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는 1982년 엥글우드 지역에서 구매한 맨션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그러나 엥글우드 지역 주민들은 가다피가 유엔 연설을 위해 이곳 소유지의 '베두인 텐트'에서 머물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 발끈하고 있다.
가다피는 지난주, 270명이 숨진 1988년 항공기 팬암 103편 폭파범이 석방되자 이를 환영했으며, 뉴저지에 살고 있는 미국인 희생자 가족들은 이에 대해 분노했다.
chchtan7982@newsis.com
아프리카의 과일가게(셋) - 리비아의 트리폴리
![]() ![]() 2009/05/15 23:58 |
2008년 6월 세번째로 찾아간
리비아의 트리폴리...
카다피 대령의 깡패국가로만 알고 있었던 리비아엔
눈 여겨 볼 게 참으로 많았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트리폴리에 들를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
먼저 바나나 상인부터 소개할꺼나?
그리고 그 다음엔
나의 정신을 빼앗은 과일&야채 가게...!
그리고 장미꽃을 다듬고 포장하는 동안
내내 웃는 얼굴이었던
트리폴리 중심의 여느 꽃가게 주인장...
"안녕하세요?"
꽃집 안은 조금 어둡지만,
바깥의 햇빛.. 보이시죠?
무척 강렬하답니다.
자아...
내년초봄 꽃샘추위를 피해
리비아로 한번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
아니...
이런 유적이 리비아에 있다고요?
안믿으신다고요?
.
.
.
언젠가 제가 틈이 나면
리비아 해안에 있는
'입을 딱 벌어지게 하는'
고대로마 유적들의 사진을
끝도 없이
또 끝도 없이
보여드릴게요.
세상은 차암 넓죠이?!
[출처] 아프리카의 과일가게(셋) - 리비아의 트리폴리|작성자 승은
지금 가다피의 리비아에는...
![]() ![]() 2009/05/16 09:04 |
한때 북한, 이란 등과 불량국가로 불리던 리비아가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한 이래 국가 이미지를 과감히 변신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외화가 넘쳐나면서 이제 곧 카다피 혁명 40주년을 맞이하게 될 이 나라는 그야말로 전례없는 국가부흥의 최적기를 맞은 셈이다.
원유 매장량으로만 본다면 리비아는 2007년 현재 415억 배럴로서 아프리카에서 확인된 최고 매장량을 자랑한다. 나이지리아와 알제리를 능가하는 것은 물론, 전년도에 비해 24억 배럴이나 증가한 양이다. 리비아의 확인 매장량 증가 추세는 대륙별 석유매장량 변동 추이를 볼 때 아프리카 지역이 ’86년 6.6%, ’96년 7.1%, ’06년 9.7%로 늘어나면서 전 지구촌을 통털어 가장 빠른 확대 추세를 보인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번영보다는 안정을 선호했던 리비아, 그 리비아가 꿈틀대고 있다.
이웃나라 알제리에 비해 5분의 1도 채 안되는 인구를 갖고도 아프리카 마그레브 제국의 맹주를 꿈꾸는 리비아. 트리폴리를 방문해 고자세로 일관하는 리비아를 접하는 외국 투자가들은 그러한 오늘날의 리비아를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잘 알고 있다.
지난 3년간 입찰에 부쳐진 광구만 해도 무려 100여 개에 달한다. 중국에 못지않게 원유 광구 사냥에 나선 일본도 리비아에서만 2006년 한 해 동안 6개 광구를 확보하였다.
서방과의 화해시대에 접어들자 리비아는 석유개발과 기간시설 투자에 올인하고 있다.
한국으로 하여금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앞당겨줄 전략적 시장일 수 있는 리비아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정책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원조 자금을 쏟아부을 역량은 없으나 한국형 압축성장모델은 이미 리비아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인 한국은 전자제품이나 차량으로 그 우수성을 확인했다.
더욱이 리비아는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한국의 친구’ 그룹에 속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1990년대 초부터 진출했던 우리의 건설업체들이 건재하고, 특히 20여 년에 걸친 대수로공사의 기적을 이룬 동아건설(현 금호건설?)이 여전히 대우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세계에서 독재자로 비난 받아온 카다피가 이번 유럽 순방에서 예상 밖의 환대를 받았다는 소식은 우리가 실리를 우선시하는 경제이익 중심 국가전략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한다.
[출처] 지금 가다피의 리비아에는...|작성자 승은

이날 WSJ는 1면에 알-메그라히가 리비아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사진과 팬암 항공기의 잔해 사진을 나란히 싣고 “미국과 영국의 유족들이 이번 조치에 분노, 항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족 대표인 프랭크 더간씨는 “희생된 승객들의 가족들은 이번 일로 눈물과 비탄속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저널은 스코틀랜드 당국이 전립선암을 앓고 있는 알-메그라히가 죽기 전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관용 차원에서 석방했으며 이 과정에서 리비아가 적극적으로 로비를 펼쳤다고 소개했다.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가다피는 혁명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알-메그라히의 석방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세계에서 가장 흉악한 테러리스트로 기소된 범인의 석방으로 미국인들은 분노를, 리비아인들은 환호하고 있다. 유족들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희생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의 유족들은 알-메그라히가 여생을 감옥에서 마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영국의 유족 일부는 그가 무고하다고 믿고 있다.
일명 '로커비 폭탄테러'로 불리는 팬암항공기 테러사건은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1988년 12월21일 런던 히드로 공항을 떠나 뉴욕으로 향하던 팬암 항공기가 스코틀랜드 로커비 마을 상공에서 폭발, 승객과 승무원 259명과 기체 잔해로 주민 1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미국 승객 189명은 대부분 크리스마스 휴가차 집에 가던 길이었다.
리비아 정보요원인 알-메그라히는 체포 후 두 차례 기소됐고 줄곧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20일 진술서를 통해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고 범행을 부인하고 “희생자의 유족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상실을 당한 것에 대해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 수사관들은 잔해에서 폭탄이 들었던 것으로 보인 가방을 추적한 결과, 몰타에서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고 가방을 판매한 토니 가우치씨는 알-메그라히가 구입한 사람이 맞다고 증언했다. 또한 폭탄에 장착된 타이머는 스위스 회사 제품으로 리비아와의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상당수 영국인 희생자 유족들은 당국이 알-메그라히의 재판에 집착할 게 아니라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가우치씨의 증언이 정확성이 결여됐으며 알-메그라히가 배심원을 통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부 영국인 유족들은 이 사건의 배후는 이란과 시리아에 본거지를 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있으며 리비아는 서방 세계의 제재 등 압력에 못이겨 알-메그라히를 넘겨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브리튼 마틴 캐드맨 씨는 “알-메그라히가 이 사건과 관계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석방 소식을 들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승객들의 유족들은 대부분 알-메그라히가 공정하게 진행된 재판에서 유죄가 입증됐다는 입장이다. 당시 테러에서 딸 다이앤(30) 씨를 잃은 스탠 마슬로스키씨는 “만일 맥카스킬(법무장관)의 딸이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어도 그의 입에서 관용이란 단어가 나왔겠느냐?”고 분노를 터뜨렸다.
저널은 스코틀랜드 당국의 움직임은 리비아와 서방세계의 해빙무드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과거 리비아는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자국 내 유전 개발을 영국 등 서방 기업들에게 개방했다. 영국의 한 외교관은 “리비아에게 뭔가 답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층 달라진 양국 관계를 과시했다.
그러나 이번 석방은 전적으로 맥카스킬 장관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영국에 대한 의존적인 경향을 배격하는 스타일이다. 스코틀랜드는 지난 10년 간 사법 문제들을 포함해 많은 분야에 대해 영국의 입김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영국법에 따르면 죄수에 대한 관용 조치는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석방이 공공의 안전을 해할 우려가 없다고 판단될 때 취할 수 있다.
알-메그라히는 20일 글래스고 공항에 리비아 정부가 보낸 전세기에 탑승했고 트리폴리 공항에 도착했을 때 리비아 국기와 스코틀랜드 국기를 양 손에 든 리비아인 몇 명이 그를 환영했다. 그의 석방은 이슬람의 성스러운 달인 라마단 기간 이뤄져 극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팬암 항공기 유족인 마슬로우스키씨는 “21년 전 그날 사건 이후 처음으로 울면서 잠자리에 들었다”고 비통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는 메그라히와 가다피가 한 일을 완전히 알아낼 때까지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