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불광동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예비 부부인 길홍덕(32)·이미경(29)씨는 하객들을 위해
특별한 답례품을 준비했다. ‘허브 화분’이다. 모든 하객에게 주는 것은 아니다.
대중교통을 타고 오는 사람들에게만 주기로 했다.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줄이는 데 동참하자는 뜻이다.
청첩장도 특이하다. 냉방 때문에 들어가는 전력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정장 대신 편한 복장으로 오십시오”라는 안내문을 별도로 넣었다.
이씨는 화려한 웨딩드레스 대신 간편한 원피스를 입기로 했다. 드레스를 고르는 데 드는 시간을 양재동 꽃시장에 직접 들러 화분을 고르는 데 썼다. 개당 1000원짜리 로즈메리·그린로즈 화분 200개를 손수 골랐다. 길씨는 “다른 기념품과 달리 허브는 식물이라 직접 보고 골라야 하기에 번거로웠다”면서도 “부케도 허브 화분을 쓸 생각”이라며 웃었다. 뷔페에서 남는 음식물을 싸 갈 수 있게 봉투도 준비해 놓을 예정이다.
결혼식 때 발생하는 CO2를 줄이자는 ‘그린웨딩’이 새로운 결혼문화로 등장했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부부의 첫발을 딛는 결혼식 때부터 실천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린웨딩은 시작 단계=5월 11일 결혼한 김근배(37)·배명덕(32) 부부는 국내 ‘그린웨딩’ 1호다. 결혼컨설팅업체 ‘코아뷰’와 ‘생명의 숲’이 함께 기획했다. 숲해설가협회에 다니는 김씨는 협회 고문의 권유로 그린웨딩을 하게 됐다.
김씨는 “대중교통을 타고 오라고 청첩장에 써 놓고 하객들이 불편해 안 올까 봐 걱정도 했다”며 “대중교통으로 왔다고 자랑하는 분도 있어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자가용을 타고 온 사람들은 오히려 미안해하더라”며 웃었다.
식물 거래업체에 다니는 길씨도 생명의 숲에서 자원봉사를 한 게 인연이 돼 그린웨딩을 하게 됐다. 길씨는
결혼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나오는 CO2를 줄인다는 의미에서 축의금의 1%는 숲 조성 기금으로 ‘생명의 숲’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린웨딩은 아직 숲 조성 기금을 기부하고 하객들에게 대중교통을 권유하는 걸음마 단계다. 윤장원(31)·양은경(30)씨 커플과 서지민(31)·박민자(30)씨 커플도 5일 그린웨딩을 할 예정이다.
선우영 도시숲팀장은 “결혼식 과정을 통한 CO2 배출량의 3분의 2가 자동차 때문”이라며 “웨딩카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카페(cafe.naver.com/lovegreen)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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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 1%를 숲 조성 기금으로 내놓은 김근배·배명덕 부부는 국내 ‘그린웨딩’ 1호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도 친환경운동 동참에 서명하고 있다. [생명의 숲 국민운동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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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국에선 인기=그린웨딩이 활성화된 미국·영국에서는 예복·부케·파티 음식에서 신혼여행까지 친환경적으로 하는 부부가 많다. 미국 결혼정보 사이트인 ‘Brides.com’은 미국 내 예비 신랑·신부의 33%가 친환경 결혼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그린웨딩포럼’에는 등록 회원 수가 9114명에 이른다 미국의 그린웨딩 부부들은
하객이 자전거를 타고 오도록 유도하거나 직접 키운 작물을 요리해 파티 음식으로 내놓기도 한다. 사치스러운 웨딩드레스 대신 재활용 드레스를 입고 부케도 뜰에서 키운 꽃으로 만든다.
◇결혼식 때 나오는 CO2=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살림을 차리는 데는 3t(3138㎏)이 넘는 CO2가 배출된다(에너지관리공단 분석). 두 사람이 일 년간 배출하는 CO2 양의 15%를 일주일 만에 쏟아 내는 셈이다. 결혼식 때는 하객들의 승용차가 가장 많은 CO2를 배출한다. 승용차를 몰고 오는 하객이 300명이면 전체 결혼식 CO2 배출량의 67%(2.1t)를 배출한다는 분석이다. 길씨는 “그린웨딩을 준비하는 게 번거롭지만 환경을 위한다면 누군가가 먼저 나서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옥수수로 웨딩드레스를 만들 수 있을까? 서울 논현동 T스페이스에서 10월 8일까지 열리는 ‘대지를 위한 바느질’전에서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이색 웨딩드레스를 감상할 수 있다.환경 친화적 의상을 디자인하며 녹색결혼식 운동을 펼치는 그린디자이너 이경재(27) 씨를 났다.
국민대 디자인대학원에서 그린디자인을 전공한 이경재 씨가 만든 이 드레스들은, 땅에 묻으면 5주 내로 분해되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었다. 1회성 의복이면서도 과소비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어온 웨딩드레스 원단을, 환경 친화적 재료로 대체한 발상이 독특하다.
은은한 진주빛 광택이 감도는 원단은 비단이라 해도 속을만큼 부드럽다.
원료가 옥수수라고는 하지만, 부드러운 촉감이나 은은한 백색 광택은 비단과 흡사하다. 하지만 이경재 씨도 처음부터 이런 원단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환경 친화적 재료를 찾아보다가, 2005년 가을쯤 생분해성 비닐 원단을 접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런 의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본 게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생분해성 비닐이었어요. 땅에 묻으면 5주 이내에 다 분해되거든요. 1회용 옷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처음엔 우비를 만들었어요. 그러다 똑같은 1회용이면서도 과소비의 상징이 된 웨딩드레스 원단으로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죠.”
웨딩드레스 재료인 옥수수가 한 무더기를 이뤘다. 장식된 흰 천 역시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것.
치렁치렁 늘어지는 드레스 대신, 활동성을 강조한 깜찍한 디자인을 살렸다. 드레스는 비닐 재질에 가까운 얇은 원단으로 제작하고, 모자는 비단과 흡사한 재질을 사용해 고급스러움을 살렸다.
광택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망사를 연상시키는 생분해성 비닐 재질의 원단을 매치시켰다.
처음에는 1회용 용기를 만드는 생분해성 비닐 원단을 구해다 옷을 만들었다. 그러나 역시 소재의 한계가 있었다. 방수 기능이 있어 우비로는 적합했지만, 촉감이나 통풍성이 천보다 못해 웨딩드레스로 입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재료의 한계 때문에 고민하던 이경재 씨는 2005년 말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에코프로덕트’ 행사에서 옥수수 전분으로 원단을 만드는 도래이 사를 알게 됐다. 원단 실물은 보지 못했지만, 실을 만드는 필라멘트가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시 친환경 드레스를 만들고 싶다는 취지를 설명하고 샘플을 요청했다.
한국에 돌아와 받아본 원단은 기대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부드러운 촉감, 은은한 광택은 웨딩드레스를 만들기에 꼭 맞는 재료였다. 바로 원단을 공수해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옥수수 원단 외에 모시, 명주 등 천연 직물을 함께 사용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예식이 끝난 후 장식을 떼고 명주 재킷을 걸치면, 피로연복으로 입을 수 있게 디자인했다. 옥수수 원단 외에 천연 직물을 함께 사용해 장식성을 살렸다. 재킷은 천연 소재인 명주에 황백 염색을 했고, 모시 옷고름은 쪽과 황백으로 염색했다.
디자인 면에서도 과다한 장식과 부피를 줄여 간소한 결혼식을 지향하는 의도를 살렸다. 치렁치렁 거추장스럽게 늘어지는 대형 치마 대신, 활동성을 강조하면서 발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탈부착이 가능한 장식을 떼어내면 피로연복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한 드레스도 선보였다.
9월 16일 친환경 결혼식을 올릴 예비 신부의 드레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녹색 허리장식을 덧붙였다.
친환경 소재로 웨딩드레스를 만들면서 혼례 문화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는 이경재 씨는, 이번 전시를 녹색결혼식 운동을 전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오는 9월 16일에는 그의 친환경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릴 예비부부도 있다. 성정기·김민경 씨가 그들이다. 두 사람은 친환경 결혼 서약을 하고, 드레스 구입비용을 환경단체에 전액 기부하기로 해 더욱 뜻 깊다.
초창기 생분해성 비닐 원단으로 제작했던 드레스. 비치는 소재의 특성을 살려 박음질 자국도
장식으로 활용했다.
앞 드레스의 등 부분. 세로로 길게 늘어지는 치맛단은 옥수수 잎을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와의 대화, 친환경 결혼식, 웨딩드레스 입어보기 등의 부대행사를 연다. 전시 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며,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는 5~10세 자녀와 엄마가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기회도 주어진다.
한편 전시 폐막 하루 전인 10월 7일 오후 2시에는 국내 거주 외국인 중 결혼식을 치르지 못하고 사는 부부 1쌍을 선정해 무료 결혼식도 열어준다. 모든 행사는 www.ecodress.net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작성한 후 이메일로 신청하며, 선착순 마감한다. 관람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7시, 관람료는 없다. 문의전화 02-3475-6448.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친환경 웨딩드레스와 함께 한 이경재 씨. 디자이너이면서도 강원도로
귀농해 청국장집을 운영하고 있다.
옥수수와 나무 껍질, 나무 토막 등을 활용해 숲속 전시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옥수수 싹을 심은 도자기 화분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미세한 흠 때문에 폐기처분된 도자기 400개를 협찬 받아 재활용한 것이다. 이 화분들은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계획이다.
땅에 묻으면 5주 이내에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옥수수 전분 원단의 특성을 보여주는
퍼포먼스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