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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화-구석고
그린페
2008. 11. 8. 22:37
독특한 화풍의 문인화가 죽전(竹田) 구석고 화백
[데일리안 경기 강영한 기자]
죽전(竹田) 구석고(具石高) 화백(인천시 서구 심곡동. 중경 공상대학 명예교수), 그를 두고 사람들은 기인(奇人)이라 한다.
구 화백은 모든 작품을 남들이 쓰지 않는 닭털과 공작털 붓으로 그린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대형 깃털 붓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상상을 초월한 크기의 용(龍)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를 여러 차례 한 적이 있다.
그때 많은 이들이 놀라는 모습이 매스컴에 보도가 되면서 붙여진 별명이 기인(奇人)이다. 또한 구석고 화백은 문인화가다. 문인화(文人畵)란 전문적인 화가가 아닌 시인, 학자 등 사대부 층 사람들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으로 처음에는 특정한 양식을 갖지 않았으나 ‘원말 4대가’의 출현으로 산수화 양식의 전형이 완성되었다. 이를 남종화(南宗畵) 또는 남화(南畵)라고 하며 문인화 특유의 양식이 정착 되었다.
남종화는 사의적(寫意的) 표현 즉 사물을 그리는데 있어 사실적(事實的) 표현이 아닌, 사물의 뜻을 작가의 심상(心想)에 담아 간략히 그리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일필휘지(一筆揮之)하듯 일회성(一回性)의 표현방법으로 그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인화는 주로 많은 사대부(士大夫) 등 선비들이 취미로 각자의 주관대로 관념(觀念)의 세계를 양식에 구애됨 없이 그렸던 것이다.
구 화백의 다양한 작품 소재는 수많은 시행착오로 정신적인 갈등도 있었음이 짐작된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갈등과 역경을 이겨내고 자연의 숭고함과 자연과 더불어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며 작품의 소재를 찾는다. 그는 자연의 본성에 다가가는 순간의 변이를 화폭에 채우며 서로 어울리며 영위해 간다.
그의 작품에서 보는 단적인 예로 용, 학, 잉어 등을 대상으로 과감한 생략에서 오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본질적 형상과는 다른 실험성이 돋보이면서도 특유의 여유와 정화감에 그 아름다운 울림이 큰 작품으로 표현 된다.
더구나 구 화백이 주로 사용하는 깃털 붓은 일반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붓과 같이 먹을 많이, 그리고 오래 머금고 있지를 못하고 터치가 거칠어 화가의 마음대로 다루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깃털 붓을 사용하는 사람이 극히 제한적이다. 깃털이 주는 거친 터치에다 붓이 머금은 먹의 양이 적어 빠르고 순간적으로 그려내야 하는 화법은 처음에 그를 무던히도 괴롭혔다고 한다.
한때는 각종 공모전에도 열정적으로 출품,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최다 입상을 이뤄내기도 하면서 수많은 작품도 탄생시켰고, 자신과 다른 화풍의 화단(畵壇)과 욕심껏 겨뤄보기도 했으나 자기와 다른 생각과 예술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도 인정 하는 법을 배우고, 겨룸 자체가 부질없음을 깨닫고 공모전 출품은 자제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의 끊임없는 작품 활동은 그에게는 청량제이며 세상의 방해 없이 온전히 몰두 할 수 있는 득도(得道)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는 그 순간의 기쁨 보다는 완성을 하기 위한 준비, 그 과정에서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의 해 맑은 표정을 바라보며 다양한 창작 욕구를 농축시키고 창작의 의미를 부여받고 문인화 풍의 정신세계를 계속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연구에 따른 변모와 또 다른 변화를 기대해 본다.
또한 최근의 그는 장애아동 및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에 자신의 작품을 기증하여 돕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이와 같은 자선 행사와 미국과 일본 및 유럽 등지의 초대전 준비로 바쁘다. 외국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정치가들에게 교포사회를 통해, 그의 작품이 한. 두 점씩 선물로 전해졌던 것이 그의 작품에 매료된 인사로부터 초대를 받아 전시회와 퍼포먼스를 가질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도 해외 활동에 주로 치중할 예정이라고 전한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며, 이는 국제 경쟁력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세계의 미술 시장에 나아감에 있어 차별성에서 가장 韓國的(한국적)인 것은 곧 문인화이기 때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데일리안 경기 강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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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전 구석고 화백 |
구 화백은 모든 작품을 남들이 쓰지 않는 닭털과 공작털 붓으로 그린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대형 깃털 붓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상상을 초월한 크기의 용(龍)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를 여러 차례 한 적이 있다.
그때 많은 이들이 놀라는 모습이 매스컴에 보도가 되면서 붙여진 별명이 기인(奇人)이다. 또한 구석고 화백은 문인화가다. 문인화(文人畵)란 전문적인 화가가 아닌 시인, 학자 등 사대부 층 사람들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으로 처음에는 특정한 양식을 갖지 않았으나 ‘원말 4대가’의 출현으로 산수화 양식의 전형이 완성되었다. 이를 남종화(南宗畵) 또는 남화(南畵)라고 하며 문인화 특유의 양식이 정착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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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화백의 다양한 작품 소재는 수많은 시행착오로 정신적인 갈등도 있었음이 짐작된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갈등과 역경을 이겨내고 자연의 숭고함과 자연과 더불어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며 작품의 소재를 찾는다. 그는 자연의 본성에 다가가는 순간의 변이를 화폭에 채우며 서로 어울리며 영위해 간다.
그의 작품에서 보는 단적인 예로 용, 학, 잉어 등을 대상으로 과감한 생략에서 오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본질적 형상과는 다른 실험성이 돋보이면서도 특유의 여유와 정화감에 그 아름다운 울림이 큰 작품으로 표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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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각종 공모전에도 열정적으로 출품,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최다 입상을 이뤄내기도 하면서 수많은 작품도 탄생시켰고, 자신과 다른 화풍의 화단(畵壇)과 욕심껏 겨뤄보기도 했으나 자기와 다른 생각과 예술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도 인정 하는 법을 배우고, 겨룸 자체가 부질없음을 깨닫고 공모전 출품은 자제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의 끊임없는 작품 활동은 그에게는 청량제이며 세상의 방해 없이 온전히 몰두 할 수 있는 득도(得道)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는 그 순간의 기쁨 보다는 완성을 하기 위한 준비, 그 과정에서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의 해 맑은 표정을 바라보며 다양한 창작 욕구를 농축시키고 창작의 의미를 부여받고 문인화 풍의 정신세계를 계속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연구에 따른 변모와 또 다른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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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최근의 그는 장애아동 및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에 자신의 작품을 기증하여 돕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이와 같은 자선 행사와 미국과 일본 및 유럽 등지의 초대전 준비로 바쁘다. 외국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정치가들에게 교포사회를 통해, 그의 작품이 한. 두 점씩 선물로 전해졌던 것이 그의 작품에 매료된 인사로부터 초대를 받아 전시회와 퍼포먼스를 가질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도 해외 활동에 주로 치중할 예정이라고 전한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며, 이는 국제 경쟁력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세계의 미술 시장에 나아감에 있어 차별성에서 가장 韓國的(한국적)인 것은 곧 문인화이기 때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데일리안 경기 강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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