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수암골

그린페 2009. 7. 9. 01:12

090618_아름다운한국 KOREA GEOGRAPHIC

골목비경 | 충북 청주 수암골

피란민 정착지에서 벽화마을로...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수암골. 청주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마을은 2007년 고목마다 벽화가 그려지면서 화사하게 재탄생했다.

드라마 <카인과 아벨>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방문객도 부쩍 늘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암골목 1번지. 일명 ‘수암골’로 불리는 곳이다. 우암산 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청주의 대표적인 달동네이기도 하다. 수암골은 최근 들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수암골’이라고 치면 사진이 꽤 올라온다. 허름한 담장에 갖가지 예쁜 벽화가 그려진 사진, 꼬불꼬불한 골목길 사진이 뜬다. 배우 소지섭과 한지민의 사진도 찾아볼 수 있다. 드라마 <카인과 아벨>을 찍은 덕택이다. 극중 초인(소지섭)과 영지(한지민)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터전으로, 애틋한 사랑이 싹튼 곳으로 소개되면서 방문객들이 부쩍 늘었다. 수암골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카인과 아벨 촬영지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을 입구에도 역시 ‘카인과 아벨 촬영지’라고 씌어진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전쟁 당시 피란민 정착촌으로 만들어져

차는 반듯하게 닦인 길을 따라 순식간에 수암골 입구에 도착했다. 길은 복잡하지도, 번잡하지도 않았다. 얼마 전 마을이 자리 잡은 우암산 자락을 에두르는 우암 순환도로가 생긴 덕택이다. 길은 제법 경사가 있는데 길이 닦이기 전 걸어 다니려면 꽤나 힘들었겠다 싶다. 마을 앞에는 차 5~6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입구에 ‘삼충상회’가 있다. 수암골에서 유일한 가게다. 담배와 음료수, 과자 등을 판다. 짙은 푸른 페인트칠을 한 간판이 예쁘다. 빗물받이에도 꽃 그림을 그려놓았다. 삼충상회 앞은 공터. 마을 사랑방 겸 회관 구실을 한다. 백발의 노인 서너 분이 앉아 계신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드리니 웃는 얼굴로 맞아주신다. “잘 왔네. 오늘 날씨가 좋아서 골목 돌아보기 좋겠다”며 손가락으로 골목 입구의 담벼락을 가리킨다. “저기에 골목 지도가 그려져 있으니 그것 보고 따라가면 돼요.” 지도를 보니 골목의 모양이 대충 그려진다. 골목은 밤톨처럼 생겼다. 찐빵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마을을 둘러싼 큰 길이 있고 큰 길 아랫부분에서 네 개의 골목이 갈래를 친다. 네 개의 골목은 마을 속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밭 전 자() 모양으로 나뉜다.

 

수암골은 한국전쟁 이후 만들어졌다. 울산 23육군병원 앞에 천막을 치고 살던 피란민들이 청주로 이주하면서 생겨났다. “여기 흙으로 벽돌을 한 장 한 장 찍어 집을 지었지. 2, 부엌 하나를 들였어.박만영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그때 집을 튼튼하게 지었지. 판자로 얼기설기 엮은 집과는 달랐어”. 지금 수암골에 있는 집들의 모양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다. 70년대 이후 주택 개량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담을 새로 올리고 골목 바닥 보수공사를 했지만 집의 형태는 그대로다. 수암골은 몇 년까지만 해도 쓸쓸한 달동네였다. 잿빛 시멘트 담을 두르고 슬레이트 지붕을 인 집들이 좁은 골목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마을은 2007년 이후 달라졌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이홍원 화백을 비롯한 충북민족미술인협회 회원, 충북 민예총 전통미술 위원회 회원 작가, 청주대, 서원대 학생들이 ‘추억의 골목 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벽화를 그렸다. 무채색의 스산한 골목은 각종 그림으로 꾸며진 산뜻한 골목으로 재탄생했다.

 

벽화골목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카메라를 든 네티즌들이 하나둘씩 찾기 시작했다. 드라마도 찍었다. 요즘에는 평일이건, 주말이건 사진동호인들이 몰려든다. 미놀타 필름카메라를 들고 골목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강영식 학생은 “골목의 느낌을 담기에는 필름 카메라가 제격인 것 같다. 수암골의 아늑한 분위기가 좋아 두 번째 왔다”고 했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 세 명도 벽화가 그려진 담장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로모, 다이아나플러스, 홀가 등 토이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도 더러 있었다. 요즘에는 일본인 관광객도 알음알음 찾아온다고 한다.

 

 

사람 사는 정이 느껴지는 골목

수암골은 작다. 느긋하게 돌아보아도 20~30분이면 충분하다. 지도가 그려진 길을 지나 골목길을 올라가면 벽화를 하나둘 만날 수 있다. 연꽃이 그려진 벽, 익살스런 호랑이가 그려진 벽, 암탉이 병아리를 데리고 가는 그림이 그려진 담장도 있다.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고, 시원한 바다가 그려진 담장, 발레리나가 그려진 벽도 있다. 꽃잎이 새겨진 계단은 통째로 들어내 가고 싶을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예쁘다.

굳이 벽화가 아니더라도 수암골 골목길이 지닌 풍경은 놀랍다. 전깃줄 수백 가닥이 얽히고설킨 전봇대가 서 있고 사람 한 명이 지나기에도 힘겹게 보이는 좁은 길도 있다. 집 앞에는 파와 상추를 심어놓은 화분이 놓여 있다. 화분도 알록달록하게 색칠했다. 대문 너머로 강아지 짓는 소리가 들리고 골목 담벼락에는 양철 보일로 된 환기구가 버젓이 드러나 있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아이가 골목길을 뛰어가기도 한다. 전망도 참 좋다. 박영옥 할머니는 “저녁이면 해가 홍시같이 떨어진다. 청주에서 수암골 보다 더 전망 좋은 곳은 없다”고 자랑한다. 실제로 수암골에 서면 청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재개발은 안 할까? 골목에서 만난 김상근 할아버지는 “재개발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했다. “저기 우암 순환도로 때문에 고도제한이 걸려 있어 개발업자들의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삼충슈퍼 앞에 모여 있던 할머니들도 “언젠가 하겄지유”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재개발로 인한 갈등이 없는 탓인지 마을은 평온하다. 할머니 몇 분이 어울려 마을 앞 텃밭에서 상추를 딴다. “상추가 그새 많이 컸네.” “며칠 밭에 안 왔더니 그런가벼.” “오늘 저녁에는 상추쌈 푸지게 먹게 생겼네.” 하는 말소리가 들려온다.

저녁이 되면 수암골은 부산해진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골목으로 나온다. 줄넘기를 하고 배드민턴을 친다. 된장찌개 끓이는 냄새가 퍼진다. 골목에다 텔레비전을 내놓은 집도 있다. 주민들이 모여 드라마를 함께 보며 삶은 고구마를 나눠 먹는다. “여기가 수암골 극장이요. 상영시간은 해질 때부터 10까지. 저기 시내에 보이는 ‘대한생명’ 간판이 딱 10 꺼지거든. 그때면 텔레비전 끄고 자러 들어가요.”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를 수없이 반복하는 나라, 불도저에 떠밀려 역사의 나이테가 사라져버리는 나라 한국. 이 땅 어딘가에 아직도 이런 골목, 이런 풍경이 남아있다는 걸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아쉬워해야 하는 걸까.

 

 

작가 갤러리

 

할머니의 당부

 

여기가 수암골 극장이요

 

피아노 건반 골목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

 

수암골은 청주 스카이라운지

 

옹기종기 다닥다닥

 

골목길에서 얻은 것

 

섬, 수암골

 

여기가 고향이야

 

혼자만 알고 싶은 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