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사진)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대중 문화활동에 나선다. SK 최태원 회장의 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 때문에 오히려 조용히 활동했던 그는 12일 서울 종로1가 SK빌딩 4층 나비에 10여 명의 지인을 불러놓고 “이제 ‘나비’의 문을 열고 세상과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가 계획하고 있는 행사 제목은 ‘파티(P.Art.y)’다. 9월 14~16일 사흘간 남산 드라마센터(구 서울예술대학)를 ‘미디어 아트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미디어 아트’라는 다소 생소한 이 분야에 노 관장은 지난 10년간 매달려 왔다. 그는 “과거의 예술은 작품으로 표현되는 예술인 반면 미디어 아트는 사람과 기술과 예술이 만나 소통하는 분야”라고 했다. 파티도 사람(People)·예술(Art)·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미디어 아트에선 음악가가 연주를 하면 음향에 따라 어울리는 여러 가지 문양이 허공이나 벽면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또 빛으로 건물에 갖가지 문양을 만들고 이와 어울리는 음향이 어우러지는 등 사물이 생물처럼 소리와 빛 등에 반응하도록 하는 실험적인 예술이다.
노 관장은 이 미디어 아트를 사람들의 놀거리로 확대하는 실험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인라인스케이트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반원 모양의 하프파이프에 음향을 깔아 사람들이 그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대로 음향이 돼 나오도록 하기도 하고, 거대한 폐쇄회로(CC)TV를 만들어 놓고 휴대전화 카메라와 서로 겨루게 하는 등 놀면서 미디어 아트를 즐기도록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짜놓았다.
그는 “젊은이들이 노는 것 자체로 예술행위를 할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노 관장은 이 행사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날 SK 임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편은 행사를 이해하는데 SK는 별로 이해하는 것 같지 않더라”며 “그분들이 이 행사도 사회공헌 활동이라는 취지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 들어갈 기금을 모으는 활동도 벌일 계획이다. 그는 “(사람들이) 집에 조용히 있을 것이지 왜 나서느냐고 하면 어떡하느냐”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노 관장은 “이 행사를 알리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만나는 사람마다 도움을 청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양선희 기자
과학과 예술, 그 공통분모를 찾아서 |
아트센터 나비와 한국과학기술원, 디지털 미디어 세미나 개최 |
아트센터 나비와 한국과학기술원 가상현실연구센터에서 주최하는 “2005 봄 디지털 미디어 세미나”가 4월 26일부터 개최된다. 디지털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창조적 상황을 사회, 문화, 예술적 측면에서 다각도로 살펴보기 위해 마련된 디지털 미디어 세미나의 봄 학기 강좌는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테마로 하고 있다.
과학과 예술은 세계의 반영이라는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이성과 감성을 양분하는 것처럼 서로 대립된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과학과 예술이 융합과 갈등을 거치며 서로에게 미친 영향과 소통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힐 가능성을 모색하는 장을 마련할 것이다.
세미나는 「인문학으로 과학읽기(2004)」,「과학은 얼마나(2004)」등을 저술한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부교수의 강연으로 시작된다. “과학과 예술: 그 수렵과 접점을 위한 역사적 시론”을 주제로 한 첫 강연에서는 △과학과 예술이 서로 상대의 영역에 미친 영향 분석 , △과학적 실행과 예술적 실행에 대한 연구 성과 소개 , △과학과 예술에서의 공통적 창의성을 조명함으로써 두 문화 사이의 거리를 좁혀 서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5월 31까지 매주 화요일 열리는 디지털 미디어 세미나에서는 과학인, 예술가, 평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강단에서 만날 수 있다. 세미나의 참가 신청은 온라인 (www.nabi.or.kr/dms) 을 통해서 선착순으로 받는다.
나비아트센터 2005 봄 디지털 미디어 세미나
독일 하노버서 대규모 한국미술 전시
[한국일보] 2009년 04월 06일(월) 오전 02:56 가 가 | 이메일| 프린트
 독일 하노버에서 17일부터 5월 31일까지 대형 한국미술 전시가 열린다. 도심 한복판에 있다 최근 폐점된 진레퍼스 백화점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독특한 전시로, 세계 최대의 기계ㆍ산업설비 전시인 하노버 산업박람회(5월 20~24일)의 올해 동반국으로 한국이 결정됨에 따라 열리는 문화예술 행사다. 동반국 문화행사 총감독을 맡은 김정화(53)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과거 수출국가를 상징하던 말 'Made in Korea'를 주제로 삼아 한국의 예술적 정체성을 다양하게 담으려 한다"고 말했다. 총 4개 층, 8,114㎡의 전시 공간은 비엔날레에 준하는 큰 규모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 40팀의 작품 260점이 이곳을 채운다. 지하는 미디어아트, 1층은 설치와 평면 작품, 2층은 사진, 3층은 디자인으로 구성된다. 현대미술 전시는 박찬경 배영환 사사 송상희씨 등 30~40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며지고, 사진전에는 한국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배병우 노순택 구본창 정연두씨 등의 작품이 걸린다. 이상진 박진우씨 등이 참여하는 디자인전은 백화점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살려 쇼핑에 대한 습관과 편견 등을 주제로 삼았다. 같은 기간 하노버 시립도서관에서는 고서와 어린이용 도서로 꾸며지는 한국출판 전시가 열리고, '밀양' ' 워낭소리' ' 똥파리' 등 9편의 한국 영화도 상영된다. 김지원기자
속삭임미술관 2008/07/13 23:33 유목민
21세기는 예술이나 문화가 일상이나 생활과 상호관련성이 많은가?
두산아트센터입구. 이 에스더 작품 '아무개 씨(Mr. Thingamabob)'
왜 요즘 사람들은 미술에 관심을 가지는가? 예술과 문화가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요즘은 주식투자보다 미술투자가 더 경제성이 높다고 인식되면서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같은 부자라도 차별성을 보일 수 있는 허영심이 더 해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인간은 돈으로만 만족할 수 없고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면에서 요즘 미술과 미술강좌 등이 인기가 있는 것인가. 미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정신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미국의 최상류부자들은 매일 모여 시와 미술공부를 하고 작가들과 대화를 통해서 삶의 진정한 풍요로움을 맛본다고 하는데 하여간 21세기는 문화시대이고 문화가 경제가 되는 시대 돈벌이가 되는 시대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미술사를 공부하다보면 한 시대를 미술작품을 통해서 조명하게 되는데 모든 미술작품이 한 시대의 정신을 직간접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시대의 사회문화사를 한 눈에 꿰뚫어보는데 이보다 좋은 공부는 없을 것이다.
두산아트센터입구
우리 같이 50년대에 태어나 70년대(그 당시는 대학인구가 고졸자의 10%정도)에 대학을 다니고 자녀가 20대인 세대는 386세대보다는 확실히 식민잔재와 군사독재문화의 흔적과 잔상이 더 많이 남아있다.
다행히 미국히피문화(밥 딜런 Bob Dylan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와 접하면서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일본풍 노래보다는 미국풍 팝송에 더 익숙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였다. 70년대에 탈춤 등 우리 것 찾기가 동시에 이루어졌지만 역시 문화와 역사의 단절이나 공백기는 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세대가 만든 최고의 문화상품은 역시 김민기의 '아침이슬'이다. 그런데 지금 그 자녀들은 이해찬세대, 월드컵세대, 핸드폰세대, 인터넷세대라고 하지만 또한 88만원세대(?)라고도 한다.
이번 촛불시위는 독서세대인 386세대의 자녀들이 시작했는데 그들은 바로 사회구성체를 고민하고 민족의 자주와 민주 그리고 통일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한 최초의 세대다. 그런 면에서 이번 촛불시위는 참으로 흥미롭다.
이번 촛불에서 개인적으로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장면은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인 것도 그렇지만 그런 시위 속에 거리퍼포먼스가 자발적이면서도 창의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가 못지않게 놀라운 상상력을 발동시켰다는 점이다. 하긴 퍼포먼스를 평론가들은 예술가의 상상력에 따라 광대무변한 공간 속을 누비기도 하는 가공할 만한 매체라고 하지 않던가.
특히 임옥상미술연구소에서 아크릴물감으로 작성한 가로 100미터 세로 15미터의 대형현수막을 양쪽으로 확 찢어지는 모습은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와 같은 드라마틱한 광경을 연출하였다. 문화의 반란과 전위의 상징하는 60년대 말 퍼포먼스예술가들이 이미 상징적으로 이런 모습을 보였지만 그런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나다니 놀랍다.
당시 해프닝미술로 일약 스타였던 정강자씨는 한국일보(1968년 10월22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요, 벗을 만한 이유가 있을 때 몽땅 벗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해프닝을 하다 필요하면 작품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요"
 두산아트스쿨(http://www.doosanartcenter.com)에서는 <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이라는 제목으로 미술강좌가 지난 7월9일부터 시작되었다.
첫 강의를 듣는 소감은 전율이 온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70년대에 태어났으니 내가 배울 점이 엄청 많은 세대다. 일제와 독재의 후유증을 덜 체험한 세대로서 경제적 도약기 산업화의 열매로 맛보았기에 더 그런가. 기성세대와 비교가 안 되게 지식과 정보, 문화적 경험의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앞선다. 양적으로도 많고 질적으로도 높다. 거기다 과학적 객관성도 제대로 담보하고 있다.
1980년대가 정치적 민주화 변혁기였다면 1990년대는 정치에서 경제로 더 나아가 문화의 시대로 가는 과도기(문화변동의 시기)였는지 모른다. 그에 따라 문화지도는 달라지고 '해외(자유)유학파'가 수두룩하게 생겼으며 1990년대는 무서운 아이(앙팡 테리블)인 서태지가 나타났고 미술에서는 이불과 이륨과 최정화가 그 천재기(과격한 퍼포먼스)를 조금씩 발아시키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 때 우리나라에선 큐레이터라는 말이 처음 쓰였다고 한다.
임근준의 첫 질문은 '대한민국에 현대미술(모던 아트가 아니라 컨템퍼러리 아트를 뜻함)이 존재하는가?'이다. 다시 말해서 당대성에 기반 한 현대미술이 한국에 존재하는가? 믿기 힘들고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지만 그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임근준의 미술강좌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강의실 열기가 뜨겁다
그는 말한다. 유사(가짜)현대미술이 워낙 많기에 진성(진짜)현대미술과 구별하기 힘들지만 2차 대전 이후 식민통치를 경험한 우리가 전통화를 계승하면서 이것을 그 나름으로 현대화하고 세계화하면서 또한 유화로 대표되는 서양화법을 도입하여 소화시키면서 독자적 추상미술운동을 펼쳤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80년 이후 신구상주의가 대두하고 설치미술 뉴미디어아트를 선보였으며 복합미디어라는 실험을 새롭게 실천하여 현대미술의 흐름을 탄 드문 나라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그는 80년대 가장 한국적이고 자생적인 민중미술이 태동하기는 했으나 김환기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작가가 나오지 못했다는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오윤은 일찍 요절했고 그 밖에도 민중화가가 많았지만 팝아트의 워홀처럼 그런 작가가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철수도 있고 홍성담 등등이 있지만...
하여간 한국에서처럼 추상미술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드문 일이라며 추상미술이 없는 현대미술은 제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다고 말한다. 추상미술이 역시 현대미술의 중요한 미술사조임을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영국 현대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낸 추상미술가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한다. 물론 미국에는 추상표현주의가 있었다.
87 민중항쟁과 88 서울올림픽 그리고 물렁물렁한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은 노태우정권은 많은 분야에서 규제완화를 실시하여 예술가들이 오히려 신나게 활동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89년부터는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미술시장은 활성화되고 국제화되고 세계적 아티스트인 백남준 등이 우리미술의 국제화에 기여했고 92 대전과학엑스포를 통해 우리가 문화적으로 촌티를 조금은 벗어나는 시기를 맞았단다.
김영삼대통령은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것을 감안해 1995년 세계적 예산규모(136억)의 광주비엔날레를 열었으나 그 질과 내용에서는 국제적 수준과 많이 동떨어져 외국작가들이 당황했다는 후담도 있다. 그해 소격동 국제미술관에서는 '데미안 허스트전'이 열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환란이후에 미술계도 위기를 맞았고 당시 외국유학생들이 송금이 끊어져 대거 귀국하면서 홍대가 그들의 놀이터(아지트)가 되었단다. 1997년 일본문화가 개방되었고 1998년 그런 와중에서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미술옥션'이 열렸단다.
임옥상 화백2009.01.13 22:17 | 매니아들 | ooo
http://kr.blog.yahoo.com/shnam50/8878 
 대중미학의 아름다운 수용
화가 임옥상의 붓은 동양화에 모태를 두었다. 부감법이나 준법을 이용하여 사실성과 깊이를 더해 주기고 하며 번짐의 농도와 형태를 이용한 파묵법을 적용하기도 한다. 어떤 재료나 형식을 이용하더라도, 그의 그림 속에는 화가 임옥상만의 독특한 표현방법과 날카로운 주제의식이 살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보여준다. 특히 전쟁과 폭력, 이질적인 문화의 경계속에서 추락해가는 인간들의 자화상, 못 가진 이들의 삶과 고통, 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들춰내는 현실에 대한 실체감 등은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임옥상 화백은 미술이 갖는 고상한 추론에서 벗어나 대중미학의 아름다움을 수용하고 주제를 표현함으로써,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그의 모습이며 끈질긴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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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영전에 / 1990 임옥상 | 그가 주로 그려내는 주제는 거세게 몰아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열강들의 제국주의적인 폭력에 대한 위기의식, 서구적 문화에 오염되는 문화정체성, 노동자, 농민, 빈민들의 암울한 삶과 우리 시대의 기이한 자화상이 녹아들어 있다.
화가 임옥상은 탁월한 선전가이다. 그는 인간에 얽힌 이야기들을 화폭에 담아 여러가지 기호나 구제척인 언어의 형식을 빌어 고발하고 저주한다. 그가 현실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투쟁과 선동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표현 기법이며 혼성적이고 기괴한 필체로 쏟아낸 메시지들은 현실의 문제를 끊어 내려는 항거의 형식이자 금기와 억압을 조롱하는 이 시대 지식인의 저항이다.
임옥상 화백의 작품 특징은 대담한 용기와 자유에서 비롯된 형식의 파괴, 현실을 조롱하는 주제의식, 권력의 황량한 권위의식과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의식은 커다란 자유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으려는 생명력이 살아 있어 눈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느끼게 하는 신묘한 마력을 발산한다.
그는 한국 민중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나고 오묘한 재능을 지닌 작가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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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풍경-들.바람.사람들 / 1990 임옥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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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는 사람 / 1990 임옥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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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는 땅 / 1995 임옥상 |

하나됨을 위하여, 종이부조+아크릴릭,1989
들불Ⅱ / 1979
일출 / 1997 / 아크릴릭
쌀 목욕 / 1999 / 점토+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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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개인전 - 호암갤러리 보리밭 II 유채 296*137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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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개인전 - 흙의소리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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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개인전 - 문예진흥원미술회관 웅덩이 아크릴 194*129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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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개인전 - 문예진흥원미술회관 땅 IV 유채 183*108 1979
- 임옥상 임옥상미술연구소 대표 최근 이슈 보기
- 출생 : 1950년 02월 03일
-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회화학과
- 경력 : (현)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기술연구소 소장(부사장)(2002), 역사와 의식설치미술전(서울대 박물관)(2000), 해양미술제2000-바다 이미지전(세종갤러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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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옥상 임옥상미술연구소 대표 최근 이슈 보기
- 출생 : 1950년 02월 03일
-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회화학과
- 경력 : (현)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기술연구소 소장(부사장)(2002), 역사와 의식설치미술전(서울대 박물관)(2000), 해양미술제2000-바다 이미지전(세종갤러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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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만한 고갱,드가,고호,장 베로으 유명작품속에 LG제품을 넣음으로써 예술과 LG를 접목시킨 획기적이고 신선한 광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