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cm 키에 43kg의 자그마한 몸집, 거기에다 날카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은테 안경너머로 반짝이는 두 눈은 영락없는 신입 여대생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러나 마냥 앳돼보이는 외모와 달리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를 보면서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세 번 놀랐다고 한다.
첫번째는 그의 경력. 중학교 때부터 불량소녀로 폭주족-자살미수-결혼-이혼-호스티스-변호사로 거듭나는 과정이 너무나도 격렬함에 깜짝 놀라고, 두 번째는 내로라 하는 일류대학의 법대생도 몇번씩 떨어졌다 겨우 붙는 사법고시에 그는 단 한 번에 합격했다는 점, 세 번째는 아무리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옆모습을 살펴보아도 그의 모습에서 과거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 일본인들로 하여금 세 번을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 2월 하순, 발매한 지 일주일 만에 무려 17만부가 팔린 오히라 미츠요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남아>. 그의 지나온 과거를 적나라하게 고백한 자서전으로, 아직 한 달도 채 안됐는데 벌써 25만부를 넘어섰다. 이 책을 기획·출판한 고단샤측은 2년 전 출판하여 4백60만부가 나가고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꾸준하게 팔리고 있는 <오체불만족>의 뒤를 이을 책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원래 그는 맞벌이를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자신의 딸이 태어났음을 선언하는 문장을 만들어 액자에 걸어 놓았을 만큼 금지옥엽하며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랐다. 엄마 아버지가 모두 직장에 나가긴 했지만 그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늘 한동네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가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는 애정이나 물질면에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아주 행복한 가정의 10대 소녀였다.
하지만 그가 고학년이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학과공부에 대한 부담이 없었는데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여가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학원, 주산, 피아노학원 등으로 바빠지자 대신 외할머니가 집으로 와 그를 보살펴 주었다.
그러나 이같은 생활이 매일같이 계속되자 외할머니가 힘들어 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부쩍 쇠약해진 외할머니 때문에 그의 부모는 두 집을 합치기로 하고 시내로 이사를 했다. 오히라 역시 새학교로 전학을 했다. 78년 7월,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는 학교를 옮기면서 희망에 부풀었다. 새로 얼굴을 마주 대하게 될 친구, 선생님, 교정 등 사춘기 소녀답게 꿈도 많았고 덩달아 기대도 컸다. 전학하던 날, 그는 아름다운 교정을 보면서 자신의 꿈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다가오는 미래도 모두 아름다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같은 그의 풋풋하기만 한 꿈이, 누렇게 썩어 문드러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지메. 따뜻한 사랑만 듬뿍 받고 자랐던 그에게는 난생 처음 겪는 환난이었다. 고통스럽다고만 표현하기에는 그들의 괴롭힘이 너무도 집요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지메 강도 또한 높아져 갔다.
‘나는 바보입니다. 모두들 싫어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유혹해 주세요. 쌉니다. 쭛년 쭛월 쭛일 쭛반 미츠요’
이 정도의 낙서는 그래도 연필로 쓴 거라 지우개로 쉽게 지울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조각칼로 그녀에 대한 비난을 책상 위에 새겨 놓아 지울 수도 없었다. 이지메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같은 반에 있던 리더격의 여자애가 말할 때, 대꾸하지 않고 모른 척 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일본의 어느 학교든 마찬가지지만, 리더격인 한 애가 이지메를 하자고 선동하면 일제히 따라서 같은 행동을 한다. 만약 같이 행동하지 않을 경우는 그 자신마저 이지메의 대상이 되므로 좋든 싫든 친구의 괴롭힘에 동참하게 된다.
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세 명 정도 있었으나 나중에는 그 친구들도 그를 괴롭히는 데 합세했다. 1학년이 끝나고 2학년에 올라가서도 이지메는 멈추지 않았다. 엄마에게 하소연도 해보았으나 참으라는 말과 그래도 학교에는 꼭 가야 한다는 타인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친구들의 혹독한 이지메 견디지 못해 학교와 집을 떠난 소녀
그즈음 전혀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낙서를 통해 욕하기, 화장실에 들어가면 양동이로 물을 부어 흠뻑 젖게 하고 생쥐라고 놀려대기, 쓰레기 버리는 심부름 등 그를 직접 괴롭히는 것으로 끝났는데 이번에는 느닷없이 억울한 누명을 덮어씌웠다. 그가 같은 반 친구에게 장난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물건을 훔쳤지?”
“너 매춘하고 있지?”
이같은 장난전화는 그도 몇 번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과도 의논하고 경찰서에도 신고하여 범인을 색출하려고 했지만 끝내 잡지 못했다. 그런데 그 범인이 오히라라고 반 친구들이 덮어 씌운 것이다. 친구들은 그를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너 같은 바보는 빨리 죽어 없어져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너무도 억울했다. 죽이고 싶도록 친구들이 미웠다. 그래서 학교가기를 거부했고 엄마와는 매일같이 싸웠다. 그의 엄마는 주위의 이목에 대단히 신경을 썼다. 혹시라도 자신의 딸이 문제아라고 알려지는 게 싫어 어떻게든 학교만은 보내려고 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그에게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결국 그가 생각한 것은 억울한 누명을 벗는 일이었다. 그러나 누명을 벗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옥상에서 떨어져 내릴까, 전철에서 뛰어내릴까, 손목을 그을까. 오직 죽는 방법만을 생각했다.
‘그래도 보통으로 죽으면 안돼. 그애들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잘난 척하며 잘 살 거야. 그것만은 참을 수 없어. 내가 얼마만큼 고통스러웠는지 생각나게 해주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는 간단한 방법으로 자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살방법으로는 가장 극단적이라는 할복자살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그녀는 면도칼로 손목을 그어 피가 나오게 하고는 그 피로 유서를 썼다.
‘그 아이들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그리고 급우의 이름을 모두 썼다. 특히 자신을 배반한 세 명의 친구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도 썼다. ‘아버지, 엄마, 할머니 미안해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집을 나와 슈퍼에 가서 과도를 샀다. 그리고는 강가로 갔다.
교복을 입은 채 정좌를 하고 두손으로 과도를 쥐고 배를 찔렀다. 배신한 세 명의 친구를 생각하며 한 번에 세 군데를 찔렀다. 피가 흥건히 흘러내렸다. 옆으로 쓰러졌지만 의식은 또렷했다. 분명 책에는 할복자살은 금방 죽는다고 했는데… 옆으로 쓰러진 채로 두 번을 더 찔렀다. 그래도 의식은 또렷했다.
‘아프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누군가… 누군가 살려줘요…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을까.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것은 아니었는데….’
오히라의 배에서 흘러내린 피가 땅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었다. 그는 문득 자신에게 늘 따뜻하게 대해주던 할머니의 미소가 떠올랐다. 어디선가 외할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소리쳤다. “살려줘요.” 생각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남녀가 걸어 오는 게 보였다. 또다시 소리쳤다. “살려줘요.”
“무슨 일이 있어도 죽으면 안돼! 구급차가 곧 오니까 조금만 참아. 조금만….”
자신이 입었던 코트를 오히라의 몸에 덮어주며 여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 순간 오히라는 생각했다. ‘아! 만약 이 사람이 우리반에 있었더라면….’
결국 살아 남았다. 다섯 군데의 상처에서 흘린 피로 인해 1천2백ml의 대량수혈을 받았다. 10cm가 넘는 상처의 깊이는 바로 간장까지 와서 칼끝이 멈추었다. 덕분에 대수술 끝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더 깊고 커졌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 했다. 3개월 만에 다시 교정으로 돌아간 그. 이번에는 또다른 이지메가 기다리고 있었다.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서 무슨 얼굴로 학교를 오느냐고 빈정거렸다. 그렇지만 그는 엄마의 말대로 3학년이 되면 새로운 반으로 옮기니까 좀 나아질거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3학년이 되고 새로 편성된 반에서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할 때였다. 모두들 자기 취미와 특기를 얘기했다. 그녀도 마음속으로 어떻게 말할까 열심히 궁리를 했다.
“내 취미는…”
“네 취미는 할복자살이잖아….”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았다. 대신 학교에 가지 않고 같은 나이 또래와 어울려 거리를 배회하고 다녔다. 그의 엄마는 소식도 없이 며칠씩 집에 돌아오지 않는 딸을 찾아달라고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그럴 때마다 유치장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의 간곡한 권유로 미용학원에 입학했지만 오히라는 폭주족과 어울리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들과 시너를 흡입하고 담배를 피웠다. 때로는 운전면허도 없이 차를 몰고 다녔다.
가끔씩 집에 가서 엄마의 지갑을 뒤져 돈을 꺼내왔다. 그 때마다 제발 정신차리라는 엄마를 두들겨 팼다.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가 울면서 말렸다. 하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바로 그 때 만난 남자가 있었다. 야쿠자의 조장, 말하자면 두목이었다.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야쿠자의 아내가 되었다. 지금까지 이곳저곳을 무수히 방황하고 돌아다녔지만 이상하게도 야쿠자 세계가 가장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의 부하들이 자신을 따라 주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서 엄마 젖 더 먹고 나오라는 부하가 있었는가 하면, 어딜 감히 오야붕(두목)의 자부동(방석)에 동석하느냐고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야쿠자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몸부림쳤건만…
그는 야쿠자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등에 문신을 새기려면 미성년자에게는 부모의 도장이 필요하다. 오히라는 집으로 가서 엄마를 밀치고 차며 강제로 도장을 찍어 기어코 문신을 새겼다. 유일하게 안식처라고 생각한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 후 그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외할머니가, 어릴 적 그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죽어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자신을 가장 많이 사랑해 준 할머니를 생각하며 술로 시간을 보냈다. 역시 야쿠자의 세계도, 우두머리의 아내자리도 자신이 진정으로 편히 쉴 수 있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6년 만인 스물두 살에 이혼을 결행하고 오사카 시내에 있는 고급 술집의 호스티스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술집에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났다. 아버지의 친구, 지금은 그의 양부가 된 오히라 히사부로를 만난 것이다. 유치원 때부터 아저씨라 부르며 따르던 아버지 친구를 마주친 순간, 그는 너무도 당황하여 그 자리를 도망쳤다. 그러나 자신을 알아보는 아저씨 앞에서 옛날 일을 모른 척 했지만, 끝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가 돌아가면서 명함을 주었다.
다음 날 오히라는 전화를 해서 그를 만났다. 그때부터 오히라 아저씨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시작하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일어서라고 말할 테면 나를 중학생 시절로 되돌려 놔 봐요!”
그러자 그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히 네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네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 부모도 주변사람도 나빴겠지.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은 남의 탓이 아닌 네 탓이야.”
얼마나 화가 났던지 옆손님이 놀라 물컵을 떨어뜨릴 만큼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 커피숍 안의 손님 모두가 오히라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있는 아버지의 친구를 보며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단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오히라 아저씨가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순간 그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결심은 빨랐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아저씨의 권유대로 무엇이든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 가지고는 어디든 취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책상은 재기의 선물로 오히라 아저씨가 사 주었다. 하지만 어렵게 시작한 공부는 쉽지 않았다. 참고서적을 사와도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아 날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그렇다고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전이 새카맣게 될 만큼 모르는 글자를 찾아 시험공부에 몰두했다.
이윽고 원하던 주택컨설팅 자격증을 땄다. 그때서야 그는 비로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고 오히라 아저씨와 부모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부모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과거에 그가 한 행동에 대해서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옛날처럼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부모가 그런 딸자식을 받아들인 것은 사법서사 시험에 합격한 후였다. 사법서사 시험에 합격한 후 그는 다시 집을 찾았다. 옛날에 자신이 각목을 들고 행패를 부릴 때 찍힌 서랍장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을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엄마 아버지 앞에 무조건 무릎을 꿇고 빌었다.
얼마를 그랬을까. 아버지가 눈물젖은 목소리로 잘 왔다면서 딸의 손을 잡았다. 엄마는 엎드려 용서를 비는 딸을 부둥켜 안고 그동안 고생했다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자신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는 사법고시를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졸의 학력으로 사법고시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알지 못했다. 전문서점에서 사법고시에 대한 책을 사와 읽어보니 대학의 법학부 과정을 이수하면 1차 시험을 면제받을 수가 있었다. 이를테면 본격적인 사법고시는 2차부터 시작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그는 방송통신대학 법학부의 문을 두드렸다. 거기에도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고교학력이 없기 때문에 1년동안 고교 3년동안의 교과내용을 리포트로 제출하면 입학자격이 주어진다는 학교가 있었다.
사법고시 도전에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던 면접관
1년 후 리포트심사가 통과된 후 면접시험에서 그는 거듭 물었다. 통신교육으로 일반교양과목을 전부 이수하면 사법고시의 1차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느냐고 재차 확인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 말이야, 사법시험이라는 것은 최난관의 시험이야. 일본에서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시험이란 말이오. 도쿄대나 교토대를 졸업한 이도 어려운데 당신이 시험을 보겠다고?”
무시하는 투의 면접관의 말을 들으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꼭 합격하고 말 거라고. 그가 방송통신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것은 스물여섯 살 때. 그에게는 꼭 합격해야만 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이제 겨우 부모와 화해를 하고 가정으로 되돌아갔는데, 아버지가 그만 암에 걸린 것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사법고시에 합격해야 했다. 그래야만이 그동안 아버지께 지었던 죄의 대가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를 보러 집에 가는 것말고는 오로지 공부만 했다.
드디어 시험이 끝나고 얼마 후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 1935번. 그의 수험번호였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합격을 한 것이었다. 그녀는 수험번호를 확인하려는 인파를 제치고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엄마, 있었어, 있어!”
전화기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가 울고 있음을 그는 금방 알아차렸다. 그날 그를 위한 축하파티가 열렸다. 2개월 뒤 논문시험도 무사히 통과한 후 전보를 통해 정식으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합격 축하함’. 아주 간단한 문장이었지만, 그는 비로소 어둡고 무서운 긴 터널을 이제 겨우 빠져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사법연수생으로서 교토에 배속되었을 때, 아버지가 오히라 아저씨를 찾았다. 그리고는 그에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미츠요가 태어났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이 세상의 행복을 혼자 다 차지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사에 가서 무슨 일이 있어도 딸의 행복을 지켜 주겠다고 맹세를 했지만 딸이 중학교 때 그토록 큰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어떡하든 딸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나는 이제 얼마 못 삽니다. 그러니 우리 딸을 양녀로 입적하여 미츠요의 행복을 지켜 주십시오.”
어느덧 그의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그 옆에서 어머니도 따라 울었다. 그들은 딸이 앞으로 부딪치게 될 여러 편견을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변호사가 된다 해도 딸의 옛날 일이 알려지면 혹시 수모라도 당하지 않을까, 어떤 방해라도 받지 않을까, 진심으로 우려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딸에게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갔다. ‘변호사가 되어도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마라. 네게 사건을 부탁하러 오는 사람은 더 큰 괴로움을 안고 오는 사람들일 테니까.’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서른 한살 나이에 변호사가 되는 동시에 또한 오히라 아저씨의 양녀가 되었다. 현재 그는 오사카 변두리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해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형사사건의 8할은 비행청소년 사건이다. 이외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학교에서 요청해 오는 강연 등을 하는데 그의 인기는 최고에 달하고 있다.
어렸을 적 발로 차고 때리고 행패를 부렸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그의 꿈은 어떡하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나 하는 것. 또한 양아버지를 비롯하여 주위에서 등에 새겨져 있는 문신을 지우라고하면 그녀는 고개를 흔든다. 과거란 인위적으로 지운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에게 있어서 과거는 아무 의미가 없고 다만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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