 이것이 바로 대홍수 이전의 세계로 에덴동산, 엘리시온의 들판, 알키누스의 나라, 메솜팔로스, 올림포스, 아스가르드.....이런 전설상의 낙원은 인류가 오랫동안 살아왔던 아틀란티스에 대한 기억이다.
6. 고대 그리스인, 페니키아인, 인도인 등이 숭배하던 신들은 아틀란티스의 왕이나 영웅들의 이름이었다.
7. 이집트나 페류의 태양숭배 신화는 아틀란티스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8. 아틀란티스인에 의해 건설된 가장 오래된 식민지는 이집트일 것이다.
9. 유럽의 청동기 시대 기물은 아틀란티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틀란티스는 최초의 철기 제조자이다.
10. 유럽알파벳의 기원인 페니키아 문자는 아틀란티스에서 유래한다. 마야문자까지도.
11. 아리아계, 즉 인도유럽어족, 셈어족, 투란계의 발상지 또한 아틀란티스다.
12. 아틀란티스는 자연의 변동에 의해 파멸되었다.
13. 극히 일부만이 배나 뗏목으로 피해, 이 재앙을 알렸다. 이것이 대홍수, 대범람의 전설로 남은 것이다
크레타 섬이 아닐까요
모든게 크레타 문명과 비슷한데 크레타섬과 아틀란티스 대륙과 의 면적이 맞지 않은것 같네요. 크레타 문명도 굉장히 발전한 문명이었는데 한번의 화산폭발로 멸망한걸로 알고있는데, 크레타 섬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크레타 섬]
크레타는 인류문명이 시작된 곳으로 기원전 6천년부터 크레타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3천 년부터는 청동기 시대를 맞이
하여 미노아 문명이 발생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수준이 매우 세련되었다. 청동기 문화에서 시작된 미노안 문명은 미케네 문명을 발현시켰고 후에는 미노안 문명과 미케네 문명을 에게해 문명이라고 부른다. 4대 문명의 발상지들 보다 더 앞선 이 섬은 이제 작은 섬으로 남아 있을 뿐 기원전 3천년 경에 꽃피웠던 화
려함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들이 그치지 않고 크레타 섬
에 찾아오는 이유는 지진으로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미노안 문명의 잔
해와 아름다운 크레타 섬을 보기 위해서다.
수니온 곶 (CAPE SOUNION)
아테네의 동남쪽 70Km 에 위치. 땅끝 깍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포세이돈 신전(TEMPLE OF POSEIDON, 기원전
5세기)이 세워져 있다. 일출, 일몰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사로니카 만 (SARONICA GULF)
해수욕에 적격인 에기나섬, 아테네 시민의 주말 휴식처, 포로스섬
화가들이 좋아하는 이드라섬 등이 떠있고, 피래우스에서 쉽게 건너
갈 수 있다.
코린트 (CORINTH)
아테네의 서쪽으로 90Km. 고대 코린트 시는 그리스의 전성기,
상업과 문화의 일대 중심지였던 곳으로서 아고라와 신전, 극장 등
의 유적이 남아 있다.
미케네 (MYCENAE)
아테네의 서쪽 130Km. 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가멤논의 성으
로, 주위는 깍아지른 듯이 우뚝 솟아 있는 암산으로 둘러싸인 견
고한 산성이다.
(기원전 16세기)
에피다우로스 (EPIDAUROS)
아테네의 서남쪽 180Km 에 위치. 의신 숭배의 장소였던 만
큼 의료관계 건축이 많다. 여기에서 볼 것은 원형 극장으로 멋
진 조형과 음향효과가 놀랍다.
델피 (DELPHI)
아테네의 서쪽 160Km 에 위치. 그리스 운명을 좌우한 아폴
론의 신탁이 행해졌던 성역. 거대한 아폴론 신전을 중심으로 보
물전, 극장, 제전 경기장이 배치되어 있다.
호시오스 루카스 수도원(MONASTERY OF HOSIOS LOUKAS)
델피 부근에 위치. 그리스에서 손꼽히는 비잔틴 양식의 건축
(10세기)모자이크 바닥이 색다르다

MB 친서민 행보 잰걸음… 기숙형 고교 괴산고 방문
입학사정관제 확대 등 근본적 변화 시사… 靑, 기숙사비 대폭 경감 방안 마련키로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대학은 논술도 없고 시험도 없는 100% 면담만으로 가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며 “그때는 과외도 받지 않고 오로지 학교 교육만 받는 것이 최고 유리하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농ㆍ산ㆍ어촌 기숙형 고교로 지정된 충북 괴산고를 방문, 학생 학부모 교사 등과 가진 간담회에서 “특정지역과 특정도시에서 과외받고 성적 좋은 사람만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인정받는 시대는 마감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입학사정관제를 하면 대학에서 논술이나 입시보다 면담으로 선발하는데 주요 항목이 학원 다니고 과외했느냐는 것”이라며 “큰 도시에서 과외나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더 평가받도록 입학제도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어 “과외나 사교육을 받지 않고 학교 교육만 받은 사람이 대학 가기 쉬운 시대가 열린다. 앞으로 분명히 그렇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입학사정관제 확대 실시 등 대입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학자금 대출제도와 관련,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가고 싶은데도 못 가는 학생들이 없도록 하겠다”며 “적어도 (대학 졸업 후) 2, 3년 뒤에 좋은 일자리를 구해 수입이 생길 때 갚아 나가는 실질적인 대여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와 함께 농ㆍ어촌 학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전체 기숙형 고교 학생 기숙사비를 크게 경감하는 방안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조속히 마련키로 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괴산고 방문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마련됐다. 마이스터고 지정학교인 원주정보공업고와 서울 관악구 보육시설인 ‘하나어린이집’에 이어 이달 들어서만 세 번째 이뤄진 교육 현장 방문으로 이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친서민 행보의 일환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농ㆍ산ㆍ어촌 교육 활성화를 통해 도시와 농촌과의 교육 격차를 실질적으로 줄여나가자는 것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서민 교육 대책의 핵심 중 하나”라며 “이는 이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 및 중도ㆍ실용 정책 강화의 일환”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