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작가 개인전 리뷰
![]() ![]() 2009/12/30 11:34 |
이기영 전 12.9~12.22 이화익 갤러리
이기영 <4 Years Old, 120x165cm> mixed media(pigment) on Korean paper 2009
소석회를 얇게 바른 한지를 바탕삼아 먹을 그렸다 지우는 작업을 반복해 피워내는 먹꽃 작업에 몰두해 온 이기영의 그림이 색을 입었다. 그것도 모노크롬에서 1~2가지 색을 더하는 일보가 아닌, 붉고 푸르고 노란 빛들이 어울 너울 춤을 추는 대담한 시도다.(<4 Year old>) 이는 그동안 검은 먹만을 고집스럽게 색으로 인정해온 이전 작품들과 언뜻 비교해 볼 때 그의 작품 세계가 상당한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비추어 질 수도 있다.
Untitled, 120x165cm, mixed media(Chinese ink, pigment) on Korean paper, 2009 작업실을 그린 그림. 이기영 작가의 작품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좋다.
그러나 한지 위로 스며들어온 빛의 배열과 포용을 작업 철학의 총체적인 전환이나 본질의 변화로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기영의 말대로, 색은 환각을 만들어 내는 데 더없이 효과적인 재료이다. 그러나 그는 색이 본질을 담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의 이전 작품들을 살펴보면, 붓질 한 번으로 쓱쓱 피워 올리는 꽃이 아닌, 오랜 기간 동안 먹으로 그렸다가 지워낸 먹꽃에서 어떤 치열한 투쟁과 의지가 엿보인다. 먹으로 칠했다 지워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담고 대상의 총체적 본질과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의지는, 작가가 인생을 살아오며 보고 생각하고 느꼈던 경험과 감정의 잔여를 이미지로 치환하려는 노력과 중첩된다. 이기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개인적 사유체제를 타자의 경험으로까지 확대 적용시켜 동시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정신적 합의(common sense)를 나타내려는 욕심도 드러낸다. 이처럼 본질의 조형화를 향한 완벽주의적인 그의 강박은 때로 관람하는 이를 고단하리만치 몰아세운다. 여기에는 화가의 업을 선택한 그의 소명정신과 예각화된 작가적 정체성도 상당부분 스며들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래서 그의 먹꽃은 더 고독하다. 아름답지만 독을 품은 냉기가 흐른다.
이기영 <Black Flower 1> mixed media(Chinese ink, pigment) on Korean paper 122x122cm 2009
정말 솔직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예전 작업이 더 좋다.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언제나 비장한 아름다움을 띠는 법이다.
색의 스펙트럼을 차용한 지금도 실체를 분해해 원소를 추출하고 인생의 녹을 작품 속에 투영하려는 그의 노력은 변한 바 없다. 예를 들어 그의 작품 <Untitled>에 사용된 붉은색과 노란색은 그가 아꼈던 초창기 폴라로이드가 잘 표현했던 색감을 환기시킴으로써 사진기에 얽힌 작가의 추억과 이미지를 담고 있다. 다만 지금은 본질 자체를 완벽하게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작가가 조형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한계를 받아들였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전 작품들이 자연물/사물을 바라보고 본질을 추출한 후 그 형태를 객관화하여 옮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신념에서 기인했다면, 세월은 작가에게 색은 환영과 이미지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만 남는 것이 인생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결코 동양화를 기반으로 한 그림 안에 삶의 반추를 담아내려는 최종 목표를 향한 열망이 변한 것이 아니다. 자유롭고 따뜻하다. • 조숙현 기자
[출처] 이기영 작가 개인전 리뷰|작성자 장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