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월드컵유치시도


작년 12월 19일 밤 영국의 BBC 방송이 정규방송을 갑자기 중단하고 긴급특보를 내보냈 다. 지방을 방문 중이던 토니 블레어 총리가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해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 (WMD)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이다. 워싱턴에서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 견을 열어 리비아의 WMD 포기 선언을 확인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에 중대한 진전이 이뤄 졌다"고 평가했다.
같은 시각 트리폴리에서는 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 대령이 "WMD와 모든 종류 의 테러리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지구를 건설하는데 리비아가 앞장서기로 했다"는 내용의 성 명을 발표했다. 반미주의의 선봉에 섰던 리비아가 친미, 친서방노선으로 방향을 선회한 극적 인 순간이었다.
리비아의 이런 대변신은 카다피 대령의 파격적인 결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카다피는 35 년 가까운 집권기간 내내 전세계의 반체제단체와 테러단체를 후원해 미국에 의해 `악의 화 신'으로 지목돼 왔다. 이런 그가 자발적으로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하고 이란, 북 한 등에 대해서도 핵무기를 포기하고 국제무대로 복귀하라고 충고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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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극적인 변신의 배후에는 인구 550만의 사막국가인 리비아가 더 이상 국제적 고립을 감내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69년 27세의 나이로 쿠데타 를 일으켜 왕정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한 카다피는 사회주의와 이슬람 원리주의를 혼합 한 독특한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만들었다.
`자본가의 착취 없는 완벽한 평등사회', `종교와 세속생활이 일치된 이상국가'를 만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경제는 날로 피폐해지고 인민의 생활은 악화됐다. 미국과 유엔의 경제 제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내하기 어려운 압박으로 작용했고 민심이반을 우려한 카다피는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리비아의 WMD 포기 선언은 외부세계에서는 대단한 파격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리비아로 서는 수년에 걸친 피나는 외교노력 끝에 거둔 결실이었다. 서방 외교 소식통들은 6년전인 1998년 카다피가 로커비 폭파사건 용의자 2명을 서방에 인도한 순간 이미 변화가 시작된 것 으로 보고 있다.
이때를 전후해 카다피는 아프리카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기 시작했으며, 필리핀과 알제리에서 이슬람 테러세력에 붙잡혔던 서방 인질들을 석방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오히려 미국이 `의혹 의 눈길'을 보내며 외면했다.
리비아의 국제무대 복귀가 본격화하는 계기는 로커비 사건 배상 협상이 타결되면서 마련 됐다. 리비아는 1988년 영국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폭파된 팬암기 희생자 270명의 유 족들에게 27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주기로 하고 작년 8월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 합의문은 리비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가구당 400만달러를 먼 저 지급하되 미국의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400만달러를, 그리고 테리지원국 명단에서 리비아 의 이름이 빠지면 200만달러를 추가로 지급한다는 조건이 달려있었다.
압델 라흐만 샬감 리비아 외무장관은 합의문 서명 후 "우리의 국익을 감안해 용기있고 슬 기로운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국제무대에 복귀하려고 이례적으로 테러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했음을 확인한 것이다. 영.미 정보기관들은 이때부터 리비아 정보기관과 비밀 대 화채널을 열어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의를 시작했고 이는 WMD 포기 선언으로 이어졌다.
유엔은 로커비 사건 배상합의 직후 경제제재를 해제했지만 미국은 WMD 프로그램이 완 전히 해체돼야 한다며 지난 1월 리비아에 대한 제재를 다시 1년간 연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 해제도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리비아가 원자로와 화학무기 공장 등을 공 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핵무기 설계도는 물론 원심분리기 등 핵심부품을 미국으로 선적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콧 매클렐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최근 리비아의 핵 개발 관련 문서와 장비가 미국에 도 착했음을 확인하면서 "이번 작업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리비아와의 합의가 진정한 진전을 보 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WMD에 대한 해체와 검증 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연내에 미국이 제재 해제를 공식 발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개혁의 기수로 떠오른 가넴 총리
카다피의 결심에는 개혁의 기수로 떠오른 슈크리 가넴 총리의 끈질긴 설득이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부총장으로 일하다 통상장관으로 발탁된 뒤 지난해 총리에 기용된 가넴은 미국에서 수학한 경제학자로 국영기업 민영화,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 자유경쟁체제 도입 등 `획기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최근 서방 언론과 회견에서 "경제회생을 위해 핵무기도 이념도 버려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철저한 실용주의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가넴 총리에 따르면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리비아를 떠날 때 석유수출국기구(OPEC) 7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리비아의 유전을 개발, 관리하고 운영할 기술도 함께 떠나갔다. 1970년대 하루 300만배럴에 달했던 리비아의 석유생산이 현재 하루 140만배럴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은 투자부족, 기술부족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가넴 총리는 세계 석유 메이저들의 리비아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리비아의 광대한 미개발 유전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미국 석유업계도 가넴 총리를 적극 지 지하고 있다.
코노코필립스, 마라톤오일, 아메라다헤스코퍼레이션 등 미국 유수의 석유회사들은 20년 가 까운 제재에도 리비아 유전에 대한 지분을 포기하지 않은 채 리비아 복귀를 기다려 왔다. 리비아에서 하루 100만배럴의 석유를 생산했던 미국 석유회사들은 부시 행정부가 제재를 해 제하면 3~4개월 이내에 장비를 복구하고 시추를 재개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한 석유 전문가가 경제개혁의 사령탑을 맡은 가운데 석유업계 출신들로 가 득 찬 미국의 부시 행정부에서 리비아의 국제무대 복귀가 이뤄지는 것도 주목해야할 대목이 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WTO 가입, 월드컵 유치 시도하는 리비아
리비아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오는 2010년 열리는 아프리카 월드컵 유치를 위해 서도 총력전을 펼치는 등 국제무대 완전 복귀를 위한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가넴 총리는 리비아가 아프리카 시장과 유럽시장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WTO 가입이 이뤄지면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중간기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리비아 국민은 떠나간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돌아오고 WTO가입과 월드컵유치가 이뤄지 면 `제2의 부흥기'가 도래할 것이란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카다피도 수십억달러를 투자할 용 의가 있다며 월드컵 유치전에 지원을 아까지 않고 있다.
유엔과 미국의 경제봉쇄 해제로 경제회생의 불씨를 살린 뒤 이를 월드컵 특수와 접목시켜 폭발적인 성장을 달성한다는 것이 리비아의 계획이다. 이집트가 먼저 국제축구연맹(FIFA)에 유치 신청서를 내는 등 기선을 잡았지만 리비아도 양보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장 건설 등 월드컵 유치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할 여력이 있는 나라는 산유국인 리비아 뿐으로 `테러 지원국'이란 딱지만 떨어지면 리비아.튀니지연합이 가장 유리한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 고 있다.
경제개혁 다음은 정치개혁
서방 언론들은 리비아가 맞게 될 가장 큰 도전은 경제개혁이 가속화하면서 제기될 정치개 혁 요구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카다피는 1977년 선거로 뽑은 인민위원회가 국가를 운영 하는 직접민주주의체제를 구축했다. 카다피 자신은 공식 직책도 없이 `혁명의 수호자'란 호 칭 아래 초국가적인 권능을 행사해 왔다.
인민위원회는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카다피 자신과 핵심 측근들이 국정을 좌우하는 리비아 특유의 국가사회주의체제가 유지돼 왔다. 왕정을 붕괴시킨 카다피가 왕정보다도 더 혹독한 1인독재체제를 구축했다는 비판이 뒤따랐지만 카다피는 반기를 든 정치인들을 모두 투옥하 는 등 제거해 버렸다.
하지만 이런 정치체제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서방 언론들은 카다피가 최근 일부 정치범들을 사면한 가운데 대통령직과 유사한 국가수반의 직위를 창설할 움직임을 보 이고 있다고 전했다.
카다피가 대통령직을 신설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카다 피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셰이크 알 이슬람은 서방과 관계개선 이후 제기될 인권문제에 대처 하기 위해 `카다피 재단'을 운영하면서 리비아의 인권기록 세탁에 나서는 등 국제무대 복귀 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리비아 특수가 한국 기업의 발검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창섭 런던 특파원 | l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