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이해석] “나더러 ‘미쳤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완전히 틀린 소리는 아닙니다. 보통 염전 하는 사람들의 눈과 생각을 기준으로 하면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빚까지 내가며 수 년째 매달리고 있으니 당연하죠.”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서 천일염을 생산하는 최신일(35)씨는 염전 3.7㏊의 올해 수확을 17일로 끝낸다. 다른 염전보다 보름 이상 이르다. 봄철 생산 개시도 남들보다 한 달 보름가량 늦은 5월15일에 했다.
“천일염은 같은 염전에서 나오더라도 생산기의 날씨에 따라 질의 차이가 큽니다. 품질 유지를 위해 기온·습도·바람 등을 따져 적기에만 작업하니 염전 가동 기간이 다른 곳보다 두 달 이상 짧습니다. 생산량을 생각하면 바보 같은 짓이죠.”
소금 생산은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는 “공식 예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기상대 등에 수시로 전화해 기상 정보를 모아서 활용하는 등 여러 가지 자구노력으로 생산량 손실을 메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염전에 뛰어든 지 올해로 12년. 나이도 30대 중반이다. 하지만 천일염 부활의 선각자다. 그는 6년 전 염전 시설 개조에 나섰다. 둑을 부직포(보온덮개 등으로 쓰이는 천의 일종) 대신 판자로 둘렀다. 둑 판자와 소금 창고 등에는 일반 못·볼트 대신 스테인리스 못·볼트를 사용했다. 못·볼트 값으로 들어간 돈만도 1000만원이 넘는다. 비가 올 때 염전 물을 보관하는 해주 지붕의 슬레이트도 친환경 소재로 바꿨다. 슬레이트에는 발암물질인 석면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소금에 천 부스러기나 녹물, 석면가루가 섞이면 되겠습니까. 염전을 ‘소금 공장’이라고 보면, 빵 공장처럼 위생관리를 철저히 해야죠. 도청·군청도 얼마 전부터야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는 작업할 때 모든 인부에게 위생모를 씌운다. 소금 운반 컨베이어의 베어링 등에는 일반 그리스가 아니라 식품용 윤활유를 사용한다.
“다른 염전 업자들로부터 유난을 떤다고 눈총도 받고 욕도 많이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물로 취급받던 천일염이 법규 개정에 따라 식품이 됐으니, 생산 시설·공정도 이에 걸맞게 위생적으로 바뀌어야죠.”
4년 동안 2억여원을 들여 환경을 개선한 그의 염전은 영국 인증기관(UKAS)의 심의와 현장 확인을 거쳐 2006년 9월 ISO 22000(국제표준화기구 식품안전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았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염전으로선 첫 인증이다.
그는 이렇게 생산한 소금을 창고에 계속 보관하면서 간수를 빼고 있다. “예부터 3년 정도 간수를 뺀 소금을 최고로 칩니다. ISO 22000 인증 획득 첫해에 거둔 소금을 내년 봄부터 본격 시판할 예정입니다.”
현재는 홈페이지나 전화로 주문을 받아 소량만 직거래로 팔고 있다. 가격은 보통 천일염의 10배에 가까운, 10㎏에 3만9000원. “천일염 중 최고로 대우받는 프랑스 게랑드 지방산은 우리 것보다 염화나트륨(NaCl) 농도가 높고 미네랄 함유량이 적은데도 값은 20배가량 받고 있어요. 게랑드산은 종류에 따라 kg당 4만5000~9만원에 사먹으면서 국산 천일염은 언제까지 30kg에 1만2000원이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입소문이 나고 품질을 인정받아가고 있다. 게랑드산 소금을 쓰던 고급 음식점이 그의 소금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는 들어간 노력과 소금의 품질을 따지면 결코 비싼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존 염전 외에 4.1㏊를 더 사들이고 3억5000만원을 투입해 시설을 뜯어고치고 있다. 내년 5월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한 기업이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는 제품이 나올 것 같다”며 투자를 제의하기도 했다.
“염전을 할 바에야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소금, 당당한 소금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소금은 제 신앙입니다. 게랑드산을 능가하는 품을 가격으로도 인정받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최씨는 섬에서 염전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우며 고교를 졸업했다. 뭍으로 나와 군복무를 하고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청바지와 액세서리 장사를 하다 12년 전 염전으로 돌아갔다.
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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