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1일 방한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국산 골프채를 선물로 받았다. 풀 세트 한 개와 별도의 드라이버 한 개였다. 골프 애호가로 알려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국내에 머무는 동안 개인적인 골프 라운드 약속을 잡았다는 소식을 이 대통령이 전해 들은 게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의 선물 증정 뜻에 따라 코오롱 엘로드와 이투골프, 엠에프에스코리아는 급히 골프채 제작에 착수했다. 코오롱 엘로드는 드라이버와 아이언세트 등 풀 세트를 맡았고, 이투골프와 엠에프에스코리아는 드라이버를 별도로 같이 제작했다. 코오롱 엘로드는 GX470드라이버에 GX3000N 아이언, GX F10 페어웨이 우드로 풀 세트를 구성했고, 70세 노령의 카자흐스탄 대통령에 맞춰 가볍고 반발력이 좋게 만들었다고 한다.
골프 백에는 태극기와 카자흐스탄 국기를 나란히 자수로 박아 넣었다. 이투골프도 최고급 티타늄 소재인 ‘New TVC 베타 티타늄’을 사용해 드라이버 헤드를 제작했고, 엠에프에스는 방향성과 힘 전달에 좋은 16각형 TPHD 샤프트를 사용했다. 코오롱 엘로드 그대로 애초에 355만원으로 책정된 단가가 너무 비싸다는 외교통상부의 요청에 따라 298만원에 해당 골프채를 납품했다.
‘품질 보증수표’ 치열한 납품 경쟁
‘현대판 진상품’인 청와대 납품을 둘러싼 업체들의 경쟁이 뜨겁다. 진상(進上)이란 지방관이 자신의 관할 구역에서 생산되는 토산물을 임금에게 상납하던 제도다. 그런데 삼국시대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제도가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로 납품되는 물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의 진상제도가 일반 백성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일종의 조세 개념이었다면, 오늘날의 ‘청와대 납품’은 하늘에서 내려온 금동아줄마냥 납품업체의 제품 홍보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금동아줄을 잡기 위한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온라인상에는 청와대 납품을 의뢰하는 문의 글이 올라오기도 하고, 지인 혹은 연줄을 통해 해당 물품을 청와대로 입성시킨 사례가 발견되기도 한다. 보안상의 이유로 청와대 측에서 정확한 자료를 공개하진 않지만 귀빈 접대용 쿠키에서부터 떡, 자전거, 식기, 골프채 등 물품과 오죽(烏竹) 등 나무까지 품목도 다양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떡, 김윤옥 여사의 쿠키
이명박 대통령의 유별난 떡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청와대에서의 간단한 아침식사는 떡으로 차려질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설 선물에도 떡이 빠지지 않는다. 이토록 떡에 대한 애착이 특별한 이 대통령을 위해 청와대로 납품된 떡은 어떤 떡일까.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소재한 ‘떡마당’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1주년 기념 떡을 청와대로 납품했다. 주성용 대표는 “이 대통령이 집사로 있었던 소망교회에 떡을 납품해왔던 것이 이번 납품과 연관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선 1주년 기념 떡 외에도 청와대 구내식당과 감사원으로 두 달에 한 번 정도 지속적인 납품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납품한 떡은 총 네 가지. 새털구름 모양의 물결무늬가 찍힌 구름떡, 흑임자 가루가 깨알같이 박힌 흑임자 인절미, 단호박과 찹쌀을 버무린 단호박떡, 싱싱한 쑥을 그대로 넣어 만든 쑥떡이 그것이다. 특히 구름떡은 찹쌀 인절미와 밤, 잣, 땅콩, 호두, 대추를 떡메 치듯 버무려 만든 떡마당 특유의 떡이라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떡 사랑이 극진하다면 부인 김윤옥 여사는 소보로빵, 단팥빵 등 빵을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윤옥 여사는 지난 4월 21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 강동구 고덕동 소재의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을 방문했다. 해당 복지관 장애인 직업 재활시설에서의 제빵제과 체험을 위해서다. 당시 김 여사는 아몬드 쿠키 모양을 내는 작업에 참여했는데 일정이 촉박하여 직접 만든 쿠키를 맛보지도 못한 채 복지관을 떠나야 했다.
담당 직원이 아쉬운 마음에 “청와대로 배달해 드리겠다”고 스치듯 말한 것이 인연이 돼 이후로도 7차례 정도 납품하게 됐다고 한다. 납품된 쿠키는 아몬드 쿠키 외에도 호두파이, 마들렌, 만주, 초코후리앙 등 다섯 종류다. 단가는 300~700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한 편. 청와대 측에서는 귀빈 접대용 혹은 연회용으로 2만원짜리 선물 세트를 주기적으로 주문했다고 한다.
실제 지난 4월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통신사 초청행사에서 파키스탄 통신사의 모하메드 리아즈 사장이 복지관에서 납품한 호두파이를 한입 베어 먹고는 갑자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당 제품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1층에서 파니스(Panis)라는 브랜드로 만나볼 수 있다.

대통령 부인 취향 따라 식기 변천
1973년 제3공화국 시절, 육영수 여사가 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을 불렀다. 청와대에서 일제 식기가 사용되는 것에 놀란 육 여사가 국빈들에게도 자신 있게 내놓을 고품질의 도자기 생산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한국도자기는 2년에 걸쳐 순수 국내 기술로 본차이나 도자기 개발에 성공했고, 이때부터 한국도자기와 청와대의 인연이 시작됐다.
한국도자기 측에 따르면 청와대에 납품되는 식기는 전적으로 대통령 부인의 취향에 달려있다고 한다. 육영수 여사의 경우 역대 대통령 부인 중 가장 소박하고 서민적인 디자인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무인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의 취향을 반영한 군대 식판 모양의 사각접시와 완두콩 콩깍지를 본뜬 이색 안주접시가 인상적이다. 반면 이순자 여사는 화사한 디자인을 선호했다고 한다. 이 여사가 선명한 철쭉 무늬를 담은 사진을 직접 회사로 보내와 이를 그릇 디자인에 반영하기도 했다. 김옥숙 여사는 매사에 이순자 여사와의 차별화를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역대 대통령 부인 중 그릇에 가장 많은 관심을 쏟았으며, 청와대로 회사 관계자를 직접 불러 원하는 무늬가 나올 때까지 확인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그의 주문으로 첫 번째 디자인한 그릇이 1년 만에 다시 교체된 이후 귀족풍의 초록색 디자인이 새롭게 채택됐는데, 노태우 대통령의 굵은 손가락을 감안해 커피잔 손잡이가 약간 크게 만들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해당 디자인은 김영삼 대통령을 거쳐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거창사과·강진청자·강릉오죽…
지난 4월 경남 거창에서는 사과를 청와대로 납품했다. 각종 농산품들이 청와대로 납품되는 것은 흔한 일이기에 이 같은 일이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 실제 청와대는 시·도별로 전국 8개 지역의 쌀을 돌아가며 매년 10톤가량 납품받고 있으며, 사과, 배, 감 등의 농산품도 지역별로 골고루 납품 받고 있다.
이번에 납품된 사과의 경우는 경남 거창군 고제면 신홍범(46)씨가 재배한 것이다. 신씨의 사과는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한 탑푸르트 사과부문에서 2007년, 2008년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할 만큼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주로 청와대 구내식당의 후식용으로 납품된 이 사과는 한 번에 열댓 상자씩 수차례 납품됐다.
전남 강진에서는 천년 비색의 고려청자를 청와대 식탁에 올렸다. 지난 1월 청와대의 특별 주문으로 막걸리용 청자주병(술병) 10점과 술잔 50점을 특별 제작했다. 납품된 술병은 높이 24~26㎝로 1L와 1.5L 2종이며 시가 7만~8만원 선. 술병 겉면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신년화두로 밝힌 ‘시화연풍(時和年豊)’을 써넣었고, 속에는 농악무(舞)를 양각으로 표현했다. 술잔은 상감기법으로 구름과 학 무늬를 조각했으며, 하단에 ‘강진관요’라는 낙관을 새겼다.
강원 강릉의 대표적 특산품인 오죽(烏竹)도 지난해 청와대의 정원수로 식재됐다. 오죽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며 율곡 이이가 태어난 강릉 오죽헌의 대표 식물이다. 청와대에 납품된 오죽은 높이 60~70㎝의 크기로 한 그루에 5000원 선. 총 2100그루가 청와대 마당에 심어졌다.
이 외에도 충남 홍성에서 생산된 쌀국수가 청와대로 납품돼 각종 행사의 주요 메뉴로 제공된 바 있으며, 경북 청도의 감말랭이와 반건시도 귀빈 접대용, 선물용으로 청와대 측에서 지속적인 납품 의사를 밝혔다. 경북 포항의 겨울철 특산물인 과메기는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과메기 파티’를 연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년 대비 매출액이 45% 상승하는 등 ‘이명박 대통령 특수’를 톡톡히 보기도 했다. 또 경남 창원 소재의 삼현자전거에서 제작한 전기자전거는 2008년 6월 청와대 경호실의 요청으로 6대가 납품됐다. 해당 자전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6대가 납품돼 청와대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납품비리에 목록 공개 목소리도
한편 지난 2009년 말에는 치열한 납품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전 청와대 행정관의 수뢰 의혹이 제기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올 4월에는 50대 현직 경찰관이 청와대, 검찰 고위층 등과 친분이 있는 것처럼 행세한 무속인에게 속아 4억8000여만원의 청와대 식자재 사기 피해를 당한 뒤 목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주요 물품 구매 목적과 내역을 상세하게 공개하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가 쓸데없는 물품을 구입했다는 구설에서 자유로워질 뿐만 아니라 납품업체들 간의 건전한 경쟁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백악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옷, 미셸 오바마 대통령 부인의 유기농 식단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으며, 과거 닉슨 대통령은 무명의 자국 와인을 역사적 만찬에 등장시켜 세계적 명품으로 키워낸 바 있다.
/ 박영철 차장 ycpark@chosun.com
이진영 인턴기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