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충남 당진군 일대 20만8000평 부지에서 공사 하나가 시작됐다. 동국제강이 이 곳에 차세대 공법을 도입한 후판(선박 제조에 사용되는 두꺼운 철판) 생산공장을 짓기로 하고 공사 원재료 등을 적재하는 시핑 야드(shipping yard)를 착공한 것. 공사기간 2년6개월, 투자규모 7600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공장이 완공, 풀가동되는 2012년이면 동국제강은 연 150만t의 후판을 추가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동국제강이 포항제강소와 부산공장, 인천공장을 총동원해 생산할 수 있는 봉강(강철 덩어리나 조각을 압연하여 막대 모양으로 만든 제품), 형강(자르는 면이 일정한 형상으로 된 압연강철재), 후판의 총량은 연간 562만t 규모. 당진공장은 여러 모로 동국제강의 대내외적 입지를 확고하게 해줄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공사가 무사히 첫 삽을 뜰 수 있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초 동국제강 측이 한국산업단지공단에 제출한 당진공장의 투자계획서에 따르면 공장 건립에 소요되는 총 투자금액은 1조3400억원 규모. 그룹이 비축한 내부유보금을 감안하더라도 자체적으로 조달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외자유치를 대안으로 정하고 적당한 파트너를 물색하던 동국제강이 떠올린 것은 세계 3대 철강업체 중 하나인 일본 JFE스틸이었다. 1999년부터 유지해오던 양사의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 ‘포괄적 제휴’라는 이름으로 투자를 이끌어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동국제강이 염두에 두고 있던 ‘고급화·차별화된 후판 생산’을 위해서도 JFE스틸의 선진기술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장세주 회장은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당시 경영전략실을 진두지휘하던 동생 장세욱(45) 상무에게 ‘JFE스틸과 협상’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긴 것.
그러나 2004년에 이루어진 첫 번째 제안은 보기 좋게 거절 당했다. 동국제강의 후판공장 건설을 지원할 경우 자사 입장이 위축될 것을 우려한 JFE스틸은 선뜻 나서지 않고 몸을 사렸다. 야심만만하게 출발한 협상은 2005년 하반기가 되도록 지지부진했다. 장세욱 상무가 본격적으로 협상에 팔을 걷어붙인 것도 그 즈음이었다. 장 상무는 출퇴근하듯 틈만 나면 일본 JFE스틸 본사를 방문했다. “철강시장이 고급화되고 있어 당진공장과 같은 선진설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업계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한국이고,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을 따돌리려면 기술과 자본 제휴를 통한 상생만이 살 길이다” “오래 지속돼온 동국제강과 JFE스틸의 동반자 관계를 앞으로도 이어나가자.”
장 상무는 꼼수 부리지 않고 정연한 논리를 앞세워 끈질기게 JFE스틸 실무진을 설득했다. 한국과 일본 오가기를 수십 차례, 마침내 JFE스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 지 거의 1년 만이었다. 결국 2006년 9월 25일 동국제강과 JFE스틸은 상호출자를 통한 당진공장 건설과 고급 후판 제조기술 공유, 슬래브(쇳물을 부어 만든 철판, 후판 이전의 반제품 상태) 장기공급 및 구매에 관한 협력 확대 조인식을 갖는 데 성공했다. 이 조인식을 계기로 JFE스틸은 동국제강 주식 919만9317주(14.88%)를 매입,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 드라마틱한 협상의 일등공신은 물론 장세욱 상무였다. 이후 그는 전무이사를 거쳐 올 1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장세욱 부사장은 동국제강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의 손자이자 고 장상태 2대 회장의 막내 아들이다. 장 부사장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출신 대학. 그는 1985년 육군사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41기) 1994년 소령으로 예편했다. 그의 육사 진학에는 “남자가 국가에 헌신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부친 장상태 전 회장의 가르침이 큰 영향을 끼쳤다.
꼼수 안 부리고 논리로 정면 돌파… JFE스틸과 전략적 제휴 이끌어
직원 생일 챙기고 연극에도 출연, 소탈한 성격으로 기업문화 바꿔
형 장세주 회장을 경영 스승으로, ‘형제 경영’ 재계에서도 화제
예편 직후 그는 전남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당시 직함은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 과장. 1년 정도 실무를 익힌 후에는 미국 LA지사로 근무지를 옮겼고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이수했다. 가족은 부인 김남연(43)씨와 1남1녀. 아내와는 군인 시절 친구 소개로 만나 연애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 김씨의 부친은 산업은행 총재와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한 김흥기씨다.
1999년 그가 미국에서 귀국할 당시 동국제강은 부산 용호동 시대를 마감하고 포항에 새롭게 제강소를 준공,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철강 기업의 경쟁력은 공장에서부터 비롯된다”며 포항제강소 근무를 자원했다. 그렇게 ‘지원실 부장’으로 시작된 그의 포항 근무는 포항제강소가 안정궤도에 오른 2004년 8월까지 5년 이상 계속됐다.
“2004년 동국제강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본사에서도 여러 가지 행사가 마련됐지만 장세욱 당시 부소장 지시로 포항제강소에서도 자체 행사를 기획했어요. 대표적으로 직원들이 직접 출연한 연극이 있었죠. 포항 시내 체육관 한 곳을 빌려 직원 가족까지 모두 불러 공연했는데 부소장님이 카메오로 출연하셨어요, 공장 경비원 역할로. 상대역이었던 부하 직원이 ‘어이, 장세욱씨!’ 이런 대사를 아무렇잖게 했는데 그것도 부소장님 아이디어였다고 하더라고요. 한마디로 난리가 났었죠.(웃음)”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이 직원은 “장 부사장은 자리에 따라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소탈한 사람”이라며 “직원 간 단결과 열린 문화를 늘 강조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장 부사장은 회사 안팎에서 포항제강소의 새로운 기업문화를 일구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격무에 지친 직원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사내 축구팀을 결성하고 공장 내에 국제규격을 갖춘 풋살 구장을 만들어 직원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한 것도 그였다.
동국제강 포항제강소 축구팀의 실력은 지역사회에서 꽤 알려져 있다. 시장기배쟁탈대회에서 포스코를 제치고 우승도 여러 번 했다.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한 그는 수차례 직접 그라운드를 누비며 직원들과 땀을 흘렸다. 여직원을 주축으로 자원봉사단이 창설됐을 때도 아낌없는 지원으로 봉사활동을 도왔다. 매월 하루를 ‘영화의 날’로 정해 시내 극장을 통째로 빌려 임직원 및 가족을 초청해 영화를 관람하게 하기도 했다.
직원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그의 성격은 본사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요즘도 그는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이면 오전 11시30분쯤 불쑥 한 부서 사무실에 들러 “약속들 없으면 점심 같이 하자”며 깜짝 제안을 한다. 그 부서 여직원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정해 식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기본 코스. 단 그렇게 점심을 먹을 때는 꼭 회사 공금이 아닌 자비로 계산한다. 이에 대해 한 직원은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는 원칙이 분명한 것 같다”며 “그럴 때 보면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군인 출신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고 귀띔했다.
한 달에 한 번 장 부사장이 이끄는 경영전략실에서 열리는 생일파티도 재미있다. 그 달에 생일이 있는 직원을 모아 케이크를 먹고 담소도 나누는 이 자리에서 장 부사장은 꼭 생일선물로 당사자가 읽고 싶어하는 책을 미리 조사해 선물한다. 소위 시절 자신이 모시던 상관이 하던 방법인데 좋아 보이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실 장 부사장의 외모만 봐서는 직업군인이었던 그의 전력을 선뜻 파악하기 어렵다. 오히려 일반 임원보다 더욱 생각이 깨어 있고 자유분방하다는 것이 한결같은 평이다. 한 직원이 들려준 에피소드. “한번은 연말 송년회 때 장 부사장님이 직원과 노래방에 갔습니다. 그런데 웬만한 젊은 친구도 모를 랩 섞인 최신 유행가를 너무 잘 부르시더라고요. 비결이 뭐냐고 했더니 송년회를 위해 며칠 전 친구와 노래방에서 연습했다고 하시는 거예요. 한 3시간 정도…?”
요즘 뜨는 유머시리즈 몇 가지를 외워 직원에게 얘기해주는 것도 장 부사장의 특기다. 이에 대해 한 측근은 “한 업종에 오래 종사하다보면 사람도 그 업종을 닮아간다. 우리 회사의 경우 ‘철’이라는 강한 소재를 다루다보니 상사나 임원과 대화할 때 긴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장 부사장은 그 서먹함을 유머로 풀어내는 재주를 지닌 분”이라고 이야기했다.
장 부사장은 고 장상태 회장의 2남3녀 중 막내다. 맏형인 장세주 회장과는 아홉 살 차이가 난다. 장 부사장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99년 당시 장상태 회장은 병세가 깊어 막내 아들의 경영수업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다. 결국 장 부사장의 경영 스승은 장세주 회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장 부사장은 형인데도 회사에서 장 회장을 깍듯하게 모신다. 둘이 함께 중역 보고를 받을 때도 대화는 ‘회장님’이라는 명칭과 ‘~합니다’로 이루어진다는 게 주위의 설명이다. 장세주 회장 역시 그룹의 발전 전략을 짜는 핵심 업무를 동생에게 전적으로 일임하며 ‘동생’이 아니라 ‘경영 동반자’로 신뢰하고 있다. 재계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동국제강의 ‘형제 경영’ 뒤에는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라는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장세욱(張世郁)
1962년 12월 15일생
1981년 환일고 졸업
1985년 육군사관학교 영어과 졸업
1994년 소령 예편
1995년 전남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6년 동국제강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 과장
1997년 동국제강 미국 LA지사 근무
1998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졸업(MBA)
1999년 동국제강 포항제강소 지원실장(부장)
2004년 동국제강 전략경영실장(상무이사)
2005년 동국제강 경영혁신추진본부장
2007년 동국제강 전략경영실장(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