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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그린페
2008. 12. 14.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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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enardo Bertolucci)
주연 마론 브랜도(Marlon Brando), 마리아 슈나이더(Maria Schneider)
내용:
눈부신 개울 햇살. 앙상한 철교의 아치. 고가 선로 밑 보도에는 사람들이 묵묵히 오가고 있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40대 남자와 20대 여자. 남자는 무뚝뚝한 표정에 슬픔을 씹고 있다. 여자는 도발적인 걸음걸이로 싱싱한 육체를 감추고 있다. 남자의 이름은 폴(말론 브란도 분)이고 여자의 이름은 잔느(마리아 슈나이더 분)다.
세느강 위를 달리는 열차, 교각 아래 한 중년의 신사(폴, Paul: 마론 브란도 분)가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 괴로운 듯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 비명은 기차의 기적 소리에 이내 파묻혀 버린다. 허탈하게 허공을 보고 걸어가는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그 남자 뒤로 걸어오는 젊은 여인(잔느, Jeanne: 마리아 슈나이더 분)은 그의 눈물을 보지만 그냥 지나치고 그 역시 무관심하게 스쳐간다.
영화감독인 약혼자 폴((Tom: 쟝-피에르 러드 분)에게 전화를 걸려고 들어가던 잔느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폴과 다시 마주친다. 얼마후 그 둘은 허름하지만 오래되어 다소 운치가 있는 임대 아파트에서 또 마주친다. 집과 가구를 둘러보는 잔느를 벽에 몰아붙인 채 키스를 퍼붓는 폴. 잔느도 열렬히 응하고 둘은 이름도 모른 채 짐승들처럼 격렬하게 정사를 나눈다.
섹스가 끝난 뒤 둘은 인사도 없이 서로 모르는 남남으로 거리를 나선다. 잔느는 기차역으로 달려가 사랑에 빠진 얼굴로 약혼자에게 안기고 폴은 아내가 자살한 여관방으로 향한다. 장모(Rosa's Mother: 마리아 미치 분)는 폴에게 딸의 자살 이유를 묻지만 폴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분노하며 소리친다. 폴이 알고 있는 것은 아내가 위층에 세들어 사는 마르셀이란 남자에게 자신과 똑같은 파자마, 똑같은 술, 똑같은 육체를 제공하며 살았다는 것 뿐이다.
혼란에 쌓인 그는 허탈해하며 아파트로 돌아간다.
임대아파트에서 다시 만나는 뽈과 잔느. 둘은 당연한듯이 정사를 나눈다. 폴은 자신의 신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잔느에게 소리친다.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싶지 않아! 너는 이름도 없고 나도 이름이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거야."
폴의 고독감에 짓눌린 잔느는 약혼자의 청혼을 받아들이지만 약혼자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인 폴에게 매력을 느끼고 다시 아파트를 찾는다.
그러나 이미 폴은 이사를 가버렸고 잔느는 빈방에서 흐느낀다. 처음, 아파트를 나서면서 남남으로 돌아섯듯이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세느강변을 걷는 잔느. 그녀에게 다가가는 폴. 폴은 도망가려는 잔느를 따라 탱고 페스티발이 열리고 있는 홀로 들어서며 그동안 그렇게도 거부해 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잔느는 대화보다 둘이 정사를 나눌 수 있는 호텔을 원한다.
이들은 탱고 경연장에 간다. 이들은 술을 마신다. 탱고 경연대회에 끼여들어 대회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폴은 잔느를 업고,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는 곳으로 걸어나가 미친듯이 파격적인 춤을 추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엉덩이를 까보이기까지 한다.
젊지 않은 남자와 젊은 여자는 객석에 않는다. 여자는 주인공의 음경을 손으로 주물럭거리다가 정액을 닦아내고 도망간다.
폴의 슬픔과 삶에 대한 분노를 이해할 필요가 없는 잔느는 폴의 파행적 행동에서 도망가고 싶은 뿐이다. 잔느는 폴을 버려둔 채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가기 시작한다. 그 뒤를 쫓아 달리는 폴. 드디어 폴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잔느를 붙잡는다. 비명을 지르며 폴의 손을 뿌리치는 잔느. 잔느는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 아버지의 유품인 권총을 손에 쥔다. 뒤따라 들어온 폴은 잔느에게 다가가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너는 도망갔지만 나는 끝까지 너를 쫓아왔다. 너는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여자는 남자(껴안으려는)를 향하여 잔느는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폴은 비틀거리며 테라스로 나가 난간에 자신이 씹던 껌을 붙이고는 쓰러진다. 폴의 죽음을 보면서 잔느는 미친듯이 중얼거린다. "난 저 사람을 몰라. 저 사람이 날 쫓아왔어. 날 겁탈하려고 했어. 저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야. 난 저 사람이 누군지 몰라.. 누군지 몰라..."….”
어느 45세의 미국인이 파리의 어느 아파트에서 전혀 모르던 어린 여자와 섹스를 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 둘의 갑작스런 성관계는 보는이를 불편하게 말들 만큼 , '불안정된 자세(체위?)'로 관계를 맺는다. 이는 이 후, 그들 의 불행한 종국을 애초부터 가늠짓는 암시를 주게된다.
그 중년 남자는 얼마전 아내가 자살을 해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젊은 여인은 사귀는 젊은 남자가 있지만, 중년 남자의 흡인력-- 이를 테면 오랜 경륜과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데서 오는 신뢰감, 그리고 중년의 통찰력 -- 에 발이 묶여버린다 . 그 둘은 섹스후, 급히 헤어지는데, 그 후 그들의 행보를 카메 라는 이렇게 잡고 있다. 그녀는 도로를 건너고, 그는 도로위의 고가인도를 따라 걷는다. 그리고 그의 머리위로 고가전철이 다닌 다. 즉 그녀의 위에 그가 있고 그의 위엔 사회가 있는것이다.
이후,그 두 남녀는 계속 만남을 유지하고, 그 와중에 그는 젊은 애인과 결혼선언을 하고말지만 그녀는 중년남자의 기억을 져버 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중년이 그녀에게 다정다감하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녀의 이름을 알 고 싶어하지도 않고, 자신의 이름마저 물어보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이름 뿐 아니라 서로의 기본적인 신상을 철저히 베일에 가린 채 그녀의 육체만을 탐한다.
하지만 그녀는 어리다. 그녀 의 남자친구는 그녀의 유년시절을 영상화하려는 젊은 감독이다. 말하자면 그 젊은 애인은 그녀의 모든것을 알고싶어 한다. 중년 남자의 태도와는 상반된 경우인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중년 남자 의 침묵과 무뚝뚝한 매너, 가변적인 성격에 오히려 맘을 빼았기 고 만다.
영화의 끝은 마지막으로 탱고를 친 그 중년과 젊은 여 인이 헤어지게 되는데, 발단은 그녀의 이별선언(!)에서 비롯한다 . 그는 영화의 서두에서와는 달리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함께 다 시 시작할 것을 말하지만,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이름을 묻지만 그녀는 그를 총살(?)하고 만다. 그리곤 이 '헷갈리는' 영화는 끝 난다. 그를 죽인 그녀는 뜨문 뜨문 되내인다. " 난 그를 몰라. 그의 이름도 몰라. 그는 날 강간하려했어..." 중년남자는 여자의 이름도 모른채 죽고 만다.
말론 브랜도가 연기한 것은 폴이라는 남자의 고독이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마져 자살해 기억을 상실하게 된 남자 마론 브란도가 파리에서 한번도 만난 적이 없던 여자를 알게 되고 격렬한 육체 관계를 나누게 된다. 그는 상대의 이름을 알고 싶지도 않고 상대방의 생활에 관해서도 알고 싶지 않다. 오직 이 낮선 여자와의 정기적인 관계만을 원한다. 생물적 본능의 즐거음과 쾌락은 좌절한 삶에서 가장 저조한 시기에 처한 평범한 사람의 최대의 도피처가 된다. 하지만 삶의 공허함은 육체적인 욕망으로만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후반부에 자살한 아내 로자의 시신 앞에서 폴이 약 6분간의 긴 독백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폴은 말한다. 우주진리는 이해할 수 있을지언정 사람의 속마음은 200년을 같이 살아도 모를 거라고…. 도대체 당신이란 사람은 누구냐고.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고….
그 장면은 로자에게 길거리의 여자같이 화장을 했다고 비난하는 걸로 시작해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폴로 끝난다.
부정하고 싶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란 존재의 외로운 숙명과 본원적 고독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미국의 시골에서 태어나 세계 각지를 전전하다 중년의 나이에 파리의 허름한 여관에 힘들게 정착한 폴의 인생과 그가 받은 상처에 가슴이 져며왔다. 폴이 받은 상처는 그를 변화시켰고, 그것은 잔에게로 날아갔다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와 결국은 폴을 쓰러뜨렸다.
폴의 말처럼 인간은 죽음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는 걸까?
폴(말론 브란도)은 아내와 살았으나 그 아내가 생전에 같은 아파트에 자신의 정부를 두고 있었는지도, 왜 자살하게끔 되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에게는 미칠 듯한 울분과 싸늘한 냉소와 허망한 욕정만이 남았다. 잔느(마리아 슈나이더)를 만나 관계를 가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것은 너무도 허망하고 끔찍하리만큼 우울했다. 처음에 잔느는 폴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만, 폴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폴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잔느는 오히려 대화가 아닌 육체적 관계만을 원할 뿐이었다. 잔느는 점점 폴의 절망과 분노,변태적인 행위에서 오히려 도망치고 싶어하고 종국에는 폴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다.
두 사람, 여자와 남자, 혹은 인간들의 모든 관계, 진정한 소통이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관계에서의 완벽한 괴리와 소통의 부재, 오히려 그 관계들이 가져다 주는 죽음과 같은 고독과 끔찍한 허망함들. 마지막에 잔느는 폴을 죽이고 말한다. '나는 그를 몰라..저 사람이 누군지 몰라. 그가 쫓아왔어,,, 나는 그가 누군지 몰라.."
같이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완벽한 공존이라는 것은, 이토록 허무한 것일까.(폴이 아내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 처렴, 혹은 잔느가 폴의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처럼) 과연 나는 당신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 것인가. 알고 있다고 같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만 적막한 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나는 당신이라는 존재가 아닌, 그 환영들을 사랑하고 공유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출처 : 알로愛레몬(쌩얼! 쌩피부! 천연 촉진제!)
글쓴이 : 좋은현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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