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본부=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의 돌출 발언과 행동이 엄숙한 유엔 총회장에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다.
사상 처음으로 유엔 총회장에 참석한 카다피는 길고 품이 넓은 화려한 리비아 의상을 입고 등장해 `왕중의 왕'으로 소개를 받고 느릿느릿 연단에 올라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 직후였다.
총회 연설은 15분이 할당되지만, 그는 무려 90분 동안이나 연단을 장악한 채 장황하게 얘기를 끌어 나갔다.
프롬프터도 보지 않고, 손으로 쓴 메모지를 가끔씩 보면서 하는 즉석 연설이었다.
카다피는 `아프리카 1천 왕국의 이름으로' 서방 세계에 대해 7조7천700억달러를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나라들로부터 아프리카는 그 돈을 되돌려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유엔에 대한 존경은 없어졌다"고 일갈했다. 특히 `안보리'에 대해 "1945년 유엔 창설이래 약 65개의 전쟁이 있었고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다른 약소국들을 2류국가로 경멸해 왔고 자기들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해 왔다"면서 "안전보장이사회라고 불러서는 안되며 `테러이사회'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바마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찬사를 늘어 놓았다.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를 `아프리카의 아들'이라며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말한 카다피는 "오바마는 향후 4년 또는 8년 동안 어둠속의 희미한 불빛이며 그가 물러나게 되면 우리가 뒤로 후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오바마가 영구히 미국의 지도자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총회장에서는 폭소와 함께 산발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다.
카다피가 속사포 같은 아랍어로 장시간 연설을 하는 통에 이를 통역하느라 기진맥진한 유엔 동시통역사가 중간에 교체되기도 했다.
그의 연설시간은 정확히 1시간 36분이었지만, 1960년에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세웠던 4시간 30분의 기록은 깨지 못했다.
카다피의 연설도중 유엔 총회장은 절반이 자리를 떴고, 그 가운데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수전 라이스 유엔대사도 포함됐다.
연설이 끝난 후 그는 곧바로 퇴장하지 않고 총회 의장석으로 올라가 자신이 욕했던 유엔의 최고 간부들과 일일이 악수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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