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산업부 윤지나 기자]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힘든 일 기쁜 일 함께 한 회사인데 이런 요구까지 하게 되다니 참담하고 억울한 심정입니다. 희생이 있더라도 이게 사는 길이니 어쩔 수 없지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성원건설에 입사해 사업본부에서 잔뼈를 키워 온 A(44)씨. 회사의 경영악화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최근 다른 직원들과 함께 사측에 기업회생절차(구 법정관리)를 요구했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대외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건설사가 공개적으로 회사의 재정상태를 문제 삼고 법원의 관리 아래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실제로 성원건설 직원들은 대외 이미지 등 때문에 회사가 임금을 체불하는 등 경영이 악화됐음에도 지금까지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사측이 진정성 있는 대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이처럼 직원들이 직접 나서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성원건설이 국내외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 상당수는 유동성 부족 때문에 전면 중단되다시피 한 상황이다. 특히 내년 입주를 앞두고 시공에 들어간 아파트단지들은 문제가 심각한데, 용인 풍덕천 성원 상떼빌의 경우 분양계약자들이 시공사 변경을 요구하고 나섰다. 광주의 한 아파트사업장에서는 시공사인 성원건설이 아예 소외된 상태에서 시행사와 시공협력사들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사업장 역시 현지 경기까지 맞물려 4개 사업장 모두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직원들은 지난 해부터 약 130억 상당의 임금이 체불된 상태다.
지난 해 미국발 금융위기를 고려하더라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진 데는 전윤수 회장 등 경영진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직원들의 판단이다. 해외사업을 무리하게 벌리고 사업성 없는 지역에 주택사업을 추진한 것이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전문경영인 대신 전 회장의 딸과 조카 등 가족들이 경영 일선에 나선 것도 상황을 악화시킨 요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이덕래 노동조합위원장은 "회사만 믿고 계속 기다리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며 "향후 체불임금에 대한 희생, 인력감축 등에 따른 고통이 가해진다 해도 회사는 살려야 겠다는 공감대에 따라 기업회생절차를 요구한 것"이라며 "전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리비아에서 수주한 2조원 규모의 주택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당장의 위기를 피할 수 있는 만큼, 기업회생절차 요구 등을 조금만 미뤄 달라는 입장이다. 사측 관계자는 “직원들을 상대로 수주 건이 해결될 때까지만 참아달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수출보험공사가 성원건설의 임금체불 등을 이유로 보증에 나서지 않아 계약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 위원장은 "직원들은 애사심에 희생을 감내하겠다는데 문제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전 회장이 회사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끝까지 경영권을 포기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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