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살리기의 영웅’도 인권탄압의 죄를 벗지 못하고 끝내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게 됐다. 페루 대법원은 3일 알베르토 후지모리(71) 전 대통령에게 선고된 25년 징역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날 증거 불충분으로 형 취소를 요구한 후지모리 전 대통령 쪽의 상고를 재판부 전원일치로 기각해 특별재판부가 선고한 25년 징역형을 확정했다. 앞서 특별재판부는 지난해 4월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게 인권침해 혐의를 적용해 25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당시 특별재판부는 살인, 납치와 학살 등 인권침해 사건에서 후지모리는 “간접적 원인 제공자”라고 판시했다.
교수 출신인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일본계 이민 2세로 중남미 첫 아시아계 대통령에 당선된 신화적 인물이다. 그는 1990년 대통령에 당선돼 사회를 안정시키고, 침체된 페루의 경제발전을 이끌면서 빈곤층 등의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96년 12월 좌익 게릴라조직 투팍아마루가 리마 소재 일본 대사관에서 외교관 등 인질 72명을 넉달간 붙잡고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자, 반군 14명을 전원 사살한 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하지만 좌파 게릴라 척결을 내세워 인권을 탄압하고, 권력욕에 빠져든 독재자라는 비판도 받아왔다. 91년 수도 리마에서 특수부대를 동원해 민간인 15명을 살해하고 92년에는 특수부대를 파견해 학생과 교수 10명을 숨지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95년 4월 재선에 이어, 2000년 4월에는 3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부정선거와 횡령 의혹 등이 제기됐고 측근이 야당 의원을 매수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되자 일본으로 달아났다. 이후 일본과 페루에서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7년 9월 페루로 송환된 뒤, 권력남용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 의원은 2011년 페루 대선의 선두주자로, 당선되면 후지모리를 사면하겠다고 밝혀왔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