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과사전
김자경오페라단 1968년 소프라노 김자경(金慈璟)이 창설한 민 영 오페라단. 신인의 발굴·데뷔에 목적을 두고 있다. 1968년 베르디의 대표적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첫 공연한 이래 《마농 레스코》 《로미오와 줄리엣》 《토스카》 《나비부인》 《아이다》 《원효대사》 《사랑의 묘약》.. 더보기
- · 김자경오페라단 40돌기념 '카.. · 김자경오페라단 40주년 기념 '.. · 그랜드 오페라 참맛 보여줘 · 오페라 카르멘의 힘 · 광복절과 오페라 ... 오페라 . 사라 브라이트.. 발매일 2006.09.29. 가격 16,500원. 김동규 ...
- www.opera.or.kr (44k) 이 사이트에서 더보기 | 저장된 페이지
김자경(金慈璟) |
|
예술가명 |
: 김자경(金慈璟) |
|
생몰년도 |
: 1917년 9월 9일~1999년 11월 9일 |
|
분야 |
: 성악가 |
|
전공 |
: 성악 | |
김자경은 1917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약제사 시험에 합격한 후 개성 갓골에 약방을 내게 되어 개성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김자경이 태어났다. 3년 여를 개성에서 약방을 하면서 열심히 교회에 나가던 아버지가 선교사의 권유로 감리교 협성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어 이들 가족은 다시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아버지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전도사와 한방의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지방으로 돌아다녔는데, 어머니는 16세 때 시집와 1년 후인 17세에 김자경을 낳았고 그가 대학에 들어간 직후 어머니가 나이 38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김자경은 무남독녀 외동딸로 어머니 없이 대학생활을 해야 했다. 춘천에서 자란 그는 서양 선교사에게 피아노를 사사하고, 루씨여고에서도 계속 피아노를 쳤는데 그는 팔방미인으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여러 가지 능력들이 한꺼번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피아노, 노래뿐만 아니라 육상종목에서부터 정구, 탁구 등에 이르기까지 선수로 활동했고 피겨스케이트로부터 스키까지 했으니 무엇을 하든지 모든 힘을 다하는 정열적인 성격은 후일 그가 우리 음악계에 끼친 많은 공로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화여전 피아노과로 입학한 그는 음악회 때마다 독창을 맡아 하며 그 기량을 발휘했다. 결국 학교에서도 졸업반이 되자 “너는 성악과 피아노 양 과의 졸업을 인정하겠다”고 해서 전 장학금을 받고 성악과로 전과, 채선엽 교수로부터 집중적인 레슨을 받아 1940년 이화여전을 졸업했다. | | |
|
|
 |
상훈 | |
|
1974년 9월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1974년 10월 대한민국문화훈장 은관 수상 1976년 10월 중앙일보문화대상 수상 1983년 2월 국민훈장석류상 수상 1984년 10월 올해의음악가상 수상 1987년 10월 세종문화상 수상 1992년 11월 프랑스문화예술훈장 수상 1993년 12월 체육부장관으로부터 문화공로패 수상
| | | |
|
|
|
 |
공연 | |
|
1940년 조선일보사 주최 신인음악회 출연 1940년~1948년 서울 및 지방 독창회 6회 1941년 일본 빅터 레코드 취입 1948년 한국 최초 오페라 <춘희> 주역 1950년 미국 뉴욕카네기홀에서 한국인 최초 독창회 1950년~1958년 미국 각 주 80여 도시에서 100여 회 순회독창회 / 미국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 가수들과 하기순회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카르멘> 1958년~1992년 서울 및 지방 독창회 60회 1959년~1979년 한국가곡 및 민요 취입 1960년 오페라 <오텔로> 주역 1962년 국제음악제 독일 오페라 내한 <피델리오> 출연 1968년~1987년 김자경오페라단 창단 이래 29년간 정기공연 52회 및 지방 및 소극장공연 400여 회 1971년~1989년 국제음악인대회(I.M.C) 한국대표로 9회 참석 1975년~1997년 한국가곡 독창회 19회 1979년 김자경오페라단 오케스트라 창단 1981년 청소년합창단 25명 인솔 전미 순회연주 1982년 여선교회 창단 40명 동남아 순회연주 1983년 오페라 연구차 유럽(영국, 프랑스, 이태리, 독일) 방문 1987년 미국 뉴욕카네기홀 독창회 1988년 미국 뉴욕카네기홀 독창회 1991년 결혼 50주년 기념 독창회(서울 및 부천) 1992년 일본 동경가꾸라사까도모노회관에서 한국가곡 독창회 1992년 미주순회공연 1993년 김자경오페라단 종교부 창설 1993년~1997년 김자경오페라단 종교부 합창단 제3회 정기공연 1996년 김자경오페라단 국제부 창설
| | | |
|
|
|
1948년 해방 후 처음으로 우리의 손에 의해 오페라 <춘희>가 무대에 올려진 이래 40여 년이 흐르면서 우리 오페라계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고 특히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창단한 김자경오페라단은 이 나라 오페라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 특히 오페라 운동에 모든 것을 바쳐온 김자경 선생의 업적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선생이 항상 부르짖던 오페라 전용극장의 탄생이 현실로 나타나 개관축하공연으로 오페라 <카르멘>을 무대에 올리게 되었으니 그 감회는 참으로 남다른 뿌듯함으로 꽉 차 있으리라 생각된다. 종합예술로서의 오페라는 음악 이외에 전문적 기능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문화적 선진국에서는 멋진 오페라극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크게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오페라를 만들어도 이를 수용할만한 전문극장이 없다면 그건 결코 종합예술로서의 감동을 나누어줄 수 없다는 점에서 예술의전당 서울오페라극장의 개관은 드디어 우리도 오페라다운 오페라를 맛볼 수 있는 문화적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문관에 대한 간절한 염원은 일반 애호가들보다 오페라를 만드는 제작자들에게 더욱 간절한 것이었고 그래서 <카르멘>을 무대에 올리는 김자경오페라단의 각오는 각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오페라하우스의 개관 공연으로는 세 편의 오페라가 선정되었고 그 중에서 두 편은 이미 공연이 끝났지만 대중과 가장 친밀한 공감 속에서 축제의 의미를 나눌 수 있는 것으로는 <카르멘>의 무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 | |
|
|
|
 |
관련사이트 | |
| |
|
|
- 대한민국예술원 |
- 김자경: 타계한 인물: 세계 연감 2000"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 김자경오페라단 | | |
|
|
 |
관련도서 | |
|
<한국예술총집 음악편>, 대한민국예술원, 1998 <우리 양악 100년>, 이강숙, 현암사, 2001 <우리 국악 100년>, 한명희, 현암사, 2001 <기억하고 싶은 선구자>, 한상우, 지식산업사, 2003 | | |
한국의 민간 오페라단. |
|
구분 |
|
오페란단 |
설립연도 |
|
1968년 |
소재지 |
|
서울 |
설립목적 |
|
오페라 인구의 저변확대, 신인 발굴과 데뷔 |
주요활동 |
|
오페라 공연 | |
1968년 소프라노 김자경(金慈璟:1917~1999)이 중심이 되어 서울에서 창단하였으며,
오페라 인구의 저변확대와 신인 발굴과 데뷔에 목적을 둔다.
같은 해 5월 서울 시민회관에서 창단 공연으로 베르디의 《춘희》를 공연한 이래 계속하여 베르디의 《리골레토》 《아이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 《토스카》 《나비부인》,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비제의 《카르멘》,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장일남의 《원효대사》, 김동진의 《심청전》 등 많은 작품을 공연하였다.
한국의 오페라 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며,
특히 오페라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에 공이 크다.
창단자 김자경 (1917-1999)은 경기도 개성 출생으로 1940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성악을 익혔다.
1948년 미국 줄리아드학교, 1965년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음악학교를 졸업하였다.
1948년 한국의 첫 가극인 《춘희》에서 주인공을 맡았고, 1984년 오페라하우스를 설립하였으며, 1991년 김자경 오페라단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대한민국 예술원상과 문화훈장(은관),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을 수상했다.
2000년 6월 현재 김자경오페라단의 이사장은 이정순(李貞順.:55세:한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