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경제 제재 기간 동안 대한통운(동아건설),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한국 업체들이 유일하게 리비아에서 공사를 계속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업체에 대한 리비아 정부의 신뢰가 남다르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과 인도 업체들이 워낙 공격적으로 치고 들어와 수주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동아건설에 이어 리비아 대수로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정장덕 대한통운 리비아본부장은 "전 세계 오일컴퍼니들이 다 들어와 있고 유럽 미국의 선진 건설업체도 슬슬 진입 여부를 타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리비아 수도인 트리폴리에는 시간에 관계없이 차들이 꼬리를 무는 바람에 교통체증이 심각했다. 트리폴리 시내 최고급 호텔인 코린시아호텔의 경우 하룻밤에 400유로 이상을 호가하는 데도 빈방이 없다고 했다.
송선근 KOTRA 리비아 무역관장은 "올해 말 리비아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20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2012년에는 리비아 정부가 원유 및 가스 수출로 벌어들일 외화만 561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미국과 EU의 경제 제재로 원유가 있어도 이를 채굴할 기술과 판로가 막혀 있었다. 하지만 경제 제재 해제와 유가 급등이 맞물리면서 오히려 리비아로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리비아는 이 같은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인프라스트럭처 확충에 나서고 있다.
2012년까지 주택 53만채 건설, 리비아 전역 주요 도시에 상하수도 처리시설 설치, 대학교 및 전문학교 매년 200개 신설에 이어 철도ㆍ전력ㆍ가스ㆍ담수화ㆍ통신ㆍ제철ㆍ석유화학 시설 등 전방위적인 공사 발주가 이어지고 있다.
'제2 두바이를 만들겠다'며 수입관세와 부가세를 없애고 자유무역지대 구상도 실현하는 중이다.
실제로 1969년 9월 약관 28세로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무하마르 알 카다피 국가지도자가 무려 39년째 통치하는 리비아는 사회기반 시설이 그야말로 형편없는 상태. 주택들은 거의 대부분 외벽이 벽돌 상태로 방치돼 있다.
트리폴리 시내 지중해변 백사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나와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지만 바로 옆에서는 커다란 하수구에서 시커먼 생활하수가 지중해로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도무지 1인당 GDP가 1만달러 가까운 국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정대진 현대건설 리비아 지사장은 "술도 없고 마트도 없고 백화점도 없고 골프장도 없고 공원도 없고 식당도 없고 변변한 학교조차 없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거의 없는 나라"라고 혹평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년 혁명 40주년을 맞는 리비아 정부로서는 국민에게 보여줄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각종 공사를 더 서두르는 측면이 있다. 올 한 해 동안에만 6만가구의 집을 지어 국민에게 나눠주겠다는 프로젝트도 그래서 나왔다.
황종욱 신한 리비아 지사장은 "원래 주택공사와 SOC투자를 ODAC라는 기구가 총괄했는데 빨리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HIB(주택공사)를 별도로 설립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40년 가까운 독재체제가 이어지다보니 정치적인 변수도 많고 정부 관료들의 부패 정도도 심각하다는 게 현지 진출 업체들의 전언이다. 당장 올해 하반기에 정부 조직 개편이 예정돼 있으나 언제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정장덕 대한통운 리비아본부장은 "현재 각 부처들이 온갖 공사를 발주하고 있으나 발주처들이 조직개편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 트리폴리 지사의 최일영 차장은 "리비아가 겉으로는 먹을 게 많아 보이지만 제약 조건이 알게 모르게 굉장히 많다"면서 "최근 리비아 시장이 좋다고 하니까 한국 건설업체들을 상대로 한 브로커들도 판치고 중소업체 중 리비아 진출에 의욕적인 곳들도 많은데 당분간은 정보 수집에 집중하면서 관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리비아(트리폴리) = 채경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