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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군학교통합

그린페 2009. 5. 19. 00:08

생뚱맞은 삼군 사관학교 통합 논의
민족적 자부심 고취 훈육이나 제대로 하라
09.03.24 18:52 ㅣ최종 업데이트 09.03.24 19:50 표명렬 (pyo3393)

청와대가 삼군 사관학교의 통합을 국방부에 강력히 요구했다고 한다. 여론에 의해서 결정할 사안이 아님은 물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방현안도 아닌데 뜬금없이 발표되었다. 너무나 생뚱맞아서인지 다른 신문들은 조용한데 촛불 시위에 유난히 부정적이었고 용산참사의 핵심 내용 보도에는 입 다물어 온 특정신문이 대서특필했다.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 전문적으로 연구한 결론을 가지고서 추진하면 될 터인데 무슨 대단한 결단이라도 내린 듯 불쑥 내민 것일까? 다른 통수권자들이 하지 못했던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어서일까? 씁쓸하다.

 

혹시나 국방부가 '군내 불온서적 반입 금지'라는 시대착오적 코미디적인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들을 파면이라는 강력징계 조치의 무리수를 자행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쏠리게 하기 위해 잔재주를 부린 것은 아닌지?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하도 바닥인지라 별별 의심을 하게 된다.

 

사실 삼군사관학교 통합에 대해서는 역대 정권 내부에서도 수차례 거론된 바 있다. 그러나 군대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자부하던 서슬 퍼런 독재정권의 최고 통수권 수준에서 "그건 아니야!"란 한마디로 결론난 내용이다.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었기에 무관심했는데 세심한 검토도 없이 막무가내 밀어붙이려는 현실을 보면서 비록 무지막지 독재 권력이었지만 순수 군대문제에 대해서만은 합리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안보문제는 독재냐 민주냐, 보수냐 진보냐와 상관없는 국가중대사임을 새삼 실감한다.

 

'무지하면 용감하다'더니 이명박 정부의 고위층 중에는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실용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인지 국가 경영의 핵심과제인 안보 문제에 대해 너무나 신중성이 결여되어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삼군 사관학교 통합 문제를 하필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챙기고 있는 지부터가 문제다. 혹시나 롯데 재벌의 고층빌딩 신축을 허가코자했던 그들의 의지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공군 출신들에 대해 괘씸죄의 본때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깔린 것은 아닌지 꺼림직하다.

 

국방체제와 간부양성체계는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 군은 육·해·공군으로 분류된 군종(軍種)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무기체계와 군 구조 발전, 그리고 인사관리 등 군사력 건설과 운영이 정착된 지 오래다. 이에 따라 간부양성 체계는 육·해·공군으로 분리하여 전문성 있게 발전 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군대상식이다. 특히 공군력과 해군력이 중시되는 미래 전에 대비키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심지어 육군 내에서도 보병·포병·공병·통신 등 병과별로 학교가 따로 설치되어 있는데 각 군 별로 사관학교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기왕에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미국 등 선진국의 군사제도를 우리 것으로 소화하여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뚱딴지같이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합치겠다니 이것도 잃어버린 10년 탓인가? 흔히 일본 자위대의 통합군 제도를 예로 드는데 사실 자위대는 평화헌법에 의해 아직 정상적인 군대라 할 수 없다.

 

통합을 함으로서 각 군별 이기주의를 타파하고 삼군 협동의식을 증진한다는 설명을 늘어놓고 있는데 이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별 못 하는 발상이랄 수 있다. 고도로 정밀화된 첨단무기를 활용하는 현재와 미래의 전쟁에서 각 군은 군 나름의 개인주의적 특성의 다양성과 창의력을 개발하여 전문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통합하여 함께 교육 받음으로서 협동의식이 생긴다 함은 육해공군의 합동 및 연합작전을 동기생끼리의 좌담회 수준으로 착각하는 유치한 생각이다. 전쟁에서는 어떤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장 냉철한 이성적 판단의 결행이 요구된다. 현재의 간부양성 체제를 그대로 두고도 얼마든지 상호 협력적 교육이 가능하다. 지금도 부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3군의 균형발전에 있어서 여러 문제점이 노정되고 있는 상황인데 사관학교까지 통합하게 되면 우리나라 조직문화의 특성상 숫자 많은 군 쪽으로의 쏠림현상이 더 심화되어 해공군 간부들의 자부심과 사기가 저하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필승의 강군 육성을 위해서는 간부들이 강해야 하며 간부가 강하다는 것은 간부들의 정신이 강하다는 뜻으로서 이는 바로 '자부심'이 강하다는 의미다.

 

이에 삼군사관학교 통합이 간부들의 자부심을 높이는데 유리할 것인지? 아닌지가 판단의 핵심 기준이 되어야한다. 각 군은 군마다 고유의 역사와 전통이 있고 각기 세계 공통 특유의 자랑스러움과 멋을 지니고 있어 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런 육·해·공군의 각기 다른 문화와 전통을 소중히 여겨 이를 발흥 촉구함으로써 자부심을 고취함이 바로 간부양성과정 훈육의 중점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군의 간부양성제도의 발전은 삼군사관학교를 통합하는데 있지 않다. 친일 세력들과 독재 권력에 의해 민족적 자존심을 없이하도록 만들어 놓은 훈육의 내용을 개혁하여 정상화함이 급선무다. 생도들의 가슴 속에 불타는 민족적 자부심을 일깨움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군인은 유사시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야하는 존재다. 만약 조국과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어떻게 나의 생명을 기꺼이 던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군은 친일독재 세력들에 의해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항일 독립전쟁의 부분을 송두리 삭제 당했고 오로지 적대적 냉전의식으로만 세뇌시켜 지금에 이르렀다. 그 결과 진정한 민족적 자부심이 실종되어진 상태다.

 

비록 사관학교에서는 지금까지 민족혼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자부심 고양의 훈육이 없어왔지만 육해공군 각 군은 나름대로 자기 군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해 왔다. 삼군사관학교를 통합함으로서 이런 정신교육마저 해체하여 그나마 남은 간부들의 자존심과 사기를 떨어뜨리는 우를 범할 것인가?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한다.

칼럼/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이다
[미주한국일보] 2009년 04월 23일(목) 오전 01:51   가| 이메일| 프린트
도박중독자 가족모임을 나타내는 상징에도 몇 가닥의 매듭이 있다고 한다. 가족 친목모임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떤 위대한 존재에게 의탁할 필요성이 있다. 스스로 잘못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오늘 하루만을 열심히 산다고 생각한다. 누리고 있는 축복을 재발견한다. 자주 웃는다.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런 등등의 매듭으로 이어질 때 도박 중독자들이 보다 나은 삶을 향해 한발 한 발 전진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을 살다 보면 그 때 그 때 삶의 매듭이 지어진다. 그 매듭들이 이어지면서 우리 인생은 죽음이라는 종착역까지 가게 된다. 그 하나 하나의 매듭은 삶의 새로운 마감과 또 하나의 새로운 촉진제와 재충전의 뜻이 담겨있다. 그동안 지나온 것을 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삶의 순간 순간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삶이 마무리 지어지는 것이다.

학생들의 졸업은 바로 이러한 삶의 완성을 위한, 즉 인생의 홀로서기를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태어나 성장하면서 거쳐가는 몇 단계의 졸업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 나아가서는 대학원, 연구기관 등등. 이런 과정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할 경우 그 인생은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가 없다.

특히 일반적으로 최고과정인 대학 졸업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단계를 거쳐 곧 바로 삶의 현장으로 이어지는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는 이유다. 그래서 대학 졸업식장에는 대통령이나 유명한 정치인, 기업가, 문화인 등이 참석해 일종의 격려가 담긴 축하연설을 하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각 대학마다 졸업이 시작됐다. 일반 대학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육, 해, 공 삼군 사관학교를 마치고 졸업하는 사관생들도 너무 기뻐 4년 동안 쓰고 다니던 모자를 하늘로 집어던지고 하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야단이다. 그러나 이 환호성 속에는 알고 보면 아주 쓰라린 고통과 노고가 들어있다. 그리고 남모르는 기대와 설레임, 희망도 들어 있다. 그래서 졸업생들을 ‘잘했다’ ‘수고했다’ 잘 해라’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고 하는 것이다. 앞으로 또 한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할 일이 있어서다.

졸업은 하나의 매듭이지 영원히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우리 인생에 졸업이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졸업과 동시 그 때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들을 한다. 대학 졸업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인 자녀들은 부모들의 지나친 욕심으로 무작정 일류대학에 들어갔다 졸업을 못하거나 아니면 도중 다른 학교, 혹은 다른 과 등으로 전공을 바꿈으로써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생이 마라톤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고 한 단계 한 단계 매듭을 제대로 짓지 못하고 온 결과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도, 심지어는 일류대학을 나오고도 자기 일을 똑바로 못하거나 부모 옆에서 얼씬거리는 절름발이 한인 2세들을 보게 된다. 학창시절의 한 단계, 한 단계, 매듭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현실이다.

유아기부터 대학 졸업 때 까지 학창시절, 미래를 향한 도전기, 노년기를 통틀어 인생 3막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가장 황금기인 제 2막의 마무리를 위한 준비단계에서 자녀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이것은 문제가 있다. 제 1막의 과정인 부모의 보호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홀로된 개체로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작업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어린아이는 세상에 나와 자라면서 기어 다니다가 그 이후에 걷고 뛰고 하는 법을 배운다. 한 번에는 날 수 없기 때문에 걸음마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이는 일어서기가 어렵다.

한 단계, 한 단계는 다음 단계를 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익하고 배우는 과정이다. 바다에 나가 고래 잡는 법을 습득하기 위한 훈련이다. 졸업의 매듭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한 아이의 생은 부자와 빈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 행복한 자와 불행한 자 등으로 판이하게 갈라진다.

인생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위에서 항해하는 돛단배와 같다. 배가 표류하느냐, 순조로우냐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떤 매듭을 짓느냐에 달려 있다. 졸업은 늘 새로운 시작이요, 또 다른 비전과 목표를 향한 희망과 도전의 신호탄이다.

여주영 (주필)
juyoung@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