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심사위원들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게릿 글래너 제공
임동혁을 비롯해 한국에 재주 있고 좋은 음악인이 많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손민수는 무척이나 연주 완성도가 높았다. 그가 상위 라운드에 오르지 못했을 때, 많은 심사위원들이 가슴 아파했다. 김성훈 역시 곡목 선택이 다소 한쪽으로 기울기는 했지만 바흐 해석은 무척이나 훌륭했다. 이정은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가운데 스카르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콩쿠르 주최측이나 러시아 정부에서는 이번 대회 피아노 부문에서 1위 수상자를 발표하기를 희망했다. 사실상 ‘콩쿠르의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는 물론이고, 음악에 대한 폭넓은 이해, 자신만의 개성 있는 피아노 연주와 음악, 예술성과 앞으로 발전 가능성까지 함께 봤다. 작은 실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미래를 바라볼 때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그릇이 얼마나 크고 잘 빚어져 있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대회의 역사와 권위에 걸맞을 만큼,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는 피아니스트는 없었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심사위원장 니콜라이 페트로프는 “1위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없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젊은 참가자들의 연주를 듣다가 아쉬운 점도 발견했다. 테크닉 면에서 너무나 빼어난 연주가 많았고 화려함을 즐겼지만, 상대적으로 곡 이해가 떨어지거나 개성이 뚜렷하지 못한 대목도 적지 않았다. 토막토막 부분적으로는 처리를 잘했지만, 전체적인 곡 흐름을 깨닫는 연주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심사위원 가운데 79세의 명 피아니스트인 게리 그래프먼은 오른손에 생긴 ‘근육 긴장성 장애(dystonia)’로 20여 년째 왼손밖에 쓰지 못한다. 하지만 한 손으로도 대회 기간 내내 연습을 거르지 않았고 “오늘은 왼손을 위한 새 곡을 익혔다”며 자랑했다. 또 다른 심사위원인 안드레이 야신스키(폴란드)와 여든에 가까운 세케이라 코스타(포르투갈) 역시 아침과 저녁마다 참가자들의 연주를 들으면서도 점심에는 틈을 내서 연습을 빼놓지 않았다.
음악 앞에서 한 없이 겸손한 동료들의 정진은 큰 자극과 가르침이 됐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잘 알려져 있는 곡’ ‘효과를 내기 쉬운 곡’ ‘자신 있는 곡’에만 빠져있는 건, 음악가로서 ‘죽음’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