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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미술사

그린페 2009. 2. 21. 23:11

   중국 미술사

중국의 미술은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자연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이 혼연일체가 된 독특한 미술 세계를 전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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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殷)·주(周) 시대에는 청동기가 발달하였다. 중장하고 화려한작품으로 가득한 이 시대 조형미술의 전통은 그 이후 고대 중국미술의 지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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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한(漢) 시대에는 옛 무덤의 벽화와 만리장성이 축조되어 그때의 생활상과 뛰어난 기술을 알 수 있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에는 인도로부터 불교 미술이 전래되어 돈황에 석굴 사원이 축조되었고 불교 조각이 성행하였다. 중국 미술에 있어 돈황의 석굴미술은 동서 문화 교류를 고찰하는 실마리를던진다. 돈황의 석굴은 서역을 지나 돈황에 도착한 소조 미술을 중국 본토에 정착시키는 역할을 하였으며, 색의 농담에 의한 음영법이 서방에서 전래되어 중국 회화계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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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隋)·당(唐) 시대는 불교 미술의 전성기이며 중국 미술의 황금기이기도 하다. 북종화와 남종화가 등장했으며 전통적인 중국조각의 성격이 정립되었다. 당대(當代) 수묵화는 서방회화의 채색대신 먹을 사용하였고, 단순히 대상을 감각적으로 본뜨는 것이아니라 대상의 생명을 본뜨는 정신을 으뜸으로 여기는 근본정신이 확립되었다.

1. 선사시대 (先史時代)

중국에서 예술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조형물이 출현한 것은 신석기시대 후기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인류의 생활은 있었다. 북경 주구점에서 발견된 북경원인은 40∼50만년 전에 불을 사용했다. 용골산 원인동에서 출토한 석기는 10만점에 달하여 작은돌조각이 상당수지만 정교한 첨두기가 있다. 구석기 후기로 가면 붉은 조개껍질의 윗부분을 갈아 구멍을 뚫은 것, 새들의 뼈를 작게갈라서 갈아 선각(線刻)한 것 등이 있었다.
신석기 시대는 석기가 주로 생산도구로 쓰인 데 반해 토기는 주로 생활용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토기의 제작이야말로 본격적인 미술의 창조였다.


2. 은과 주시대
중국의 미술은 오늘의 하남성을 중심으로 황하 유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시기상으로 보면 은(殷)과 주(周) 시대는 중국의 청동기 문화에해당한다. 은(殷, B.C.1300년경)시대와 주(周,B.C.1000년경)시대는 옥기(玉器), 토기, 동기(銅器)등의 형태가 다양하고 정교하다.


(1) 은(殷), 주(周)시대 건축과 조각

은(殷)시대 초기부터 흙을 다져서 만든 토단 위에 목조의 궁전건축이 지어졌다.
은(殷)시대 중기 유적이 있는 정주에서는 흙을 다져서 만든 성벽이,후기 안양에서는 깊은 도랑이 발견되었다. 상형 문자를 통하여지상 건축물에 나무로 된 지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주(西周) 시대에는 기와가 출현한다. 또 은(殷)시대 후기의 것으로 그릇의 발이라고 생각되는 호랑이, 올빼미 등의 모양을 한 대리석 환조가 있는데 양식화 경향이 강하다. 같은 시기에 코뿔소나 숫양, 송아지, 코끼리 등의 모양을 본 딴 연옥(軟玉)의 소품이나 청동기가 있는데, 이것들은 각 동물의 특징을 잘 포착하고 있다.


중국 최초의 우수한 기법과 괴기하고 미려하게 새긴 도안 무늬는 다른 시대에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주로 자연신교 사상에서 나타난 구름, 비, 번개, 물결무늬등과 다복안락을 표시하는 괴기하고도 복잡한 무늬와 용,호랑이, 부엉이, 꿩 등의 동물 무늬등은 전아한 고전미를 보여준다.


(2)은(殷), 주(周)시대 회화와 공예

은(殷)시대 후기에 깊은 통 모양의 그릇 4∼5개를 하나로 묶어서 화구(畵具)를 넣어두었던 것이 알려져 있지만, 그림 그 자체가 남아있지는 않다.
점을 볼 때 사용했던 동물의 견갑골에 사슴, 코끼리, 원숭이를선각한 회화가 약간 알려져 있는데 거침없는 선으로 이들 동물을 능숙하게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은시대 초기부터 청동기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은·주 시대의 청동기에는 이기(利器)와 병기(兵器)가 있다. 이기(利器)는 제기(祭器)로서 주기(酒器)·식기(食器)·수기(水器)·악기(樂器)로 분류되지만 각각 여러 종류의 다양한 기물이 있으며, 예술적으로 매우 뛰어나 세계의 청동 제품 가운데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주나라 때에 청동은 길금(吉金)이라고 불렸으며, 그러한 기물들에 새겨진 문자, 즉 금문(金文)은 그 시대의 역사나 예악을 연구하는데귀중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
도기·도자기 가운데는 대개 회색의 무유도(無釉陶)가 널리사용되었지만, 녹갈색 또는 등록색의 회유를 칠한 경도(硬陶)가만들어져 후대 청자의 선구를 이루었다.


은(殷)나라 때에 칠은 무기류나 목관에 바르는 정도였으나, 서주시대(西周時代)에 이르러서는 칠기(漆器)가 그릇으로 사용된다. 동물 뼈, 뿔, 상아 등도 주걱이나 비녀, 그릇을 만드는데사용되었다.

2. 춘추전국시대 (春秋戰國時代)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이른 중국고대의 변혁시대이다.
은(殷)·서주(西周) 시대의 제도를 이어받아, 토단 위에 목조건축이 지어졌다. 높은 토단 위에 몇 층의 목조에 기와를 얹은궁전이 지어졌다. 전국시대에는 동근 통기와의 앞부분에 반원형의 와당을 붙이고, 동물이나 수목 등 다양한 문양을 덧붙이는 양식이 시작된다.


춘추시대는 양식화된 조각으로서 목조, 칠도(漆塗), 채색한 괴수형의 분묘 수호신이 남아 있으며 자연의 모사, 생명을뛰어나게 표현한 것으로 기물을 장식하는 동물형 환조 등이 있다.


전국 시대(戰國時代)로 내려오면 그 유물에서 출토지도 확산되고 출토자료도 풍부해지는데 특히 동제(銅製) 조각에는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들이 다수 나타난다. 우선 하남성 금촌 출토의 말과 매사냥 인물상등을 들 수 있고 하남성 이현에서 출토된 동제인물상이 있는데 단순하고 꾸밈없는 조각이면서도 양감을 보이는점이 주목된다.


춘추시대 후기에서 전국시대에 걸치는 청동기의 장식에 그림자그림 형식 및 선각으로 된 회화적 표현이 남아 있어 일부회화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주제는 궁전에서 열리는 연회나 오락, 사냥, 전쟁, 귀신 등으로 주로측시형(側視形)의 표현을 하며 측면상의 여자 및 봉황, 용을 먹으로그린 전국시대의 비단그림이 유명하다.


춘추시대 전기에는 청동제의 무기로 창, 방패, 칼, 청동제 화살촉이만들어졌으며 청동 그릇은 서주 시대 후기와 같은 종류가 제작되지만 조잡하게 만들어진 것도 많다. 중기에는 문양이 점차 세밀해지면서 바탕무늬같은 것으로 변한다.
또 가죽 허리띠를 잠그는 구(鉤)와 거울이 많이 제작된다.


도기는 분묘 부장품 가운데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장례용의 명기가 많다. 진흙질 회도(灰陶), 모래가 섞인 거친 회도(灰陶),진흙질 홍도 등이 있으며 회도(灰陶)가 주류를 이룬다. 방격문(方格文), 능형문(菱形紋), 우상문(羽狀文) 등의 인문(印文)이있으며 몸통이 둥글게 부푼 항아리가 주류를 이룬다.

3.진(秦)·한(漢) 시대

이 시대는 봉건사회로서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외래 문화의 수입과 전파 시대이다. 어지럽던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는 분서갱유를 감행하고, 불로장생과 부귀영화를 누리려 했으나 그 치세는 짧았다.
한나라는 서양의 로마 제국과 같이 정치와 군사에서는 강하였으나 문화와 예술에는 앞 시대의 모방에 치우쳐 독창력이 적었다. 이 시대에는 다양성의 통일이 조화된 사실적이고 감각적인 양식을 낳았는데, 재현적 기법과 상징 및 추상화 과정이 혼합된 것이다.


진(秦, 기원전 221∼201)은 단명한 왕조였지만, 전대까지의 중국 건축을 총괄하여 새로운 진대 건축을 창시했다.
위수의 남쪽에 아방궁과 같은 대 건축을 한 것을 비롯하여 여산의북쪽 기슭에 대규모의 시황제 왕릉을 축조하고 만리장성 대 토목공사를 벌이는 등, 엄청난 규모의 대역사가 주목된다. 장려한 궁전에는 돌로 만든 소와 고래, 구리로 만든 기린과 용의 조상으로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진(秦)·한(漢) 시대에는 묘당의 화상석(畵像石)이나 토기,동경(銅鏡)등 시대성을 살필 수 있는 미술품이 전해지고 있다.
공예 기술의 진보도 빠뜨릴 수 없다. 동조품(銅造品)으로는 산동성 출토의 동제등잔과 하북성 만성현 출토의 등잔이 있는데 모두 인물상을 수반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하북성 출토의 '장신궁등'은 한대(漢代)에 동조 인물상의 제작 기술이 높았음을 보여준다.


한(漢)대에 전하는 그림들은 모두 지하무덤에서 출토된 분묘미술이다. 따라서 무덤 안을 장식했던 벽화나 화상석, 화상전이 주요 미술품인데 회화적 표현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지상의 것과 큰 차이는 없다.
표현된 내용들은 신화와 역사적 사실, 고사, 일상생활, 유교적 주제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산둥 지방의 화상석에 표현된 인물이나 자연 묘사는 그야말로 고식의 미를 한껏 보여준다.

4. 위(魏)·진(晋)·남북조(南北朝) 시대

삼국(魏·蜀·吳)시대가 지난 뒤 위(魏)가 천하를 통일하고 뒤이어진(晋)도 나라를 세웠지만 이민족의 압박에 의해 천도를 이전하여천도 이전을 서진(西晋), 천도 이후를 동진(東晋)이라 했다.
이 시대의 미술은 한나라와 수·당의 전환기로서 서역적 요소가 적어지고 중국적 요소가 풍부한 과도기의 성격을 가졌다. 중국의역사가 정착기로 접어든 시기는 이 시대이며, 페르시아, 간다라 등 서방 문화의 영향까지 받아 미술의 성격이나 양식에도 많은 변화를가져왔다.


(1)위(魏)·진(晋)·남북조(南北朝) 시대 건축과 조각

불교 석굴이 외래 문화의 영향에 의해 발생된 것도 이 시기이다.
석굴의 조각이나 회화 중에는 제작 당시 건축의 외관이나 세부를 보여주는 것도 있는데 특히 원강(雲崗), 룽먼(龍門), 둔황(敦煌)등대규모 석굴불이 유명하다. 이 석굴불을 통하여 불교 조작과 불교벽화 부문에 서 많은 유품을 남기고 있다.


(2)위(魏)·진(晋)·남북조(南北朝) 시대 회화와 공예

회화는 타율적인 제약에서 해방된 문인화라는 양식을 낳았다. 이 시대에는 현실을 초월한 노장의 사상이 유행하여 사실(寫實)을 초월한
추상적인 동양화의 선을 강조하였고, 산수화를 발전시켰다.
이 때의 회화는 기존의 원시적인 상하법을 대신하여 대상을 내려다보는 부감법이 성립하고, 깊이 있는 공간 구성이 가능해졌다. 공간 처리가 분명해지고 인물도 자연스럽게 표현되기 시작한다. 아직 전경, 중경, 후경 사시에 자연스러운 진행이 없고 크기나 비례가 잘 맞지 않으며 인물들에도 개성 표현이 없는 등 고풍스러운 표현을 간직하고 있다. 주제상으로는 기존의 유교와 도교에 새로 들어온 불교가 주 배경이 되며 신화적인 색채는 퇴조한다.


한말의 서화를 겸한 사대부 화가가 출현해서 필선만으로 그리는 백묘화(白描 )가 창시되었고 문학적인 제재를 즐겨 채택하였다. 처음으로 산수화를 그리고 인물화를 특히 잘 그렸던 고개지(顧愷之)는 「여사잠도권」을 남겼고 산수화에 있어서의 시각적 현상에 주목하였다.


그는 신기론(神氣論)이란 화론(畵論)을 펴 사혁(謝赫)과 함께 동양 회화의 원류가 되었다.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은 「고화품록(古畵品錄)」이란화평(畵評)에서 회화의 근원이 되는 육법(六法)을 논하였다. 송병(宋炳)의 산수화는 고개지에 비해 솔직하고 간명하며, 그가발견한 '지척천리(咫尺千里)'라는 투시 원근법은 서양보다천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위(魏)·진(晋) 시대의 서예는 예서에서 해서로 이동하는 전환기였다. 동진(東晋)에서는 행·초서가 성하였고 왕희지 부자가서체를 완성하였다.


4.수(隋)·당(唐) 시대
중국의 수(隋, 581∼618)는 비록 3대 38년만에 단명한 왕조였으나, 오랫동안 남북으로 갈라졌던 중국의 통일을 추진하고 후세까지 남는 대사업을 시작하여 뒤이은 당의 번영에 기반을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1)수(隋)·당(唐) 시대 건축과 조각

건축이나 조각은 인도 계통의 영향이 보인다.
당의 수도인 장안에는 수나라 때 조성된 대흥궁 외에 삼내(三內)라하여 세 군데의 궁전 즉 태극궁과 황제가 상주했던 대명궁 그리고 홍경궁이 있었다.
수나라때는 문제가 즉위하자 불상을 많이 만들거나 수리하였다. 수나라때 유물로는 용문석굴의 약방동 본존과 양협시 보살, 제남 옥함산 불곡사의 수상등이 있다.
견고한 석재 구성으로 웅장한 얼굴과 체격이 특징이다.


남북조의 양식을 이어받은 수나라의 조각은 당나라 시대에들어서자 서역풍을 종합한 예술로 발전하여 소상(塑像)이 유행하였다. 불상은 팔다리와 몸의 균형이 좋고 반투명에 가까운의상으로 관능미를 나타내었으며, 육조시대의 똑바로 선 자세가움직이기 시작하였는데, 한쪽 발에 중심을 두고 허리를 약간틀어서 가슴에서 허리로 흐르는 원만하고 유려한 곡선미를 나타내고 있다.


초당 전기에는 장안에서 만들어진 명문이 있는 석불좌상이 있는데 동그스름함과 부드러운 당대의 특징이 나타난다.
석굴의 조각이 아직 남아 있고, 목조각, 도상(陶像), 소상(塑像)등이 발달하였다.


(2)수(隋)·당(唐) 시대 회화와 공예

수나라는 회화에 있어서도 남북을 통합했다.
북조계의 화가가 남조의 양식을 흡수한다는 화북 중심의 통합이었다.
수에 이어 대제국이 된 당은 외국 미술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제적 색채가 풍부한 화풍을 낳았다. 전기에 전래된 헬레니즘의 흐름을 섭취한 굽타조 양식의 인도미술과 사산조양식의 이란 미술이 중국인에게 형사(形寫)라 불리는 새로운자연주의와 표현 기법을 가져다주었다.


이 시기는 중국 회화의 독자성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기이며 중국미술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다. 인물, 도석, 산수, 화조가 많이그려졌으며 각기 개성적인 표현을 하게되어 각각의 유파로 발달하게 된다. 즉 남화, 북화의 개념이 확립된다.
당나라의 회화는 외래양식을 소화하는 한편 고유의 전통 양식과 융합한 이른바 종합성을 가진 회화 예술을 완성하였다.
당나라 시대에 처음으로 수묵화풍이 발생하였는데 이것은 남종문인화의 출발을 뜻한다. 초당(初唐)의 대표적 화가인 염입본(閻立本)은

「역대제왕도(歷代帝王圖)」 「직공도(職貢圖)」로 유명하다.


후기 회화의 특색은 외래 영향의 중국화와 전통의 존중인데,그러한 경향은 전기의 후반에 보인다. 사녀화, 화조화나 묵화는 측천무후 시대에 시작되고, 성당기에는 천재화가 오도현(吳道玄)이 백묘화를 부흥시켰고, 그에 입각하여 회화의 지도이념인 사의를 제창했다. 또 오도현(吳道玄)은 당대의 대표적 화가로서 불교,도교에 관한 것을 많이 그렸고, 이러한 필법이 오가풍(吾家風)이라 불리며 당대를 풍미했다. 이른바 '산수의 변혁'을 창시하여산수·수석화를 자연주의의 계열에 편입시켰다.


이사훈(李思訓)은 북화의 시조이며, 귀족적 묘법으로 금벽청록(金碧靑綠)의 산수로 유명하다.
후기의 산수화가는 수묵산수화 발전의 기초를 세운다. 특히왕유(王維)는 남화의 시조이며, 남방의 풍경을 주로 초속적인 태도로 그렸다. 선담(渲淡)의 묵법이라 하여 수묵의 멋을 십분살렸으며, 대상의 묘사보다 정감 어린 운치를 주관적으로표현하였다. 사녀화, 화조화, 산수 수석화는 공적인 목적보다 사적인 감상에 봉사하는 경향이 강한 분야이고, 후세에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수·당의 공예양식은 한나라의 제도를 답습했다.
당나라 시대의 미술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공예이며 그 중당경(唐鏡)과 같은 금속공예가 유명하다. 도자기 공예가발달하였고 특히 당삼채(唐三彩)가 유명하다. 유약의 변화에의하여 기물에 나타난 도안의 묘미는 현대 회화의 비구상적 표현양식과도 공통된 점을 보이고 있다.

5.송(宋)

송대는 북송시대(960∼1126)와 남송 시대(1127∼1279)로 나뉘어진다.
북송시대는 오대(五代)의 문화를 이어받아 요(遼)와 대립하고, 남송시대는 양자강 이남의 문화를 주체로 하여 금(金)과 병립하였다.
원래 중국의 회화는 도교적이거나 불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송대에는 이러한 불교 도덕에서 해방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순수한 회화로 독립하게 된 시기이다.


(1)송(宋) 시대 건축과 조각


선종의 진출로 인하여 예배불상을 중시하지 않는 국가의 불교정책에 힘입어 북위(北魏)로부터 수와 당에 걸쳐 번성했던 석굴과 석불의 조상(造像)은 거의 없어졌다. 송 시대 조각의 특색은 당시불교의 서민성을 보이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이 유행하였다. 친근감있는 휴머니즘의 표현으로서 현실적인 여성미를 나타내었다.


송(宋), 요(遼),금(金) 시대의 조각은 완전히 당(唐)의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우아함과 자유스러운 수법이 다소 늘어났으나 웅대함과 숭고함을 상실하여, 점차로 비속하고 섬약함에 빠졌다.


(2)송(宋) 시대 회화와 공예


중국에서는 '육조(六朝)의 서(書), 당(唐)의 시(詩), 송(宋)의화(畵)'라는 말이 있다. 화원이 융성한 것은 송조가 최고였으며, 한림 도화원을 설치하고 화인을 우대하였다. 북송말의 휘종과 남송초의 고종은 궁정예술가를 양성하여, 송나라의 예원을 크게 번성시켰다. 문인화예술 풍조가 유행하여 소동파(蘇東坡)와 미불과 같은 이름높은사람이 나타났다.


북송 시대에는 오대에 이어 형호와 관동의 뜻을 따르는 화가들이 많이 나타나 화북 산수의 황금시대가 도래한다. 전통적 사실주의와 신흥이상주의의 2대 화풍이 성행하였다. 전통적 사실주의는 앞 시대의 전통을 지키면서 대상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표현하는 원체화풍의 화조화와 북송 화풍의 산수화를 연결시켜 나갔다. 이는 자연을 합리적으로 포착하여 그 속의 생명감과 인간을 이어주는 자연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신흥 이상주의는 기성 형식에 거리낌 없이 마음의 이상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문인·사대부·승려 등 재야의 비전문적 화가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수묵 담채화풍의 화자와 사군자,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를 아울러 성립해 나갔다. 그들의 화풍은 자연을단순하게 추상화하여 수묵화의 형식으로 이상적 세계를 개척하려했다.
이러한 양대 양식은 원말사대가를 거쳐 이사훈(李思訓)과 왕유(王維)를 시조로 하는 이른바 남북 2대 화파를 형성하게 된다. 이성의 뒤를 이어 범관, 곽희, 허도녕과 같은 화가들에 의해 더욱 다양한 화북 산수화가 나타났다.


곽희(郭熙)는 11세기 산수에 능하였으며 고원, 심원, 평원의 삼원 화법을 주장하였다. 이는 중국 회화에 있어서 원근법의 시초이다.
또 허도녕의 「추강어정도(秋江漁艇圖)」는 걸작으로 꼽힌다. 그의 그림에서 치솟은 산의 기상과 필력은 화북 산수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강남에 자리잡았던 남송에서는 화원을 중심으로 강남 지방의 경치를 주로 그리는 직업 화가 화풍이 성행하였다. 주변 경치에 어울리는 화법을 쓰다보니 자연히 강남 산수풍의 소경(小景)산수로 회화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휘종은 제왕 화가로서 유명하다. 섬세하면서도 강한 필선으로 그린 휘종의 산수화풍은 후기의 대표적 산수화가인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의 예술을 낳은 원류가 되었다.


마원은 이당(李唐)의 화법을 흡수하여 자기류의 화풍을 성립시킨 화가이다. 그의 산수화풍은 일본 산수화에 영향을 주었고, 조선초기 이상좌, 강희안에도 미쳤다. 하규, 이적은 용필과 용묵이뛰어나고 각기 개성적이다.
목계는 문인화의 명수로서 당대의 대표적 화가이다. 선종 승인답게 번잡한 것에서 벗어나 마음 속의 것을 일필로 표현하였다. 그의「소상팔경도」는 기존의 준법이나 필법을 따르지 않고 간결함과 상징성으로 표현하여 한 차원 높은 수묵의 미를 살리고 있다.


송대는 중국 도자기 예술의 황금기이며 청자, 백자, 적회등 명기가 많다. 그 밖에 회고려(繪高麗)는 흑갈색 무늬가 주는 이국적 감각을 풍긴다. 당삼채(唐三彩)의 영향을 받은 송삼채(宋三彩)도 있다. 송대의 자기는 우리 나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6. 원 시대
원은 무력으로 한민족을 정복하였으나 예술적인 독창력은 없었으므로 송의 예술을 그대로 계승하여 다음 대인 명(明)에 계승하였을 정도이다.


(1) 元시대의 회화와 공예

회화는 시대 양식으로서 간단하게 추출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함을 보여준다. 이런 양식, 형식의 혼란은 명시대의 절파, 오파, 원파등을생겨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 초기의 산수화는 고극공(高克恭), 조맹부(趙孟賦)등에 의한 복고운동에서 시작되어 주로 북송 산수화가의 양식과 묘법이 연구되었다.
그러나 북송 산수화풍의 양식이나 묘사 형식을 적당히 취해 화면을 구성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는 잃어버리고 형태나 기법에 대해지나친 편집 경향만 띄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황공망(黃公望), 예찬(倪瓚), 오진(吳鎭), 왕몽(王蒙)등을 원 때의 4대가가 배출되기 전까지 계속된다.


원사가(元四家)는 오대의 동원, 복송의 거연에 기초를 두고 발전하여 필묵을 중시하고, 서법과 시문을 결합하였다. 이는 원래산수화의 주류로 명·청 양대에 걸쳐 영향이 지대했다.
원나라 시대 도자기의 경향은 전통적 사실풍에서 벗어나 비정통적사의풍(寫意風)으로 흘러갔다.

7. 명·청 시대
명대는 4세기 이상에 걸친 북방민족으로부터 해방되어 한민족의지배가 부활된 시기이다. 명은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거대한 벽돌을 사용하여 만리장성을쌓았다. 오늘날에 보는 만리장성은 명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1) 明 시대 건축과 조각

명조 300년은 건축이 발달하여 특히 궁궐 건축이 훌륭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베이징의 자금성이다. 베이징의 자금성과 태묘(太廟)는 명대 초기의 웅혼한 기풍을 잘 보여주고 있으나 많은 건축이 청대에 들어 대수리되었다.
불교 신앙은 일반 민중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는데, 목조천의관음상, 대원 숭선사의 소조 천수관음상, 봉성사의 나한상,칠금목조좌불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15,16세기의 것으로 북경 서산 와불사의 청동 석가열반상, 북경서산 벽사의 소조 좌불오존상, 십팔나한상이 있다. 이 시대에는 명대 초기의 위엄이 친근감있게 변하면서 사실적작풍으로 변한다.


(2) 靑 시대 회화와 공예


초기의 화단은 남화 일색의 전성 시대를 이루었으나 전체적으로 내리막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기법은 섬세하나 약하고 주제는 산수는 화조와 사군자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독창적인 화법과 사고로 그림을 그린 왕시민, 왕감, 왕휘 그리고 명승으로 그림으로 잘 그린 팔대산인, 석계,석도등이 유명하다.


석도는 전통을 따르기보다는 실경산수를 많이 그렸다.
황산을 그린 여러 장면에는 실제의 경치에 충실하기보다는회화적으로 아름다운 구도와 먹과 멋진 조화를 이룬 담채등 무한한 변형이 이루어진다.
석도의 친구였던 팔대산인도 분출하는 창의력을 작품에 담았는데 「성난 물고기」나 「두 마리의 까투리」등을 보면 산수보다는 화조, 영모등 분야에서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다. 그는 필력이 날카롭고 핵심을 잘 포착하여 후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중기 화단은 산수화보다 화훼, 영모 등의 화조화에 치중되었고, '양주팔괴(楊洲八怪)' 라는 괴이한 작가들은 독창적인 화풍을 보였다. 청말의 임백년, 오창석, 오역등도 좋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7. 중국 근·현대 미술

中國 近,現代 美術


중국 근대 회화는 청의 말기부터 시작되는데 그 때 궁정화가가 화단의 중심이었던 풍토에서 벗어나 각지에서 유력한 화가의 배출을 기다리는 상황이 출현하였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 제일의 개항 도시가 된 상해에서는 화가들이모여들었는데 여기에서 조지겸(趙之謙)과 임이, 오창석(吳昌碩)이 있다.


임이의 영향은 청말부터 민국 초기에 걸쳐서 상해 화단 전반에나타났으며 오창석의 영향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20세기 전반에 전통 화풍을 새로운 시대에 접목시긴 화가로는 제백석(齊白石)과 황빈홍(黃賓虹)이 있다. 북경의 화단에서 명성을 얻은 제백석은 팔대산인과 석수, 오창석등의 감화를 받으며 독특한 화풍을 수립하였다.
미술학자이기도 했던 황빈홍은 당송 시대 회화의 깊은 맛을 살린 산수를 그렸다.


이밖에 20세기 전반의 동향으로는 노신(魯迅)의 제창으로 이루어지는 목각화 운동, 대중과의 의사 소통을 주안점으로 한 새로운 중국 회화로의 방향도 주목되었다.

 

 

중국 상하이 창의산업센터, '제1회 국제 자전거 디자인 공모전' 자전거 각종 행사

2008/03/08 22:44

복사 http://blog.naver.com/mobacle/70028595361

'제1회 중국 국제 자전거 디자인 공모전'

주최 : 중국자전거협회와 중국공업설계협회
주관 : 상하이 창의산업센터
공모대상 : 전 세계인 /개인 혹은 단체
응모방법 : 인터텟
응모처 : www.021ci.com (상하이 창의산업센터)
응모기간 : 접수 2008년3월31일 까지, 예선, 본선, 결선 등 3단계로 나누어 진행.
예선 결과 발표 : 2008년 4월25일
기타 : 디자인-모형-완성품-상품 등이 일체화된 방식이며 수상작은 자전거 생산기업에서 상용화해 대량 생산할 계획"면서 "응모자는 자전거 디자인은 물론 색, 기능, 구조, 제작공정, 원가 등을 고려해 작품을 출품해야 한다

 

제공 : 모바클 전기자전거 (이륜, 삼륜전기자전거 제조 판매.

문의 : 02-3667-3633 이메일 : mobacle@naver.com )


[출처] 중국 상하이 창의산업센터, '제1회 국제 자전거 디자인 공모전'|작성자 미래사회

 

 

  • 네오위즈ENC, 중국 상해대학 디지털예술학원과 협력사업 MOU 체결 [현재창]
    네오위즈ENC는 이번 중국 상해 대학디지털예술대학이 대외사업 업무를 위해 설립한 상대호해디지털예술발전유한공사와 게임을 비롯한 특성화 교육사업 및 산학, 학술교류 외에도 문화창의단지 조성 등 디지털 콘텐츠 사업 발전을 위해 ...
    www.migame.tv/section/onlinepc/view.asp?bd=140&msg=262328 (81k) 이 사이트에서 더보기 | 미리보기
  • 중국이 애니메이션 산업에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

    외국산 방영 규제 시간을 늘리는 한편 자국산 애니메이션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외국 문화에 전염되는 것을 막고 동시에 급성장하는 문화산업에서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하청에 의존해온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구조를 고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2일 관영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06년 이후 오후 5~8시까지 3시간 동안 외국산 애니메이션의 방영을 금지해온 데 이어 지난 2월부터 금지 시간을 4시간으로 늘렸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이 같은 조치는 2004년만 해도 중국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외국산이 80% 이상을 차지하면서 문화 주권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에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도 자체 창작은 3분의 1에 불과해 산업에 창의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중국 정부는 애니메이션 채널을 늘려 시장 기반 확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중국은 4개 전국 애니메이션 전문채널과 34개 지방 TV의 어린이채널을 통해 매일 133시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있다.
    또 국가 차원의 지원을 하는 애니메이션 산업단지를 선양 상하이 베이징 등 19곳에 조성했다.
    선양아오위안 국제 애니메이션 단지가 대표적이다.
    호주 최대 투자은행인 맥쿼리와 홍콩의 완콴애니메이션 등이 오는 2009년까지 15억달러를 투자해 조성하는 선양아오위안 단지에는 이미 중국을 비롯해 한국 홍콩 업체 등 모두 50여개사가 입주했다.
    지방 정부 자체적으로도 40여개의 단지 조성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과당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국 광전총국은 애니메이션 단지를 대상으로 3년마다 평가를 실시,3년 연속 애니메이션 제작분량이 50시간(3000분)에 못 미치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경우 경고나 자격 취소 등의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국제 규모의 애니메이션 행사 후원도 지원책의 일환이다.
    3일까지 엿새 일정으로 항저우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 국제 애니메이션 축제에는 해외 벤처캐피털들도 대거 참가해 유망 애니메이션 업체 물색에 나섰다.
    중국의 애니메이션 육성책은 급성장하는 시장에서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지난해 200억위안(2조8000억원)으로 전년보다 40% 이상 증가했다.
    중화공상시보 등은 수년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1000억위안(14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급팽창은 3억6700만명에 이르는 청소년이 원동력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창작 애니메이션을 수출하는 토종 업체까지 생겨나고 있다.
    란먀오(藍猫ㆍ푸른 고양이) 시리즈를 한국 미국 중동 등 36개 국가에까지 수출한 후난산천애니메이션그룹이 대표적이다.
    상하이진르 후난훙멍 등도 대표적인 창작 애니메이션 수출업체다.
    중국 전문가들은 샤오황디(小皇帝)로 불리는 어린이 시장에 애니메이션의 파급 효과가 크다며 캐릭터를 활용한 내수시장 공략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중국의 아동용 시장은 연간 △식품 350억위안(4조9000억원) △완구 200억위안(2조8000억원) △도서 등 출판물 100억위안(1조4000억원)에 이른다.
    중국 태강로 거리는 온통 거대한 문화거리
    이권희의 중국예술촌 이야기-②
    2008-08-11 13:19:41 기사돌려보기인쇄하기
    ◇ ´태강로 문화거리´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촌이다. 상점과 갤러리가 구분가지 않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다. ⓒ 데일리안

    화랑과 작업실을 구분해 숫자를 헤는 건 아무래도 ‘태강로 문화거리’에서는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있는 노천카페나 상점이 화랑과 잘 어울어지면서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를 연출하는 느낌 때문이다.

    그렇다.
    거미줄 모양을 한 ‘골목갤러리’ 하나가 덩그렇게 놓여있는 곳이다.

    늘어나는 수요에 따라 이곳 골목길은 동굴처럼 계속 깊어지고 있다. 인테리어가 시작된 이웃한 골목길 주택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 태강로는 이제 세계인들이 찾는 문화 예술촌으로 자리 잡았다. ⓒ 데일리안
    신고도 않고 하는 자영업이 대다수인데도 상해시가 묵인해주고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오히려 인테리어 비용마저 빌려주며 권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슬럼화됐던 거리가 이처럼 자발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일 게다. ‘뭐든 돈으로 만들자‘는 상해방(上海幫)다운 정책으로 와 닿는다.

    지난 98년 상해시가 진흙 골몰길을 포장해 줄 때 만해도 태강로가 세계인이 찾는 예술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몰려들자 이곳 골목길을 문화산업 컨텐츠로 인식하고 상해´창의산업단지´ 중 하나로 지정한 상해市의 안목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불과 4~5년 만에 도시의 명소에서 이제는 세계인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명물이 된 골목길.

    물론 오늘의 태강로를 있게 한데는 특화산업으로 밀어준 시정부와 인근 소흥로 예술관련 단체의 관심도 빼놓지는 못할 것이다.

    적어도 기반 시설만큼은 상해市가 추진하고 나머지는 지역주민들에게 자발적으로 맡긴 점 또한 돋보인다.

    하지만 골목이 명물로 태어나고 인근 재래시장이 살아난 데는 하나둘 모여든 예술가들과 이곳 주민들의 역할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낱같은 가능성을 읽어낸 예술가들의 예리한 판단력과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민초들의 바람이 같았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을 끌여 들이기 위해 조성됐든 이유야 어쨌거나 오래된 골목길이 살아나는 과정이 투어 내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상해´를 알리는데 이만한 소재가 어디 있을까 싶기도 했다.

    ◇ 태강로는 상해를 알리는데 가장 좋은 소재로 손꼽힌다. ⓒ 데일리안

2004/05/25 오후 6:57 |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의 정의>


anima-n혼,정신,영혼,생명
animate-vt생명을 불어넣다.~을 움직이다,활기를 띠게 하다.
animated-adj활기엔 찬,활발한,살아 있는 것 같은
animation-n생기,활발,동화,에니메이션
animated cartoom-n만화영화
animated film-n동화

 

에니메이션 에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이다.

에니메이션은 어원에서도 보듯이'생명이 없는 사물에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는 동영상 작업을 총칭'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에니메이션을 만화영화와 같은 개념으로 애매모호하게 이해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만화영화는 에니메이션의 한 분야일 뿐이다.
1960년대부터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한 에니메이션은,

대개 tv프로그램의 어린이 시간대에 편성되거나 방학 때마다 수입되는 극장용 장편에니메이션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작품들은 모두 셀 에니메이션이거나 출판만화와의 연계성 속에서 에니메이션화된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화영화로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된 것이며,

만화영화는 모두 셀에니메이션이것으로 일반 대중에게 인식되었다.

에니메이션은 실사영화와의 차별적인 개념을 전제로 한다.

실사영화는 정상적 연속촬영속도인 1초에 24프레임으로 움직이는 장면을 촬영하는 것을 말하며,

이 24프레임마다 정지시켜서 각각을 따로따로 촬영하는 것을 에니메이션이라 한다.

 

[애니메이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화 영화를 떠올린다]

그것은 만화영화가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친숙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영화를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애니메이션 = 만화영화라는 생각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만화영화는 애니메이션의 한 부분일 뿐이다..]

즉, 애니메이션의 장르 중에서 가장 상업화되고 대중화된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낯선 개념보다는 어렸을 적부터 우리와 친근한 만화영화라는

개념이 자연스럽다.

그 때문에 포괄적인 개념인 애니메이션이 하부 개념인 만화영화와 동격이 되어버렸다.

 

[그럼 근본적인 애니메이션의 개념은 무엇인가?]

"애니메이션이란 한 장 한 장 그려진 그림이나 사물, 인형 등을 애니메이션용 카메라

(Rostrum camera라고도 함)로 찍어 움직이는 화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이런 개념적인 정의로 애니메이션을 다 표현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한국과 다른 나라들의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보면서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 애니메이션의 기원 >


애니메이션은 선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선으로 단순화되어 표현되고,

작가는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해 낸다.

그렇게 때문에 애니메이션은 이해 전달이 문자보다 훨씬 쉽고, 빠르며,

그 독특한 회화 적 표현 수법은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면 과연 선이란 무엇인가?

미술에는 선묘법(線描法)과 회묘법(繪描法)이 있다.

선묘법은 선으로 경계가 뚜렷하고 촉감으로 윤곽을 그리는 것으로서,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해 회묘법은 명암이 주가되고, 경계가 애매모호하며,

대상은 주관적 시각에서 취급되어진다.

 

선묘법은 고전 시대에서 17세기 바로크 시대까지 유럽 미술을 이끌어 왔으나 그후 회묘법으로

바뀌었다.

동양화는 발생부터 선묘법으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그 기법을 지키고 있다.

 

미술 교과서에서는 선은 점의 연결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선에는 직선, 곡선이있으며, 굵은 선, 가는 선도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선은 이러한 외형적인 의미가 아닌, 그 선이 갖고 있는 감각,

즉 생명이 있는 선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직선은 강직, 곡선은 우아, 굵은 선은 힘참과 둔함, 가는 선은 예민한 느낌을 준다.

미술 작품도 화가의 예술적 감각에 의한 선과 색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만일 화가가 색과 선에서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다 면 그는 작품을 만들 수 없을 것이며,
만들었다 해도 그것은 생명이 없는 죽은 작품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신문에 실리는 네 칸짜리 만화(cartoon)을 본다.

그 만화 속의 캐릭터는 모두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 만화를 보고 다이얼로그를 읽어 갈 때, 우리는 그 캐릭터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보게 된다.

이것은 현실 속의 살아 있는 인물들과 애니메이션 속의 인물들과의 결합에서 오는

순간착각 현상이다.

비록 한 컷의 삽화(Illustration)일지라도 선은 살아 움직이는 선이어야만 한다.

즉, 동적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생명이 있고, 감정적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예를 들면 연극에서 연기자에게 움직이는 동선을 그어주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다.
연기자가 무대 한곳에서만 연기를 하게 하는 것 보다 연기자를 움직이게 함으로써 관객을

더 강하게 사로잡으려는 의도인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선도 움직이는 동선이다. 그리고 선은 어니 것이든 애니메이션의 도구가 된다.
오늘날 기계 예술의 꽃이라 일컫는 영화가 움직임을 통해 그 예술성을 보여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 또한 그러한 기능면에서 영화와 다를 바 없다.

애니메이션도 선과 색채의 다양한 변화로 훌륭한 예술성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동화의 원류는 아득히 먼 고대 동굴벽화에서 찾을 수 있다.

기원전 1만 년 -5천 년경의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Altamira)동굴 벽화는 상처입은 멧돼지가 바위 표면에 선각으로 그려져 채색까지 되어있는 그림이다.

이 동굴은 1875년에 발견된 동굴로 길이 270미터나 된다.

멧되지는 기운이 다해 거의 땅에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머리는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다.

마치 그림그린 이를 적으로 보고, 최후로 달려드는 멧돼지 같아 긴장감마저 돈다.
그런데 여기에 유의할 부분이 있다. 멧돼지의 다리가 넷이 아니라 8개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곳 움직임을 표현한 당시 사람들의 감각적 표현기법이었다.
이 벽화를 그린 화가는 멧돼지의 움직임을 여러 개의 다리로 표현함으로써 동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멧돼지 그림은 신기하게도 17세기의 발명품인 애니메이션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환등기에 꽂는 그림(동작의 움직임을 순서대로 여러장으로 그린 그림)과 너무도 흡사하다.

또 같은 시대로 추정되는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라스코 (Lascaux) 동굴에서도 우리는 이와

유사한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동굴은 1940년 9월 네명의 10대 아이들에 의해서 발견됐다. 이 벽화에는 사납게 질주하는

들소, 사슴, 말, 소 등 6백 마리의 동물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여러 동물들의 발자국이 엷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정적인 그림에

움직임을 불어넣어 보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선사시대 사람들은 수렵생활을 하면서도 예술을 할 줄 알았다.

기원전 8천년경으로 추정되는 시실리 섬 몬테펠레그리노의 암각화는 인간의 다양한 동작을

난서화로 그렸고, 기원전 5천년경 인도 데칸지방 바위에서 발견된 수렵도는 들솔르 쫓는 사냥꾼의 변화 있는 동작을, 그리고 북 아프리카 사하라 브투칼 산의 무녀도는 무희의 유연한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태평양 중심에 위치한 이스터섬은 거의 암벽화로 된 섬인데 이곳 아나카이탕카 동굴 천장에 그려진 새는 한 몸에 머리가 둘이다.
또한 북아프리카 탓실리자방의 아왕레트 암각화는 인간의 동작을 중복되게 그려 놓아

시간과 공간을 축소해 놓고 있다.

이러한 복합회화는 기원전 8천-5천년경으로 추정되는 리비아의 와디베르그 암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두 마리의 기린과 코끼리를 이중으로 겹쳐 그렸다.

 

이밖에 남,북 아프리카 곳곳에서 동화는 수 없이 발견됐다.

일본의 고대 미술에서도 이와 같은 표현 기법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고송총 고분 벽화를 들 수 있다.
서기 650년경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이 고분 벽화는 허공을 향해 힘차게 치솟는 청룡의 모습이

아주 치밀하고 섬세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경탄을 자아 내게 한다.

고송총과 같은 시대에 지어진 법륭사 금당 오층탑에서 나온 여러 장의 낙서 그림은 당시

천장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이 쉬는 시간에 심심파적으로 그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사람의 얼굴을 단순히 선만을 이용해 일그러지게 그려 놓았다.

이것은 감정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
아닌 감정과 움직임이 있는 얼굴 그림이었다.

서기 750년경에 그려진 마포 보살상은 선 처리가 한결 전된 모습을 띠고 있다.
구름을 타고 있는 모습이나 바람에 날리는 마포 끈이 리드미컬하게 보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묘사는 상당히 감각적이다.

1296년에 발견된 캄보디아 성벽 도시 앙코르와트 신전의테바타 여신상은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손동작이 단계적이다.

우리 나라의 고대 미술에서 동화를 찾는다면 맨 먼저 길림성 통구의 고구려 시대의 고분

무용총 벽화 가운데 동쪽 벽에 그려진 수렵도를 들 수 있다. 말을 탄 무사들에게 쫓기는 동물들은 반대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이 같은 수법은 좁은 화면에 동선을 크게 확보한 기발한 착상이다.

또 진파리 1호분 남쪽 벽 그림도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보면 우뚝 서 있는 나무를 그려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벽화를 그린 화가는 질풍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빠르게 이동하는 구름의 모습을

누가 보아도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동화로 확증할 수 있는 그림은 이조 선조 목릉의 주작도이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멧돼지 다리를 4개가 아니라 8개로 그린 것과 같이

주작도에서는 새다리를 2개가 아니라 3개로 그렸다. 이것은 새를 180도 회전시킨 것이다.
머리도 좌우로 돌린 모습을 동시에 묘사해 놓고 있다. 경주 155호분 천마총의 벽화 장니천마도는

말 다리 4개외에 신기를 내뿜는 흔적을 그려 놓았다. 마치 알타미라 벽과와 흡사하다.

 

천 개의 자비로운 눈으로 중생을 응시하고 천개의 자비로운 손으로 중생을 제도한다는

경주 기림사 관음전의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목상과 일본 도우쇼다우지의 
천수관음보살 입상은 몸 좌우에 여러개의 선을 상하 단계작으로 조각했다.

그리고 여성동반자를 껴안고 있는 티베트 밀교의 포외금강은 34개의 팔과 16개의 다리를 조각한

합체존상이다.

포외금강은 우두명왕, 티베트어로는 '뚜어지에 지지에'라고 하는데 악귀를 물리치는 분노신이다. 이 모두 신화적인, 종교적인 해석이 아닌 형태적인 해석으로 접근할 때 누구에게나 정적인 느낌을 벗어나 동적은 느낌을 준다.

즉 움직이는 표현, 다시 말해 동화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무덤 속에서 움직임이 있는 벽화, 즉 동화가 많이 보이는 것은 움직임이 끝난 무덤 속 주인에

대해 생, 이를테면 움직임의 의미를 주기 위한 가족과 친지들의 염원인 것이다.
동굴 벽화뿐만 아니라 로마 조각가들은 강렬한 포즈의 신들과 경기인들의 동작을 조각

작품으로 형상화시켰다.
그리고 무사들이 지니는 방패를 보면 가장자리에는 여러 개의 실루엣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방패 그림들은 낱낱이 분리되어 있지만 위기에 처할 때 방패를 회전시키면 또 다른 모양의

그림이 형성되어 상대를 곤란에 빠뜨릴 수 있었다고 한다.

고대 미술을 벗어나면서 서양이나 동양을 막론하고 선은 차츰 그 움직임이 약해져 거의 정적인

그림으로 바뀌었지만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이렇게 고대 동굴 고분벽화 속의 살아 있는 선에서

출발하고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클레오파트라를 주인공으로 한 3D 뮤지컬에 도전
1989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로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장르를 불문하게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 온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이번에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주인공으로 한 3D 뮤지컬에 도전한다는 소식이다.

관심을 모으는 클레오파트라 역에는 영화 [시카고]에서 노래와 댄스 재능을 발휘했던 캐서린 제타 존스가 연인 안토니 역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주연해 토니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휴 잭맨을 고려 중이라고 버라이어티닷컴이 전했다.

음악과 각본은 지금은 해산했지만 인디 락그룹 Guided by Voices의 전 베이시스트이 겸 작가 짐 그리어가 맡는다.

3부작 완성의 체 게바라의 인생을 그린 전기영화를 촬영 중인 스티븐 소더버그의, 1부에 이은 2부 [게릴라]가 현재 52회 런던 영화제에서의 상영을 시작으로 2009년 1월 미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며 맷 데이먼이 주연하는 영화 [인포먼트(The Informant)]의 메가폰을 잡는다.

또 영화 [트래픽]에서 호흡을 맞췄던 마이클 더글라스가 게이 피아니스트 리베라체로 분하는 전기 영화도 대기 중이며 포르노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발탁해 화제를 모았던 저 예산 영화 [걸프렌드 익스피어런스]는 극장 개봉과 함께 DVD, 케이블에 동시에 공개될 예정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버지 - 데스카 오사무 ♥ talking ♥

2008/01/07 07:18

복사 http://blog.naver.com/huschke1/10025974979

1. (애니메이션의 일어 발음)의 아버지, 데스카 오사무....

 

오늘 우연히 방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사보았던 아톰 만화책을 보게 되었다.

순간 방의 정리는 다 잊어버리고 아톰 만화책을 정신없이 읽어 버렸다.

 

이처럼 나온지 50년이 더 된 애니메이션에 우리는 아직까지 빠져들고 또 한 열광하는지 한번쯤은

생각을 해 볼 일이다.

 

우선적으로 아톰은 1963년 1월1일  처음으로 TV전파를 탔다.  아톰을 가슴 떨리는 마음으로 보았던 어린이들이 이젠 중장년층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이제부터 아톰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에 대해서 알아보자.

 

1928년 11월 3일 생인 데즈카 오사무는 1945년 중학을 졸업후, 오사카 제국대학부속 의학전문부에 입학했고, 다음해 4컷 만화인 <마아짱의 일기장>으로 데뷔했다.

 

또한 1947년에 보물섬을 만화로 각색한 신보물섬을 내놓았는데 이것은 무려 40만부나 팔렸다고 한다. 이작품은 종전의 평면적 연출이 아닌 다양한 영화적인 기법을 도입하여서 구체적이고도 체계적인 스토리를 접목시키는데 성공했다.

 

이것으로 데즈카는 그만의 스토리 만화로의 방식을 완성하였으며, 많은 작가들이 그의 화풍을 답습하게 만들었다.

 

이후 데즈카는 '지저국의 괴인', '로스트월드',' 메트로폴리스',' 와야만 할 세계' 등의 SF대작을 발표하였고, 그후 그의 기념비적은 작품이 되는

'철완아톰'과 '론의 모험기','손오공' 그리고 '리본의기사/사파이어왕자'를 내면서 점점 그의 세계를 확장해 나아갔다.

 

1966년 성인 만화쪽으로 노선을 바꾼 데즈카는 판타지한 대작 '불새'를 연재 했다(이것은 34년에 걸쳐 완성된 인간문명의 대한 근원적 탐구를 담은 작품이다.

 

이것은 '태양','여명','미래',야마토','우주','봉황','부활','깃옷','망향','난세','생명','이형' 의 총 12편의 대작으로 아직까지 데즈카 오사무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후 도로로를 연재 하면서 당시 유행했던 요괴물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요괴조차 절대악이 아닌 데즈카 오사무만의 독특한 특성을 보여주었다.

 

그후 티비 에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서 방영된 <리본의기사 / 우리나라 명 사파이어왕자 >는

또한 매우 독특한 구성이다.

 

남자와 여자의 마음이 공존하는 주인공 '사피이어 공주는'의 설정에 대해서 철완아톰의 주인공인 아톰과 그의 형제(?) 레오가 안고 있는 내부긴장과 일맥상통한다. 여자이면서 남자로 살아가는 주인공 사파이어 공주와  로봇이면서 인간을 위해서 살아가는 아톰 역시 데즈카 오사무의 갈등하고 고뇌하는 주인공을 등장시켜보다 긴박한 전개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것은 '정글대제'에 이르러서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 우리나라 에서는 밀림의 왕자 레오로 여러번 방송되었다.

이것은 또한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첫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후 성인 애니메이션인 '천일야화 이야기', '클레오파트라'를 시도 하여 도산의 위기를  그는 대작  '붓다' 다시 재기 하고 또한 '블랙잭'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바탕으로 한 의학소재의 인티 히어로 적인 만화를 연출 하여 일본 만화가 협회 특별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이 블랙잭은 사후에 극장판과 OVA로 만들어졌으며, 극장에 40대의 이상의 중장년층이 모이는 풍경을 연출했다고 한다.) 

 

1980년 52세의 데즈카는 장편 애니메이션인 불새 2772 를 발표후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이 주력하였다.

1989년 2월9일, 도교에서 죽음을 맞을때 까지 데즈카 오사무는 여러편의 만화를 연재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데즈카는 출판만화에서부터 애니메이션, 그리고 캐릭터산업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일본만화와 아니메의 기초를 닦은 장본인이었다.

 

그의 작품 '철완아톰','정글대제','리본의기사' 등은 아직도 우리에게 기억되면서 또한 계속적으로 리메이크 되어서 우리 위의 세대와 우리 세대 그리고 우리 밑의 세대를 아우를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기억되고 있다.

 

 

2. 대표 작품속으로

 

아톰 = 아스트로 보이

 

그의 작품속으로 들어가보자.

우선 대표작인 아톰은 미국에서 아스트로 보이로 불리운다. 우리에게는 '우주소년 아톰'으로 여러 채널을 통해서 소개되었으며, 친숙한 캐릭터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일본 과학성에서 근무하는 천재과학자 텐마박사는 아들 토비가 교통사고로 죽자 과학성의 일류기술을 동원해 아톰을 제작한다. 텐마박사는 아톰에서

인감임을 주입시켜 정서를 지닌 로봇으로 성장시키나 아톰이 인간처럼 자라지 않자 박사는 아톰을 서커스단에 팔아버린다.

그후 아톰은 오차노미즈 박사에게 구출되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새을 갖게 된 아톰은. 위험에 빠진 인간들을 위해서 적들과 싸운다.

 

아톰의 등장은 정말 획기적이였다. 아톰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로봇을 뛰어넘어서 자아를 갖고 고민하는 로봇으로 그려냈다.

인간의 대리기능만을 수행하던 로봇에 데즈카가 정체성을 넣을 것이다.

 

아톰은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지니고 학교에 다니며 가족과 더불어 살아간다, 아톰은 로봇으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인간들을 위해 악당들과 싸워나간다. 자신의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해서 싸웠으며, 이것은 아톰이 지는 숙명이였다. 또한 아톰은 자신이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자신을 원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인간과의 갈등을 느끼며, 고민하고 갈등한다.

 

 

이런 아톰의 인기는 지금까지 계속되면서 얼마전 리메이크 판 및 탄생 50주년 행사까지하면서 일본인들의 아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이런 아톰이 인기를 몬것은 데즈카 오사무가 추구하는 휴머니티가 인기의 비결임을 알 수 있다.

 

 

성인물로의 도전

 

그후 데즈카 오사무는 일본 최초의 성인 애니메이션으로 평가받는 '선인부락'을 기반으로 '천야일야 이야기,'클레오파트라' 를 제작하였다.

아라비안나이트로 더 익숙한 '천야일야 이야기'는 성인들의 섹쇼얼한 면을 완곡하고 아름답게 그려서 인기를 얻었다.

 

돈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주인공은 우연히 노예시장에서 매력적인 노예 미리안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다.

경매가 시작되자 주인공은 소동을 일으켜 어수선한 틈에 미리안과 함께 도주한다. 이들은 어느 궁에 들어가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함정에 빠지는데, 이때부터 주인공에게는 여러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고 숨가뿐 모험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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