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와 북한
우선 나이가 동갑이거나 한 살 정도 차이다. 또 견제세력이 없는 권력을 한 손에 쥔 독재자들이다. 거기다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겠다는 권력세습 꿍꿍이속까지 비슷하지만 특별히 주목해야 할 건 둘 다 철저한 반미주의자라는 점이다.
그러나 인물 됨됨에서는 엄청 다르다. 김정일은 독재자 아버지 밑에서 평생 어려운 일 한번 안 겪어보고 곱게 자라왔지만,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가다피는 20대 어린 나이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네 번째로 넓은 나라를 뒤엎은 대단한 인물이다.
그는 ‘세바’대학 예비학교 시절인 16세 때 이미 뜻이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정치 동아리를만들어 훗날 군사혁명의 핵심 리더로 삼는다.
결국 이 학교에서는 정치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하지만, 리비아 대학교에서 법학공부를 마친 후 1963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여기서 친 서방파인 리비아 군주 정권을 전복시킬 비밀조직을 결성한다.
드디어 1969년 9월일, 국왕이 신병치료차 그리스에 머물고 있는 동안 가다피는 소수의 육군 장교들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켜 리비아의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다.
그 때 나이 27세, 계급은 육군 대위였다. 가다피는 쿠데타를 성공시킨 정치 군인들이 흔히저지르는 최고 장성계급장을 스스로 제 어깨에 갖다 붙이는 자만함을 보이지 않고 대령에머문다.
과잉 충성꾼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리비아는 오직 국민에 의해 다스려지는 국가”라고 강조하면서 장엄한 직함을 마다했다.
아직도 그는 ‘가다피 대령’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가다피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상의 리비아 최고 실권자다. 또한 그는 금년 2월 초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 53개국 연합회의에서 회장으로 선출될 만큼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강력한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다.
한 때 반미투쟁의 선봉자로 미국과 극한대결까지 불사하며 천지 분간 않고 날뛰던 가다피를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중동의 미친개”라고 부를 만큼 미국과 관계가 악화됐었다.
실제로 미군은 1986년 어느 한 밤중에 가다피 저택을 미사일로 폭격하여 그 자리에 잠자고있던 가다피의 딸을 즉사시킨 적도 있었다.
미국하고 사이가 나빠져서 궁핍하지 않은 나라가 세상엔 없다. 가다피도 미국의 모진 경제제재로 20여 년 이상 고생 고생하다가 2003년 들어서야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동안 미국을 타도하겠다고 핵무기 개발에만 몰두해왔는데 제정신을 차리고 나서 이걸 포기하기로 결심한 거다.지금 서방국가들과 자유롭게 교역하고 있는 리비아는 국민소득8천여 달러로 이젠 살 만한 나라가 됐다.
심지어 가다피는 국방ㆍ외교ㆍ내무ㆍ법무를 제외한 모든 권력조직을 없애고 전부 민간에게 넘기겠다고 호언할 정도가 됐다.사회주의 체제를 신봉하던 그가 이젠 완전히 자본주의시장경제 체제로 바꾸겠다는 확실한 의지의 표명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의 김정일은 어떤가? 가다피처럼 미국과 한 판 붙을 만큼 간도 크지 못한 주제에,막상 미국에 대놓고 쏘지도 못할 대포동인가, 대포집인가 하는 미사일만 만지작거리고 있지 않은가.
북한은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914달러(2004년 기준)밖에 안되는 찢어지게 가난한나라다. 잘 살려면 미국과 장사하는 길 밖엔 없는데 왜,“핵개발 포기할 테니 나 좀 도와달라”고 딱 깨놓고 말 못하고 시간만 질질 끌고 있는지.아, 김정일은 언제 쯤 리비아의 가다피를 닮게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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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정부 '자국 태생 이탈리아인들, 재입국 허용' | |
11/27/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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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에서 추방되었던 수천명의 리비아태생의 이탈리아인들이 최근 30년만에 처음으로 고국 리비아를 방문하는 감격을 누렸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그동안 태어나 성장했던 리비아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월에 리비아의 모아마르 가다피 대령은 과거 리비아에 거주했던 이들 이탈리아인들의 리비아 재입국을 허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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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gaba Mu'ammar Gaddafi Na Kasar Libya |
리비아태생의 7명 이탈리아인들이 30여년만에 처음 고향땅을 방문해 트리폴리에 있는 성 프란시스 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이들 7명의 이탈리아 인들은 리비아의 입국 비자를 발급받고 리비아를 방문해 전에 살았던 곳들을 5일간 방문했습니다.
지난 1970년 모아마르 가다피 대령이 집권하면서 강제 추방된 이들의 모든 재산은 당국에 강제 몰수됐습니다. 가다피대령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한다는 신호의 하나로 지난 10월 과거 리비아에 거주했던 모든 이탈리아인들에게 리비아의 문호를 다시 개방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번 고국 방문단 중의 일원인 지오바나 오르투씨는 리비아에서 강제 출국당한, 2500여명의 가족들을 포함한 이탈리아인 협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오르투 회장은 “이번 리비아 방문은 매우 만족스러웠 다고 말할수 있다면서, 이번 방문단은 협회를 통해 리비아인들과 특별한 접촉을 가질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방문자들이 아니었다고 강조하고 그때문에 리비아인들과의 교감도 컸고 또 매우 가슴벅찬 여행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르투 회장은 협회가 협력을 지원할것이고 쌍무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다피대령이 집권하면서 2만명의 이탈리아 인들이 리비아에서 추방됐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북아프리카지역이 이탈리아의 식민지였 던 시절부터 리비아에 거주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리비아를 떠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오르투 회장은 함께 동행한사람들 모두 전에 살던 곳을 찾기 원했다고 말합니다. 오르투 여사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일원이 국가 개발속에 모습이 많이 변했기 때문에 수도권 외곽에 위치한 집을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전에 살던 집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55세의 지안카를로 콘솔란디 씨는 리비아를 떠났을때 21세였습니다. 이번여행중에 콘솔란디씨는 청년시절, 공부했던 학교를 찾아 교실을 둘러보고, 옛동창들을 만나 앞으로 편지와 그 시절의 사진들을 돌려보기로 약속 했다고 말했습니다. 콘솔란디씨는 이번방문을 매우 흡족해햇습니다. 콘솔란디 씨는 리비아 인들로부터 그렇게 따뜻한 환영을 받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었다면서, 자기처럼 리비아에서 살았던 많은 이탈리아인들도 앞으로 리비아에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합니다. 콘솔란디 씨는 리비아 방문이 옛 우정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믿습니다.
이탈리아와 리비아와의 관계는 지난 1998년 이탈리아가 과거 리비아에 대한 식민통치에 유감을 표명하고 식민지시대 리비아점령으로 초래되었던 많은 피해상에 사과하는 공동성명에 서명한뒤를 이어 크게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리비아와 우호관계를 유지해왔고, 실비오 베르루스코니 총리는 지난 2년동안 리비아를 네차례나 방문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또한 유럽연합이 지난 달 리비아에 대한 제재를 철회하고 무기금수조치를 완화하도록 성공적인 중재노력을 폈습니다.
“내 마차는 이미 영원 속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혼자였고, 천둥 벌거숭이였고, 어렸다.
나는 신이나 다름없는 한 남자, 그리고 하나의 제국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상에서 가장 넓은 땅을 호령했던 여인,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 독을 탄 술, 독이 묻은 부채 등 음모와 견제가 비일비재했던 궁중에서 살아남아 결국 여황의 자리에 오른 그녀의 팔십 평생이 휘황한 문장 안에 담겼다. 절대자의 고독한 내면을 탁월하게 묘사하여 프랑스에서는 판권을 둘러싼 법정소송까지 일어날 정도로 크게 성공했던 작품이다.
샨사는 가장 중국적인 소재와 정서를 프랑스어로 정련하여 보편화시키고, 인간 심층의 욕망을 시적 표현으로 투명하게 드러내며 세계문학을 이끌어 갈 젊은 작가로 떠오른 중국 여성. 글쓰기뿐만 아니라 서예, 그림, 시에서도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자존심 강한 프랑스 예술계를 열광시켰고, 그녀의 천재성은 미래의 문호를 예고하고 있다는 평까지 받고 있다. 탐미적인 중국적 언어와 시적 표현이 아주 빼어난 작품 『측천무후』는 프랑스 2003년 시즌 최대 성공작이며, 치마를 입은 마키아벨리 측천무후가 광활한 중국 제국을 넘나들며 펼치는 한편의 대서사시다.
샨사는 아무 글도 새겨져 있지 않은 측천무후의 비석을 보며, 여성의 입장에서 쓰여진 그녀의 일대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표독스런 여성의 상징으로 알려진 측천무후는, 이제 샨사의 붓 끝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측천무후의 자궁 속 이야기에서부터 죽은 후의 이야기까지, 역사소설의 외양을 바탕으로 한 여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