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고증으로 잘못된 사극 한복…한복 평론가가 절실합니다"
그가 한복을 만들기 시작한 때는 1967년. 올해로 42주년을 맞는다. "남자가 무슨 한복을 만드느냐"는 주변의 말에 기가 죽지 않고 발판 삼아 여기까지 왔다. 그는 우리나라 대표 한복 디자이너 그레타리다.
한복 만드는 남자는 쓸쓸했다
그레타리(65)는 우연한 계기로 옷감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유일한 예술 학교였던 서라벌예고를 거쳐 예대를 다니는 예술 학도였다. 탤런트 선우용여가 1년 후배이며, 임동진, 이정길과 동기였다. 그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무대 의상 제작을 도와주다 보니 연극보다는 의상을 만드는 데 흥미를 느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의상에 대한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본격적으로 무대 의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싶은 욕심에 한복을 짓기 시작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당시 남학생을 위한 의상학과는 전무했다) 정식으로 양재학원을 다녀 본 적도 없다. 한복에 관한 열정만을 갖고 무작정 독학으로 시작했다.
"오늘 옷이 완성되면 내일 입혀 보고 모레는 다시 뜯어 고쳤죠. 독학으로 한복을 만들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1960년대만 해도 한복은 사 입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만드는 옷의 개념이었죠. 게다가 남자가 만든 한복이라니…. 기상천외한 일로 취급받았어요."
양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복의 전통 복식에 관한 공부도 했다. 특별한 고증 서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순정효 황후(순종 윤 황후)의 옷이 전시돼 있다는 소식을 듣고 1주일 중 하루 여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학교 개인 박물관이니 아무 때나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금요일마다 일반인에게 오픈했는데 이 시간에 맞춰 가서 눈으로 한복의 형태를 익히는 게 전부였습니다. 당시에 비하면 요즘은 책들이 많으니 공부하기가 오죽 좋습니까. 행복한 줄 알아야 해요."
이름을 걸고 한복 집을 열었지만 난관은 계속됐다. 한복을 지으러 왔다가도 주인이 남자라는 걸 알면 그냥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뜻밖의 인물이 그의 가게를 방문하면서 그레타리 한복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어떤 분이 오시더니 '나는 한복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명함을 주시는 거예요. '밖에 걸려 있는 한복이 너무나 창의적이고 예뻐서 들어와 봤습니다'라고 하시더군요. 명함에 적힌 이름을 보니 '이리자'라고 쓰여 있는 겁니다. 신문, 잡지를 장식했던 당시 최고의 한복 연구가 이리자씨였던 거죠."
삼청동에 적을 두고 있던 그녀가 옷감을 구하기 위해 종로 5가에서 동대문 시장을 지나다니곤 했단다. 그러면서 솜씨 좋은 그레타리의 한복이 자연스레 눈에 들었던 것이다. 뜻이 잘 맞았던 그들은 의기투합해 한복 디자이너들을 모아 한복 협회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한복 패션 쇼를 열기 시작했다.
그레타리의 한복은 여러 매체에 소개됐고, 방송사들은 사극 의상의 제작 의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1988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한 당시 각국의 미녀 60명의 한복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42년 한복지기 그레타리의 명성은 그렇게 이어졌다.
잘못된 고증…보기 안타깝다 그레타리가 전통 궁중 의상인 당의를 펼치더니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정조 시대까지 허리 선이 일자로 내려왔던 것이 이후 서양 문물이 들어 오면서 퍼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옷 고름은 이렇게 만들 때 두 길이가 같아야 하고, 앞섶이 이 정도만 겹쳐야 하죠."
그가 요즘 견딜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TV 사극 의상의 고증이 잘못된 경우다. 대부분 그 시대에 맞는 옷이 거의 없다.
"고증이 잘못된 것을 따지고 들자면 끝이 없어요. 다 자기들 마음대로야. 정확한 고증이 있고 조금만 연구하면 되는데 왜 안 하는지 정말 답답해요. 미실이 왜 당나라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오느냐고요. 화려한 의상이 시청률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시청자들은 그게 맞겠거니 하고 보니 그게 문제죠."
역사 학자들처럼 한복의 복식에도 정확한 고증을 따져 묻는 한복 평론가가 절실하다는 것이 그레타리의 생각이다.
"이제 우리 드라마가 우리만 보고 끝나는 시대는 지났잖아요. 드라마의 해외 수출이 늘어난 만큼 우리 문화인 한복을 왜곡해서는 곤란하지요."
그레타리가 아쉬워하는 게 또 하나 있다. 개량 한복의 보급이다. 불과 10년 전 개량 한복의 붐이 인 적이 있다. 그것은 한복의 날 3주년이던 당시 한복을 편하게 입어 보자며 각계 교수들과 한복 디자이너들이 뭉쳐 이룩해낸 성과였다.
그러나 현재 개량 한복의 위상은 어디로 간 걸까. 그저 일부 전통 예술가나 도공들이 작업복으로 입는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그 당시 예쁘면서도 편하게 외출복으로 입을 수 있는 개량 한복 디자인을 채택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예요. 또는 작업복과 외출복을 구분해서 만들었다면 개량 한복은 지금도 한국인의 사랑을 받으며 많은 사람이 입었을 거예요. 제가 얼마나 후회를 하는지 몰라요."
점점 한복을 입지 않는 추세다. 결혼식에서도 한복은 생략하는 항목 1순위다. 가끔 결혼식 한복 대여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레타리를 찾아오곤 하는데 그는 완곡히 거절한다.
"일생의 단 한 번뿐인 결혼식에서 우리 옷 한복을 입는 건데 그것마저 어렵다고 말씀하신다면. 글쎄요. 저도 뭐라 표현할 말이 없네요."
그레타리는 우리 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이제 더 이상 쓸쓸하지 않다 때로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한복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아주는 경우가 많다. 그레타리는 아프리카 대륙만 빼고 안 가본 나라가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한복 해외 패션 쇼를 많이 열었다. 지금까지 공연 횟수를 따져보면 200회나 된다. 그의 작업장에 있는 달력을 보니 8월 21일에 일본이란 글자가 휘갈겨 써 있다.
"일본과 한국의 궁중 의상을 비교하는 세미나와 패션 쇼가 잡혀 있어요. 10월 6일에는 미국 LA에서 패션 쇼가 있고, 11월에는 워싱턴에서 드라마 주몽 의상으로 쇼를 열어 달라고 의뢰가 들어왔어요."
해외 행사에서는 이익이 남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은 공무원 출장비 명목으로 받는 돈이 전부니 오히려 적자를 면치 못한다. 한복 디자인을 하면서 발표회나 패션 쇼를 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란다. 양장보다 대중성이 떨어져 지원이나 투자를 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내 옷, 한복으로 우리나라를 알리러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자주 갈 수 있는 거죠. 수익을 보고 행사를 진행했다면 벌써 그만뒀을 거예요(웃음)."
그는 외국에 사는 교포들이 찾아와 자랑스러워하거나 외국인들이 한복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낯선 환경에서 패션 쇼를 준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번은 제가 어느 기업과 함께 러시아에 갔어요. 한복은 작고 마른 체형이 입었을 때 가장 단아하고 예쁘잖아요. 그래서 170~175cm의 모델들을 섭외해 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모인 모델들을 보니 대부분 185~190cm의 장신들인 거예요. 한복을 입혀 놓으니 치맛단이 다리에서 20cm씩 올라와 있는 겁니다. 난감하더라고요. 그래서 중학생들을 데려 오라고 했어요. 그제야 한복이 딱 맞고 예쁘더군요(웃음)."
몸에 꼭 맞는 한복을 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바느질 한 땀의 정성에 맵시가 좌우되는 의상 중 한복만한 것이 또 있을까. 한복은 조금만 어긋나도 저고리가 들린다. 작은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섬세한 작업이다. 그레타리는 명품 한복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에게 한복 디자이너로서의 목표를 물었다.
"꾸준히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을 위해 예쁜 한복을 입히는 것"이란다. 소박한 목표다. 그러나 어떤 대답보다 성실한 답이 아닐는지. 한복 짓는 남자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의 두 아들 윤민씨(35)와 문재씨(32)가 함께 한복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섬세한 작업을 봐왔기에 자연스럽게 이 분야로 들어서게 됐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제 마음에 들 정도로 잘 맡아서 해주니 마음이 놓여요. 한복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몰라요. 각각의 취향과 개성에 맞추고 시간을 정확히 지켜 완성해야 하니까요."
그가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데 두 아들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그레타리는 현재 경희대, 한성대, 한체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국내에서 큰 공연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 주최로 열리는 2009 운현궁 전통 복식 패션 쇼의 예술 총감독을 맡았다.
오는 9월 12일 토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서울 운현궁 특설 무대에서 그레타리의 패션 쇼가 열린다. 조선 시대 왕실 복식은 물론 지방 혼례복, 민속 의상, 평상복, 창작 의상을 선보이며 패션 쇼 중간에 태평무 공연이나 살풀이 공연을 펼치는 알찬 무대가 될 것이다.
▶ 2008년 10월 국립 극장 페스티벌 기념 패션 쇼에서 선보인 그레타리의 작품들
"저는 언제나 행사마다 새로운 무대를 만듭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예쁜 의상이라 할지라도 두 번 이상 보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관객에게 항상 새로운 의상을 선보이는 것은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이고 관객에 대한 예의지요."
그의 지하실 창고에는 1톤 트럭 수십 대를 채울 수 있는 한복이 가득 차 있다. 한 번 올린 자신의 창작복은 두 번 다시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는 신념 때문이다. "잘 보관해두었다가 어딘가 필요한 곳에 기증해야지요."
65세. 일반인이라면 정년을 넘긴 나이인 그레타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 옷을 짓는다. 그의 끊임없이 샘솟는 한복에 대한 열정과 욕심은 정년(停年)이 아닌 정년(丁年)의 스무 살 청년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 이유진 기자 사진 원상희 장소 협찬 그레타리 한복(02-927-7183)
그녀의 미모는 곧 권력
[매일경제] 2009년 10월 30일(금) 오후 02:30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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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권세가 가문이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정치가, 관료, 기업 임원 등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을 타고난 사람들은 어떨까? 영국 역사학자 아서 마윅(1936~2006)은 서구 세계에서 미모의 기준과 의미가 어떻게 변했는지 탐구한다.
뛰어난 미모는 권력이나 지성, 힘, 부, 교육, 가문과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겐 주어지지 않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미모의 중요성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유럽 절대왕정 시대 왕들은 정략적인 이유로 왕비를 선택한 후 미인들을 정부로 두고 그들에게 권력을 줬다. 매력적인 정부들은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부귀영화를 누렸다. 역사에 기록된 왕의 정부로는
루이 14세의 몽테스팡 부인과 맹트농 부인, 루이 15세의 퐁파두르 부인 그리고 찰스 2세의 캐슬메인 백작부인 등이 있다.
또 16세기
베네치아엔 '고급 매춘부'라는 특수 성노동자 계층이 존재했다. 이들은 당대에 이름을 날리던 유명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상대했다. 19세기 들어서도 다수의 미인들이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해 성을 팔았다. 그들은 예술계, 살롱 등으로 진출해 유력 남자들과 관계를 맺었다.
남성도 아름다운 남성이 유리한 직업들이 있었다. 왕이 게이거나 왕실 수장이 여왕일 때 아름다운 남성이 성적 봉사를 함으로써 이익을 얻기도 했다.

근대 이전 미인들이 성을 무기로 권력을 얻었다면 현대 미녀들은 영화나 광고로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다.
사라 베르나르,
그레타 가르보, 비비언 리, 베티 데이비스 등 여배우들은 대중의 힘을 바탕으로 영화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들은 외모가 막대한 부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외모는 정치 권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로널드 레이건이나
토니 블레어가 입증해주었듯 TV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외모는 현대 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미모와 성이란 무기만으로 얻을 수 있는 권력과 부는 한계가 있다. 아름다운 외모는 인내, 사고 그리고 매너 등이 뒷받침될 때 더욱 빛난다.
채은진 옮김, 말글빛냄 펴냄.
“내 죽음 통해 전 세계가 북한 현실 주목하길”
[뉴데일리] 2009년 12월 27일(일) 오전 05:23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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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지난 25일 두만강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 재미교포 인권운동가 로버트 박씨가 중국으로 출국 전 녹화한 비디오에서 이같이 각오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미국의 소리’ 방송이 입수한 영상 자료에 따르면, 로버트 박씨는 “자신의 북한행은 자살 행위가 아니라며, 자신의 죽음을 통해 전 세계가 북한의 현실을 주목하고, 지도자들이 개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죽음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 시민권자인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북한 주민이 진정한 자유를 얻고 기독교인들이 북한 주민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길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또 “중국에서 비밀리에 탈북자를 도왔지만 이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말하고 “지난 여름 두만강에서 기도를 하던 중 북한에 들어가야 한다는 영감을 받아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영상에서
성탄절에 두만강을 건너는 의미를 강조했다.그는 “북한에서 가장 추운 시기일 뿐 아니라 성탄절은 전 세계가 가장 행복을 누리는 날이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 것을 모른 채 어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한편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26일 ‘미국의 소리’ 방송에 로버트 박에 대한 소식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추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며 “아직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북한 역시 26일 현재 로버트 박의 체포 여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온종림
뉴데일리
李대통령, 예정없던 UAE 왕세자 영접 받아
파이낸셜뉴스 | 전용기 | 입력 2009.12.27 08:44
【
아부다비(
아랍에미리트)=전용기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오후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 도착,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반흐얀 아부다비 왕세자와 환담하는 것으로 1박2일간의 UAE 일정을 시작했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모하메드 왕세자의 공항영접은 예정에 없던 일정으로 통상적으로 국가 정상의 방문시 영예수행 장관을 파견한 전례에 비하면 각별한 예우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환담에서 "양국이 원전건설 프로젝트 건으로 만남을 시작했으나 여러 면에서 형제와 같은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UAE가 유럽의 많은 나라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아시아 특히 한국 사람들은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한국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한국은 원유와 가스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 나라로서 기술과 교육을 경쟁력으로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면서 "한국의 장점과 UAE의 장점, 그리고 동아시아의 허브로서 한국과 중동의 허브로서 아부다비가 힘을 합치면 교육과 문화 경제등 여러 분야에서 인적교류가 활발해지고 양국발전에 기대치 못한 좋은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모하메드 왕세자는 "공감한다. 한국과 UAE가 향후 50년을 바라보고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기를 바란다"면서 "특히 교육과 정치 교역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하고 더욱 많은 양국국민들이 상호 방문을 해 나갈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모하메드 왕세자의 선친인 고 자이드 대통령과 관련해 "아부다비에는 고 자이드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있어서 오늘날 안정과 번영을 동시에 이룬 UAE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서 "다시 50년 100년 후, 오늘을 돌아볼 때 UAE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한국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왕세자께서
원자력 발전소를 비롯해 저탄소에너지 그리고 NO 탄소 도시인 '마스다르 시티'를 만드는 미래지향적 정책을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면서 "산유국중 아부다비가 가장 먼저 시작하고 있다. 생각하기는 쉽지만 실천에 옮기기 힘든 일을 해낸 것은 추진력과 리더십의 힘"이라고 평가했다.
모하메드 왕세자는 마스다르 시티에 대해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만들고 있다기 보다는 '산유국이어서' 만들고 있다"면서 "원유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도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본다. 산업다각화 차원에서 새로운 분야의 투자를 시작하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한국은 UAE와 언제든지 함께 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드린다"면서 "오늘의 만남이 향후 양국관계의 백년을 내다보고 진정한 형제국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한 "한국과 UAE 정부가 상호보완적인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만큼 한국이 기술과 경험을 공유하며 UAE와의 미래지향적인 상생협력을 끌어낼 적임국"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27일 칼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협력증진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특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최근 6개월에 걸친 UAE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공개입찰 경쟁과 관련한 담판을 벌일 예정으로, 이번 입찰에 참여한 한전 컨소시엄의 수주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